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내가 정말 글 쓸 자격이 있는 걸까?'
자격. 이라는 말은 참 부담스럽다. '네가 무슨 자격으로 이러고 있는데?'라고 따져 물으면 웬만해선 기가 죽을 만큼 무섭고도 어려운 단어다. 어려운 단어를 만나면 사전을 찾으라 배웠다. 자격이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일정한 신분이나 지위' 또는 '일정한 일을 하는데 필요한 조건이나 능력'이라 나와 있다. 신분이나 지위라. 난 그저 보통 신분이요. 조선시대로 치면 평민(아닐지도. 주야장천 떠도니 보부상? 그러고 보니 보부상도 평민이네요 미안해요) 정도인데 괜찮을까? 지위는 또 뭔가? 애들하고 여행할 때면 잠시 선생님이 되지만 그것 말곤 지위랄 것도 없다. 일을 하는데 필요한 조건이나 능력은 어떤가? 이건 대체 누가 정하는 것이고 나에게 그런 조건과 능력이 갖춰졌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는 걸까? 이렇게 발끈하는 걸 보니 아무래도 조건도 능력도 없나 보다. 그것 참 자존감 떨어지는 내용이네 싶더라도 어쩔 수 없다. 신분, 지위, 조건, 능력이라는 단어가 자격의 구성요소이니 없던 열등감도 방구석 어딘가에서 슬그머니 나타나 속삭일 지경이다.
그런데, 왜 난 자격을 따지는 걸까? 글이야 일기장에라도 쓰면 그만이지 않은가? 요즘 같은 시대에 누가 검열하는 것도 아닌데(음. 모른다. 누군가는 검열 같은 바보짓을 하고 있을지도) 보여주고 싶으면 블로그에 써도 되고 SNS에 써도 되지 않는가? 사실 자격 따윈 없어도 되는 것이다. 적어도 개인적인 글쓰기라면 그렇다고 본다. 근데 왜? 뭐? 어째서 자격 같은 걸 떠올리느냐 말이다. 진정하고 오도카니 앉아 생각해보면 글쓰기란 게 꽤 위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글이 자기 자신을 이끌어가는 경우도 많지만 때론 스스로를 둘 또는 셋으로 나누는 경우도 많아서다. 써 놓은 글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게 나인 것 같다가도 정신 차리면 누가 쓴 건가 싶다. 이거 나인가 그게 나 맞는가 하다 결국 내가 나를 잘 모른다는 사실만 확인할 뿐이다. 그래야 한다는 강박관념. 그럴 수밖에 없는 각종 이유들. 진실을 정리한 따뜻한 글이면 좋겠지만 때론 합리화의 정수가 된다. 데이터가 내 생각인양 부풀려지고 눈길을 끌만한 것만 찾아다니기도 한다. 마음은 사라지고, 알량한 기술로 글 쓴다.
내가 좋아하는 소설가 김중혁이 쓴 <무엇이든 쓰게 된다>라는 책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글쓰기는 혼자 해서 좋은 것이지만, 혼자 하기 때문에 위험한 일이다. 지금 수많은 블로그에서, SNS에서, 책에서, 글쓰기는 자기 합리화의 좋은 도구가 되어가는 것 같다. 나 역시 자유롭지 못하다. 정확하게 글을 쓰고 싶지만 마음처럼 잘되지 않는다. 말은 뱉으면 그만이지만, 글은 발표하기까지 수십 번 수백 번 고칠 수 있다. 말은 주워 담을 수 없지만, 글은 고쳐낼 수 있다. 말에 비해 글은 훨씬 더 전략적이다. 우리는 글쓰기를 통해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어쩌면 글쓰기 속에서만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글쓰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특히, 마지막 두 문장이 마음에 와 닿는다. '우리는 글쓰기를 통해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어쩌면 글쓰기 속에서만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글쓰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어쩌면 나만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글쓰기가 위험하다는 건 사실이다. 위험하다. 10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잠시 생각 후 내린 결론인데 이렇게 쓰고 보니 정말 위험하구나 싶다. 아무 생각 없다가 갑자기 위험해지는 얄팍한 흔들림. 그래서 위험한 글쓰기네. 근데 위험하니까 자격이 필요하다 이 말일까? 이를테면 글쓰기는 복어 같은 것이라 잘 요리하면 겁나게 맛있지만 자격 없는 사람이 다루면 여러 사람 잡는 그런 것일까? 복어조리기능사처럼 글쓰기에도 자격증이 필요한 걸까? 그런 자격증이 있다면 어떻게든 따고야 말겠지만 그래도 괜찮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괜찮지 않다. 내가 괜찮아도 어리석은 백성을 가엾게 여기신 세종대왕께서 진노할 것만 같다.
쓴다는 건 기록하는 것이다. 생각이나 정보를 문자로 남긴다. 이 세상 곳곳에서 기록은 어떤 식으로든 이루어지고 필요한 곳에서 재생된다. 사회적인 글쓰기가 아닌 개인적인 글쓰기는 어디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짐작조차 어렵다. 그러니 예초에 글쓰기 자격증이란 불가능한 것이리라. 글쓰기에 대한 자격은 결국 글을 쓰는 사람만이 떠올리고 생각할 수 있다. 자신의 감정을 쏟아내거나 옳다고 여기는 것들을 설명할 때 누구나 한 번쯤은 자기검열을 거치게 된다. 자기검열 따위 무시하고 무조건 쓰라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 생각엔 어렵고 힘들게 쓴 글일수록 여러 번 곱씹어야 할 것 같다. 무엇을? 이게 내가 원하는 정확한 글인지, 생각과 마음을 담은 살아 있는 글인지 그리고 사람을 배려하는 따뜻한 글인지를. 하나마나 한 이야기지만 어차피 독자들은 다 알게 되어 있다. 글 쓰는 사람보다 글 읽는 사람이 더 가볍다. 가벼운 사람의 눈은 속이기 힘들고, 설사 속는다 해도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좋은 글은 가벼운 사람들의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아 무겁게 움직이는 글이다.
이 글을 쓰면서 생각했다. 가끔 그런 생각이 들어도 그냥 넘어가면 될 것을, 내 깜냥을 넘어서는 주제를 택한 게 아니냐고. 직업적으로 글 쓰는 사람도 아닌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해도 되는 거냐고. 그래. 어쩌면 무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끝없이 이 질문만은 하면서 난 나대로 오롯이 써야겠다. 글쓰기 속에서만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글쓰기를 통해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내가 정말 글 쓸 자격이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