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서 영화는 대학 입학 이후부터 시작되었다. 그 이전에도 한두 번 동네 영화관에 가본 적이 있으나 그걸 영화라고 불러야 할지 잘 모르겠다. 너무 유치해서 그때도 이건 영화가 아니야 하고 중얼거렸던 기억이 난다. 아무튼 대학 입학 후 갑자기 많은 영화를 보게 됐고 때마침 비디오방까지 유행하는 바람에 지나간 유명 영화까지 찾아보게 되었다. 그러다 어느 날 ‘매트릭스’를 보게 되었는데 정말 큰 충격을 받았다. 영화를 보고 깨달음을 얻은 것 같은 느낌이 들다니!
매트릭스를 보고 나서 세상의 모든 것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혹시 여긴 매트릭스 안? 실제로는 더 끔찍한 현실이 있고 이 모든 게 가짜? 이런 의심은 군대에 가면서 더 커졌다. 원래 세상은 군대식이지만 그런 현실을 감추기 위해 민간인 세상이 있는 게 아닐까? 저 막사 어딘가에 사람들이 누워있고 그 사람들의 뒤통수에 주사기 같은 걸 꽂아서 휴가 보내는 건 아닌가 하는 상상까지 해보았다. 하지만 휴가는 내 발로 걸어 나가는 것이었고 내 돈 들여 집으로 가 며칠 방탕하게 생활하는 이벤트였다. 첫 휴가를 나갔을 때 마침 매트릭스2가 개봉했고, 그다음 휴가를 나가자 매트릭스3가 개봉했다. 난 마치 이 영화를 보러 휴가 나온 것처럼 영화관으로 직행해 네오(매트릭스의 주인공)와 함께 싸웠다.
매트릭스에는 수많은 명장면과 명대사들이 있다. 이런 것들은 대체로 수없이 패러디되고 소비된다. 특히 허리를 한껏 뒤로 젖히며 총알 피하는 장면은 너무 많이 패러디되어 지겨울 정도다. 그렇지만 그렇다 해도 명장면은 명장면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매트릭스3 거의 마지막 장면인데 주인공 네오와 스미스의 대결 장면. 스미스는 엄청난 힘으로 잘 생긴 네오를 두들겨 패고 네오는 쓰러진다. 그러나 네오는 포기하지 않고 일어선다. 주인공이니까. 모름지기 주인공은 포기하지 않는 법. 스미스는 따발총 같은 잔소리(?)와 함께 왜 포기하지 않고 자꾸 싸우냐고 묻는다. 그 기나긴 질문에 네오는 아주 간단하게 대답.
“Because I choose to”
그게 내 선택이야. 네오의 성의 없는(?) 대답에 열 받은 스미스는 몸을 떨며 분노하더니 다시 두들겨 패려 다가가지만 그다음부턴 상황이 역전된다. 선택이라는 단어를 꺼내 든 이후부터 네오는 뭔가 깨달은 사람처럼 싸운다. 그러다 스미스에게 흡수되지만 덕분에 네오와 연결된 시스템 관리자가 스미스를 삭제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스미스를 파괴하며 끝. 주인공이 죽는(아마도?) 이 결말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여 뭐라 말하기 힘들지만 대충 이렇다 할 수 있겠다. 결말이야 어쨌든 난 네오의 한 마디가 아직도 귀에 남는다. 그게 내 선택이야.
영화를 본 사람에게 그 영화는 자기만의 영화가 된다고 생각한다. 제작자의 의도가 어쨌든 간에 받아들인 사람이 다시 영화를 자기 것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의 인생이 다른 것처럼 모든 사람의 영화도 다 다르다. 그러므로 때로는 구체적인 것보다 추상적인 것이 더 깊숙하게 다가온다. 선택이라는 말.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모든 일. 이 시간의 결과물. 이 생활의 쉼표에서, 마침표까지. 우린 순간을 맞이하고 선택은 계속된다. 그게 선택인 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 그 사이를 걷고 있는 우리에게 비가 내리고 주먹이 오가고 건물이 무너져도 결과는 같다. 울고 웃고 화를 내도 포기는 없다. 살아 있다면, 그건 결국 내 선택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