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게소 산책

by 서효봉

여행=직업. 그러다 보니 운전을 많이 하는 편이다. 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가끔 졸음 지옥을 맛본다. 그럴 때 천국처럼 등장하는 구원의 손길. 그곳은 바로 잠시 쉬어가는 곳. 휴게소. 전국 여러 휴게소를 다녀 보니 우리나라 휴게소도 참 다양했다. 어떤 휴게소는 놀라울 정도로 화려하지만 또 어떤 휴게소는 이게 휴게소야? 싶을 정도로 소박(?)한 휴게소도 있었다. 사람들이 오지 않아 망하는 휴게소도 보았고, 어느 날 갑자기 생겨 대박 나는 휴게소도 봤다. 휴게소의 역사라든가 흥망성쇠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건 아니고 내가 그만큼 휴게소에 많이 가 봤다는 자랑이랄까? 흐흐. 별의별 게 다 자랑이다. 아무튼 다양한 휴게소가 있다.


오래전 휴게소는 비싸고 맛없는 음식을 파는 사기꾼 같은 존재로 사람들의 원성을 샀다. 돈만 비싸고 맛도 없는 휴게소 음식. 배고프니까 어쩔 수 없이 먹어준다는 정도? 그러다 최근엔 휴게소가 많이 달라졌다. 여전히 비싸지만 맛있는 음식들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네이버에 휴게소라고 치면 연관 검색어로 ‘이영자 휴게소 맛집’이라는 검색어가 뜬다. ‘전지적 참견 시점’이라는 프로그램에서 그녀가 소개한 휴게소 음식들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젠 일부러 그 휴게소를 찾아가 그 음식을 먹을 정도가 되었다. 그야말로 맛집 대접을 받는다. 이렇게 달라진 휴게소의 면모를 가장 먼저 인식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바로 아이들이다.



나와 함께 여행하는 아이들은 늘 휴게소를 기대했다. 어느 날 사정이 생겨 휴게소에 들르지 못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그들의 실망한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세상을 잃은 것 같은 그 표정. 이렇게 휴게소를 사랑하는 아이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휴게소 음식의 변화를 감지했다. 특히 소시지와 떡을 같이 꽂아 만든 소떡소떡. 이영자가 소개했지만 사실 꽤 오래전부터 아이들의 인기 간식이었다. 간식 중에 이게 제일 맛있다며 먹어보라는 아이가 한 둘이 아닐 정도. 더불어 떡볶이가 맛있는 휴게소도 꽤 많이 발굴했는데, 특히 아이들은 하행선 칠곡휴게소를 베스트로 꼽았다. 떡볶이 먹으러 그 휴게소에 가자고 늘 졸라댄다.


음식만 달라진 건 아니다. 전국의 많은 휴게소가 화장실 리모델링을 했다. 처음 공사를 시작할 땐 불편했지만 다 끝내고 나니 참 잘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은 거의 모든 고속도로 휴게소의 화장실이 깔끔하게 바뀐 걸 볼 수 있다. 어떤 곳은 여기가 화장실인가 싶을 정도로 화려하게 단장해두었다. 이렇게 휴게소가 달라지고 있다. 휴게소의 변화는 어쩌면 우리 휴식 문화의 변화를 의미할지도 모른다. 이제 단순히 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것이다. 쉬는 것도 중요한 우리 삶의 일부분임을 알게 된 사람들. 사람들의 관심이 여행으로 흐르고 기대하는 수준이 높아지면서 변화의 바람이 분 건 아닐까? 머리 아프다. 갑자기 너무 고차원적(?)인 이야기를 꺼냈다. 좀 쉬어야지.


KakaoTalk_20180920_071301926.jpg 덕평휴게소에 생긴 별빛정원우주, 야간 데이트 코스로 인기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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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휴게소 가운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휴게소는 덕평자연휴게소다. 경기도 이천에 있는 이 휴게소는 자주 들르는 휴게소는 아니다. 하지만 갈 때마다 좋은 느낌을 받는 휴게소다. 휴게소 자체가 규모도 크고 쇼핑몰까지 들어서 있어 고급스러운데 사실 그보다 더 좋은 건 산책할만한 공간이 잘 마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평일 오후 늦은 시간, 혼자 이 휴게소에 들렀다. 한참 운전에 시달리다 정원처럼 예쁘게 꾸민 산책길을 천천히 걷는다. 이런 생각이 든다. 여기 참 좋네. 쉰다는 건 뭘까?


일상의 정해진 차선을 따라 바쁘게 달린다. 그러다 잠시 달리기를 멈추고 자기 자신을 생각해보는 산책. 다시 달려야 하고 다시 속도 내야 한다. 하지만 걱정 따윈 없다는 듯 나무 아래 의자에 앉아 가을 하늘을 본다. 그 순간. 굳이 멋짐이 폭발하지 않아도 자연스러운 그 모습. 그냥 그것 자체로 괜찮은 풍경을 향해 걸어 들어가는 시간. 이 거대한 낙엽의 한 지점에서 나에게 나만의 공간을 허용한다. 이걸 쉼이라고 부른다면 나는 지금 쉬고 있다고 생각했다. 본격적으로 어딜 떠나지 않아도 좋다. 그저 쉬어가는 이곳에서 하나둘 내려놓아 보니 결국 쉰다는 것도 마음의 움직임을 알게 되었다. 맛있는 음식이나 멋진 화장실보다 더 좋은 건 휴게소라는 이름의 본질에 있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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