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써야 하는 이유

by 서효봉

새벽. 글을 쓴다는 명목으로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러나 써지지 않는다. 시원한 물을 한잔 마시고 와봐도 뾰족한 수가 없다.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다 관두고 책장에서 책을 꺼내 읽는다. 잠시 후 뭔가 써질 것 같아 책을 덮고 다시 컴퓨터 앞으로 간다. 그러나 그건 착각이었다. 한 문장 쓰고는 Backspace키를 오랫동안 누른다. 다시 백지다. 막막하다. 사전을 찾아보면 아주 넓거나 멀어 아득하다는 뜻이다. 나는 그렇게 아주 넓고 멀어 아득한 벌판 위에 혼자 남겨진 느낌이다. 주변에 아무것도 없어 어쩔 줄 몰라하고 있다. 그러다 이 막막함의 원인을 생각해본다. 2주 넘게 여행을 다녀왔다. 그 시간 동안 나는 그 여행에 푹 젖어 있었다. 쓴다는 것을 잊고 지냈다. 그리고 맞이한 오늘 새벽 이 시간. 쓴다는 것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매일 써야 하는 이유에 대해 주제넘게 써 보려 한다. 나도 감당 못하고 있지만, 쓰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길 기원해본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일종의 예열이 필요하다. 나는 그런 예열의 과정을 생각보다 가볍게 여겼다. 그래서 언제든지 시간만 있으면 글을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지금껏 글을 쓰지 못한 것이 시간이 없어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방금 화장실에 다녀오면서 뭔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글을 쓴다는 건 어떤 세계로 진입하는 것이다. 그 과정은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고 복잡하다. 한 번 예열을 하고 글을 쓴 다음 공백기를 가졌다가 다시 글을 쓰려면 어렵고 힘들 수밖에 없다. 예열된 상태에서 최대한 많은 글을 쓰고 그때의 감각을 다음 글쓰기로 가져가야 한다. 글쓰기는 감각적인 활동이다. 타자가 타석에 들어서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빠른 강속구를 쳐내는 것과 비슷하다. 타석에 들어설 때는 치밀한 계산과 계획이 밑바탕 되어야 하지만 실제로 타석에서 배트를 휘두를 땐 거의 반사적이고 무의식적으로 반응한다. 글쓰기도 그렇다. 어느 정도 계획이 있고 예열이 되면 나도 모르게 글을 쓰게 되는데 그 과정 자체가 매우 감각적이다.


매일 글을 쓴다는 건 예열의 과정을 최소화하고 감각을 습관화하는 일이다. 사람의 생각은 심도를 갖고 있다. 일상을 경험하면서 머릿속에 담아두는 생각들은 새로 산 연필과 같다. 그 안에 분명히 심을 품고 있지만 그 걸로는 전혀 글을 쓸 수 없다. 모여 있는 생각을 들여다본다. 그 생각 가운데 하나를 잡아챈다. 생각을 다른 생각과 연결한다. 조금 더 깊은 생각을 해본다. 더 복잡한 곳으로 나아간다. 그렇게 연필을 잡고 조심스레 깎다 보면 심이 나온다. 그 심을 적당한 각도로 기울인 다음 칼로 다듬는다. 생각이 깊어지면 하고 싶은 말이 떠오른다. 그 마음속의 말들을 글로 토해낸다. 찰나의 순간이다. 때로는 쓰면서 생각이 떠오르고 그 생각이 실처럼 길어지기 때문에 일단은 계속 쓴다. 끝까지 써낸 그 글을 조금 다르게 쳐다보며 다듬는다. 다듬는 과정이 반복될수록 글은 좋아질 수밖에 없다. 맛이 조금씩 달라진다.



이 모든 과정은 어느 정도의 예열과 시간 그리고 감각의 예민함을 필요로 한다. 글쓰기의 이런 과정을 이해하지 못하면 항상 예열하느라 시간을 보내고 써지지 않는다고 불평불만을 터트린다. 쓰지도 않으면서 쓸 수 없다고 투덜대기만 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 예열은 어쩔 수 없다. 다만 예열의 시간을 줄이기 위해 나만의 루틴을 만들자. 일어나 샤워를 하고 잠시 운동한 다음 가장 쉬운 글쓰기부터 한다. 어떤 글을 필사해도 좋고 지나간 일을 일기로 남겨도 좋다. 그렇게 쉬운 글쓰기부터 시작해 어려운 글쓰기로 옮겨가며 감각의 예민함을 되살려야 한다. 그 과정에서 쓸데없는 활동을 차단시킬 필요가 있다. 인터넷을 한다든지 휴대폰으로 뭔가를 하게 되면 감각의 예민함은 공중분해된다. 쓸거리가 분명할 땐 그런 방해 요소가 있어도 이겨낼 수 있지만 거의 대부분의 순간 쓸거리는 있으면서 없다. 없다고 여겨지는 착각의 콩깍지가 벗겨지려면 어느 정도 나 자신을 강제해야 한다. 글 감옥에 가둬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반복이다. 예열의 루틴을 통해 나 자신을 갖춰놓더라도 날마다 하지 않으면 감각이 무뎌지게 되어 있다.


매일 쓴다는 건 글쓰기의 감각을 예리하게 만든다. 한 번 공들여 깎아놓은 연필을 갖다 버리고 다시 깎는 바보 같은 짓은 말자. 연필은 쓸수록 무뎌지지만 날마다 다듬는 사람에겐 늘 뾰족한 연필이 주어진다.


그 연필을 잡는다.

질문을 던진다.

대답을 해 본다.

그 과정을 글로 남긴다.


이것과 저것이 만난다.

무의식의 바다가 떠오른다.

의식의 힘으로 그 바다를 헤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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