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탈출

by 서효봉

어제는 대탈출의 날이었다. 이렇게 말하니 무슨 모험이라도 하고 돌아온 사람 같지만 사실 종일 집에만 있었다오. 새벽에 일어나 쓰라는 글은 안 쓰고 인터넷 세계 여기저기를 돌아다녔지. 세상엔 참 별의별 사람이 다 있고, 별의별 일이 다 일어나는구나 하며 참 오지랖 넓은 시간을 보냈다. 이후 아내를 깨웠고 그녀가 씻으러 간 사이 잠깐 침대에 누워보았다. 이렇게 편안할 수가! 우리 집 침대 짱! 잠깐 눈을 감았다 떠보니 오전 11시 45분. 아내는 출근하시었고 나만 덩그러니 침대에 남아 있다. 그래. 휴일인데 이 정도는 용서해주자. 용서 못 한다 해도 어찌할 방법이 없으니 말이다.


배가 고프니 뭐라도 먹고 시작하렴. 헌데 밥솥에 밥이 고갈되었다. 일단 식빵에 감자 샐러드를 발라 한입 물었다. 쌀을 씻고 밥솥에 넣어 취사 버튼을 누름. 이제 뭐하지? 식빵을 한 입 더 물고 TV를 켰다. 익숙한 얼굴들이 나온다. 강호동, 김종민, 유병재, 신동, 김동현 그리고 아직 익숙하지 않은 피오(미안해요). 남자 여섯 명이 나와 방탈출 게임처럼 탈출하는 프로그램이다. 재미있다. 한 마디로 내 스타일. 1회부터 정주행을 시작했고 오후 내내 탈출러들과 함께 했다. 저녁이다. 계획했던 일들은 고스란히 미뤄두고 저녁을 맞이한 이 기분. 마치 내일까지 내야 하는 방학 숙제를 미뤄두고 컴퓨터 게임만 하다 새벽이 되어버린 기분이랄까? 그래도 밥은 챙겨 먹어야지. 이제 방학 숙제 따윈 없으니까. 흐흐. 마늘 볶음밥을 해 먹고 하루를 마감했다. 훌륭한 마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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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자다 일어나 TV 봤다고 하면 될 걸 참 길게 썼구려. 결국 대탈출 프로그램 시청이 어제 한 일의 거의 전부다. 그러니 대탈출에 대해 좀 더 써야겠다. 크고 작은 남자 여섯은 안대를 쓰고 어딘가에 갇힌다. 아무런 힌트도 도구도 없이 어떤 방에 갇힌 그들은 주변에서 단서를 찾아야 한다. 이것저것 건드려 보고 그럴듯한 것들을 모아 시도하다 보면 어느 순간 짠하고 문이 열리거나 결정적인 힌트를 얻게 된다. 그때의 그 짜릿함은 같이 있지 않아도 느껴질 만큼 강렬하다.


그 짜릿함이 일어나는 원리를 생각해보면 결국 과정을 함께 하는 데 비결이 있다. 만약 앞부분을 보지 않고 탈출 바로 전 상황에서부터 보기 시작한다면 어떨까? 아마 공감은커녕 좋다고 날뛰는 그들이 바보 같이 느껴질 것이다. 예능인데 어차피 풀려날 거 아니야? 뭐가 좋다고 난리지? 연기일까? 하지만 처음부터 그들의 고생을 지켜본 사람이라면 같이 기뻐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끝난 것이 아쉬워진다. 저 사람들 다시 좀 가둬주세요. 제발. 이런 변태 같은 생각까지 서슴없이 하는 것이다. 어쩌면 방탈출 카페로 달려가 스스로를 가두는 사람까지 있을지 모른다. 과정은 곧 이야기가 되고, 이야기에 깊숙이 참여할수록 그 상황에 깊이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그런 다음 탈출! 짜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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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왜 우린 일부러 이런 짓을 하는 걸까? 누군가 말했다. 살아 있는 모든 존재는 살아 있음을 증명하려 한다고. 방에 갇힌 사람들. 다들 겁이 많지만 그러면서도 내심 영웅처럼 활약하고 싶어 한다. 오랜 시간 이것도 아니네, 저것도 아니네 하면서 실패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시도하는 걸 멈추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도 지금 대탈출 중일까? 인생이라는 거대한 시간 안에 갇혀 과정을 함께 하는 우리. 여기가 어딘지 왜 온 건지도 모르고 태어나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본다. 하나를 탈출하면 또 다른 방이 나타나고 거길 또 탈출하면 더 큰 방이 나타난다. 도저히 어떻게 해볼 수 없을 것 같은 곳도 나오지만 절망하진 않는다. 어떻게든 탈출할 수 있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런 믿음까지 모으고 또 모아서 마침내 저 문을 열고 탈출해 나가 ‘나 여기 있다!’고 세상에 외치는 그 순간을 위해. 우린 오늘도 대탈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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