그러니까 좀 쉬어야 한다는 말이다. 늘 눈에 불을 켜고 이리저리 분주하게 다니다 방전되기 전에. 오늘은 운 좋게도 오전 시간을 카페에 앉아 여유롭게 보내고 있다. 사실 여기 올 때까지만 해도 며칠 후 진행 할 수업 생각뿐이었다. 어떤 내용으로 어떻게 수업해야 할지 자료 찾을 궁리, 파워포인트 슬라이드 구성 따위를 하느라 머릿속이 복잡했다. 주문한 커피를 들고 카페 2층에 올라와 자리에 앉을 때까지도 계속 그랬다. 근데 오늘 따라 카페에 사람이 없다. 딱 한 테이블에 남자 두 명이 앉아 있지만 다들 노트북으로 뭔가를 하느라 조용하다. 그렇게 음악만 흘러나오는 카페에 앉아 한가로운 오전의 창밖을 보고 있으니 일 생각이 사라졌다. 이 좋은 한 때의 오전을 즐기자는 마음이 솟아오르고 커피를 4분에 1쯤 마시곤 그냥 앉아 있다.
아무 생각이 없다. 그저 멍하니 창밖만 본다. 그러다 카페 테이블에 시선이 가고 테이블 끝에 앉아 있는 모기 한 마리가 보인다. 사냥 본능이 꿈틀대어 손을 들었다 움찔하곤 내려놓았다. 그래. 모기 좀 있으면 어때. 피 좀 빨아가도 좋으니까 그냥 두자. 이 평화로운 오전에 살생은 어울리지 않으니. 그리곤 다시 창밖을 본다. 차들이 지난다. 사람이 가끔씩 오고 간다. 다들 어디로 가는 걸까? 평일 오전 한량마냥 사람도 거의 없는 카페에서 창 밖 구경하는 나는 뭐하는 놈일까? 아무 생각 없이 앉아 있기로 해놓고 또 무슨 생각을 한다. 대체 통제 불능인 생각에 대해 생각한다. 드라마처럼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이 생각이 저 생각을 친구처럼 데리고 온다. 생각하기 싫다니깐! 아무 생각 없이 있고 싶다고! 라는 생각을 마음속으로 하며 창 밖 하늘을 본다. 아무 것도 없는 하늘을 보니 좀 낫다. 멍해진다. 시야가 흐릿해지고 잠 오는 것처럼 멍함에 취한다. 아무 생각 없음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잠시 영혼 없는 상태를 유지한다. 바보가 된 듯 입 벌리고 하늘을 본다. 이러다 침 흘리겠다. 본능이 나를 다시 생각의 세계로 소환했다. 현실로 돌아왔다. 음악이 달라져 있다. 테이블에 같이 앉아 있던 모기도 어딘가로 가버렸다. 커피는 양이 늘었다. 얼음이 녹아 색이 옅어졌다. 그 놈을 한 모금 입에 머금으니 정신이 든다.
개운하다. 머릿속이 텅 빈 듯 가볍다. 낮잠 푹 자고 일어난 것처럼 가뿐해졌다. 이것 참 신기하다. 5분쯤 멍하니
있었던 그 시간. 의식의 전원 버튼을 눌러 꺼버린 순간. 세상은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쉬운 일도 어려운 일도, 재미있는 일도 지루한 일도 없는 상태가 되었다. 눈 뜨고 있지만 보이지 않고 잠들지 않았지만 들리지 않는 진공의 상태에서 입 벌리고 멍하니 있어보니 좋다. 참 좋은데 뭐라고 표현하기 힘든 무언가 있다. 이성의 폴더들이 가득한 바탕화면에 기쁨, 슬픔, 분노, 외로움, 괴로움 같은 감정의 아이콘들이 소용돌이친다. 더 빨리 더 많이 더 잘 해보려고 애 쓸수록 이상하게도 더 느려진다. 어디선가 바이러스가 나타나고 현란한 화면들이 우릴 유혹한다.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사보라고 권하는 디지털 시대의 영업사원들. 어딘지 알 수도 없는 곳에서 보내온 메시지들. 우린 제대로 확인되지도 않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요상한 것들에 마음을 빼앗기고 감정을 소모한다. 일상의 많은 시간들이 돈을 향해 달려가고 그 과정에 곤란한 경험들이 손에 손을 잡고 나타난다.
우린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나는 대체 누구이며 왜 이 땅에 태어나 숨 쉬고 사는가? 이런 질문의 실종은 우릴 바쁘게 한다. 내가 나를 쫒아가고, 내가 나에게 쫒기며 산다. 침 흘려도 좋으니 할 일 없이 입 벌리고 멍하니 있어보라.
그러니까, 좀, 쉬어도 좋다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