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9월 10일. 가을. 그러니까 3년 전. 나는 브런치에 하루 한 줄 쓰기를 시작했다. 매일 무슨 생각이 내 머릿속을 지나가는데 그게 그냥 사라지는 게 아까워서 한 줄이라도 써 보았다. 대개 사진 하나에, 똥폼 잡는 내용 한 줄. 그래도 그 한 줄에 댓글도 달아주고 응원도 해준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덕분에 하루 한 줄이 꾸준히 쌓여 347개가 되었고 잠시 결산을 해보았다.
차곡차곡 모은 저금통에 얼마나 들었나 싶어 하나씩 천천히 읽어보았는데 이를 어쩐다. 모이라는 것들은 안 모이고 민망함과 부끄러움이 쌓여 산을 이룬다.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검지와 중지를 살짝 벌려 그 틈으로 봐야 겨우 봐줄 수 있을 정도. 수위가 높다. 아주. 이걸 책으로 엮으면 개똥철학 모음집이 되겠구나 싶다. 그렇게 지난 하루 한 줄을 뒤적이다 ‘가을 상영 중’이라는 제목의 한 줄이 눈에 들어왔다.
“가을이 왔음을 느낀다. 계절의 변화는 몸을 통과한다. 흥행성공. 뭐든지 공허해질 것이라 예고한다.”
어제 아침 출근길. 하늘을 보았다. 파아아란 하늘. 그래. 저런 게 하늘이지. 넘쳐흐르는 하늘엔 풀로 붙인 종이를 강제로 떼어낸 것처럼 거친 모양의 하얀 구름만 조금 보인다. 그 아래로 줄 선 자동차들. 그마저도 아름답게 보인다면, 거짓말이겠지? 역시 차 밀리는 풍경은 별로다. 그래도 반은 아름다우니까. 가을이니까. 평소보다 마음이 너그러워진다. 용서해주마. 하하.
사무실에 출근해 어찌어찌 바쁘게 보낸다. 점심을 먹고 사무실 창문으로 다시 그 하늘을 보았다. 보지 말걸 그랬어. 강렬한 유혹. 다 관두고 밖으로 나가 어디 풀밭에 드러눕던지, 자전거라도 하나 빌려 숲길을 달려야 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그래. 나의 영혼아. 너만이라도 그렇게 하렴. 난 이만 일하러 가야겠다. 총총. 퇴근 후 저녁을 먹고 동네 산책을 했다. 근처 공원을 걸었는데 사람들이 꽤 많다. 아이 손잡고 나온 가족들, 신혼부부들,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한결 시원해진 날씨는 사람들의 마음을 풀어놓았다. 방심한 사람들 여기 다 모였네.
어디서 주워듣기로 행복한 사람들은 계절의 변화를 잘 느낀다고 한다. 반대로 어딘가에 쫓겨 계절이 변하는지도 모르고 사는 사람은 불행하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공기와 냄새, 하늘이 달라지고 사람들의 마음이 변해 가는데도 눈치 채지 못하고 똑같이 사는 건 어쩌면 불행하다기보다는 불쌍한 게 아닐까 싶다. 얼마나 삶이 고단하여 나만 빼고 다 변해도 알아채지 못할까? 그렇게 여유 없는 걸 열정적이라 말할 수도 있겠지만 불쌍한 건 어쩔 수가 없다. 미안하다. 불쌍하다 말하여. 해줄 수 있는 거라곤 이렇게 몇 자 적는 것뿐이다. 또 미안하다. 이제는 그냥. 내뱉은 말이든 적어버린 글이든 공허하긴 마찬가지라서.
가을만큼 닳고 닳은 소재도 없겠지만 가을만 되면 가을을 읽고 말하고 싶어 진다. 뜨거운 여름의 잔해가 구구절절 익어, 시린 겨울의 바닥으로 떨어질 때까지 그 짧은 순간을 가을. 그런 이름으로 부른다. 가을은 소설처럼 다가와, 영화처럼 유행하다, 이내 시처럼 멀어진다. 가을이 왔음을 느낀다. 계절의 변화는 몸을 통과한다. 흥행성공. 뭐든지 공허해질 것이라 예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