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하던 짓을 하려니 어깨가 좀 아프다. 허리도 아프고 엄살이 심해진다. 거참. 책도 체력이 받쳐줘야 읽나 보다. 괜찮아 보이는 에세이들을 도서관에서 빌려와 읽고 있다. 빌려온 책은 김연수, 김중혁, 마스다 미리의 에세이집들이다. 아참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도 있다. 김연수 작가의 책은 <청준의 문장들+>, 김중혁 작가의 책은 <뭐라도 되겠지>라는 책이다. 김연수 작가는 개인적으로 동경하는 작가이기도 하고 소설가로서 산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궁금해 빌렸다. 사실 <소설가의 일>이라는 책을 빌리고 싶었으나 누가 대출 중이라 꿩 대신 닭을 택했다. 아직 읽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훑어보니 소설가로서 하고픈 말도 일부 담겨 있는 것 같았다. 김중혁 작가는 이동진의 빨간 책방 팟캐스트에서 처음 알게 됐다. 그들의 잡담(?)이 재미있었다. 요즘 관심이 가는 작가다. 톡톡 튀는 소재로 흥미로운 글을 쓰는 것 같다. ‘뭐라도 되겠지’라는 제목에 이끌려 좀 보다가 내용이 마음에 들어 빌려왔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랄까?
마스다 미리의 책은 어처구니없게도 도서관에 있는 책 가운데 가장 새 책이라는 이유로 빌렸다. 유명한 작가의 책이 이렇게 새 것 같다니. 좀 요상하긴 하다. 아무튼 <전진하는 날도 하지 않는 날도>와 <오늘도 화를 내고 말았습니다>라는 책을 빌렸다. 마지막으로 간택된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은 <저녁 무렵 면도하기>라는 책이다. 이것도 순전히 제목이 묘해 뽑아 들었다가 하루키의 문장에 홀려 빌리게 됐다. 이렇게 다섯 권. 도서관에서 빌릴 수 있는 최대한도까지 몽땅 빌렸다. 읽을 책이 많으니 든든하긴 한데 좀 욕심 부렸나 싶기도 하다. 뭐 다 못 보면 어때? 일단 빌리는 거지!
오늘 아침엔 마스다 미리 에세이에 흠뻑 빠져 읽었다. 전체적으로 가볍다. 담백하다. 섬세한 편이다. 문장도 짧고 글의 양도 적다. 언뜻 토막 난 것처럼 읽히지만 진짜 경험하며 느낀 걸 기록했다는 생각이 든다. 공감이 가는 이야기들이 많다. 흔히 생각하는 에세이들은 일상을 날카롭게 기록하고 나면 무엇이든지 의미 있는 걸 갖다 붙이곤 하는데 마스다 미리는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 일상의 일을 솔직하게 그리고 그 느낌을 간결하게 전한다. 처음엔 이렇게 끝인가 싶기도 하고 허무하기도 하다. 그녀는 솔직하다. 뭔가 있는 척하지도 않는다. 고민은 고민으로 남겨두기도 하고 느낀 게 있으면 그걸 그냥 말한다. 꾸미거나 허튼짓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다 읽고 나면 그녀의 머릿속에 들어가서 목소리를 듣다 나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복잡한 단어나 문장으로 독자를 괴롭히지도 않고 편하게 그녀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훌륭한 에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이런 글을 쓰고 싶다.
김연수 작가의 책은 아까 이야기했듯이 아직 읽어보지 않았다. 표지가 읽기 싫게 생겼다고 말하면 좀 너무한가? 어쨌든 다른 책을 다 읽고 나서 읽어볼 것 같다. 김연수 작가님 미안해요. 고의는 아닙니다. 계획적이랄까요. 아제 개그에 분노하는 구독자님들께도 미안합니다. 제가 이래요. 김중혁 작가의 책 <뭐라도 되겠지>는 예전에 읽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무라카미 라디오>라는 책이 생각나게 한다. 물론 그 책은 염세적인 표지로 사람을 망설이게 하고 내용도 뭐랄까 허무한 냄새가 좀 난다. 대신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 싶은 내용들이 많은데 <뭐라도 되겠지>도 책을 읽다 보면 그런 느낌이 계속 든다. 일상의 작은 소재도 글감이 되고 그걸 바라보는 시선을 낯설게 하면 재미있는 사실들이 아주 많다는 걸 알게 해준다. 일단 표지부터 마음에 들고 내용도 참신해서 계속 읽고 싶은 책이다. 특히 중간중간에 나오는 그의 발명품들은 소설가다운 상상력이 돋보이는 발명품들이다. 현실성은 거의 없지만 (미안합니다. 너무 냉정해서) 실제로 그런 발명품들이 있다면 누구라도 놀랄만한 발명품이다. 나도 어릴 적 발명가의 꿈을 가졌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쪼매날 때부터 너무 현실성을 따졌던 것 같다. 발명이 꼭 발명품으로 이어질 필요도 없지 않은가? 이런 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과 엉뚱하지만 기발한 상상의 결과물들을 글로 쓰던지 그림으로 그려 남겨놓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그런 생각을 하고 실천으로 옮긴 김중혁 작가가 부럽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 <저녁 무렵 면도하기>는 역시 하루키라는 느낌이 드는 책이다. 약간 일본스러운 느낌이 나서 우리 정서와 어긋나는 면도 있지만 그의 문장은 끝내준다. 편하게 술술 읽히기도 하고 표현력에 놀라기도 한다. 생각을 글로 자연스럽게 옮기는 능력이 역시 프로답다. 수록된 에세이 가운데 제목으로 선정된 저녁 무렵 면도하기라는 글을 보면 그 느낌이 생생하게 전달된다. 작가의 삶이란 저녁에 면도해도 괜찮은 그런 삶이구나 싶어 부럽다는 느낌이 먼저 들고 바로 은근 화가 난다. ‘유명해져서 좋겠수!’라고 한마디 해주고 싶다가도 이런 유치한 질투에 빠진 내가 한심해진다. 찰나의 순간 부러움, 화, 한심함이 빛의 속도로 지나가고 하루키는 할 말을 계속한다. 읽다 보면 가끔 휴일 날 종일 일이 없다 저녁에 약속이 잡혀 면도할 때면 느껴지는 미묘한 감정이 되살아난다. 숨차게 해서 미안해요. 이렇게 밖에 못 쓰겠어요. 는 변명이고 그냥 이렇게 쓰고 싶어 쓴다.
행복감에 쩔어 방바닥을 뒹굴다 창밖을 보니 밤이다. 하루가 이렇게 또 지나간다. 행복하긴 한데 이거 왜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한 걸까? 재미있는 영화 한 편 찐하게 빠져서 보다가 검은 바탕에 흰 글자들이 올라간다. 영화 마지막 크레딧을 구경할 때 느껴지는 허무함과 닮은 허전함이 한 구석에서 밀고 올라온다. 뭐가 빠졌다. 뭐가?
그게 말이지..
근데..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