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드는 순간

by 서효봉

국민 학교. 국민과 학교를 붙여서 쓰고 싶지만 이젠 그럴 수 없다. 한글 워드에 국민 학교라고 치고 스페이스바를 누르면 자동으로 초등학교가 된다. 그래. 초등학교의 시대인 것이다. 바뀐 지 오래되었는데 너 왜 그러니? 일제의 잔재인 국민 학교 따위는 잊어버려라. 그런다고 잊혀 지진 않는다. 오히려 이름마저 바뀌어버려 더 애틋하다. 자동으로 아저씨 인증하는 것 같아 슬프긴 해도 실제로 그런 느낌이 드는 걸 어쩌랴. 나 아저씨다. 인정할 테니 국민 학교라고 붙여서 쓰게 해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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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학교 때 기억을 열심히 더듬어 봐도 수업 내용 같은 건 하나도 떠오르지 않는다. 학교를 다녔는데 배운 게 기억 안 난다니. 엉덩이 맞을 일이다. 그렇다고 안 나는 기억을 억지로 지어낼 순 없으니 포기하는 수밖에. 수업 내용까지 일제의 잔재였을까? 아무튼 학교 다니면서 인상 깊었던 일은 대개 아이들과 떠들고 놀았던 기억이다. 그리고 점심시간. 역시 먹는 게 남는 것. 아직 급식이 생기기 전이라 도시락을 싸서 다녔다. 반찬 뚜껑을 여는 순간 반 친구들이 개떼(?)처럼 달려들어 내 도시락 반찬을 뺏어가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난다. 왜 이런 기억은 정확하게 날까? 그래도 그땐 나눠 먹는 정이 있었다. 맛있는 건 뺏어 먹고 맛없는 건 나눠 먹는 아름다운 풍습이 존재했기에 굶지는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친구들이 내 건강을 생각해 그리 한 게 아닌가 싶다. 고마운 녀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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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녀석들과 구슬도 치고 술래잡기도 했다. 딱지도 치고... 아, 나 정말 옛날 사람 같다. 정정한다. 최첨단 전자두뇌게임을 하기 위해 동네 오락실에서 날마다 특훈을 했다. 한 판에 50원. 100원으로 두 판을 하고 이번엔 신체 단련 특훈. 그 오락실 앞에는 ‘봉봉’이라는 거대한 트램펄린이 있었다. 애들은 여기서 하늘을 날며 다양한 자세를 연구했다. 한두 바퀴 도는 건 기본이고 날라 차기까지. 코피 터지는 애도 있다. 그렇게 놀다 해가 저물 때쯤이면 하나둘씩 엄마가 찾아와 귀를 잡고 집으로 끌고 갔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귀 빠지는 줄 알았네.


사람은 언제 철이 들까? 엉덩이 맞을 때? 반찬 뺏겨 울 때? 귀 잡혀 집으로 끌려갈 때?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철든다고 하지만 꼭 그런 건 아니 것 같다. 난 여전히 철이 없고 했던 실수를 또 반복한다. 철없는 아이가 철없는 어른이 되었다. 국민 학교는 초등학교가 되었고 기억은 점점 아득해지고 있다. 누가 나에게 ‘그놈, 철들었네?’라고 말해주어도 그게 그렇게 될지 모르겠다. 어쩌면 철들기 싫은 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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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가장 힘든 순간, 무언가 깨닫게 된다. 그 언젠가 누군가 겪었을 그 시간을 통과할 때면 너무 무심해서 또는 너무 늦어서 후회라는 이름의 땅을 파게 된다. 후회가 깊어지면 자신의 영혼을 조용히 그 구덩이에 눕혀본다. 영혼은 슬픈 표정이다. 말없이 밤하늘을 보며 눈물을 흘린다. 흘러내린 눈물의 온기가 흙바닥을 적시고 이내 오열한다.


오늘 일어나 창문을 열고 어두운 새벽 거리를 보았다. 차가운 공기가 잠이 덜 깬 사람의 뺨을 스친다. 깜빡이는 새벽 별과 눈이 마주친다. 어머니를 생각했다. 새벽의 고단함, 매일 그 고단한 여정을 겪으며 살아온 부모님의 인생이 우릴 철들게 한다. 아직 늦지 않았다면 뭐라도 해야 할 것이다. 사람은 어느 순간, 아무 이유 없이 눈물 흘리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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