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 이 얼마나 설레는 단어인가? 뭔가를 구입하는 건 행복한 일이다. 그걸 살 수 있다는 것도 좋지만, 사서 그 물건을 가졌을 때, 내 삶이 조금 나아졌다는 느낌마저 들기 때문이다. 사서 며칠 쓰고 처박아둘 것 같아도 일단은 산다. 당장 필요해 보이니까. 사면 좋을 것 같으니까. 근데 중요한 두 가지가 없다. 하나는 돈. 그리고 또 하나는 시간이다. 돈은 오래전부터 거의 없었고, 앞으로도 뭐 그저 그럴 것이다. 먹고 살 정도라도 있으면 다행이다. 그런데 시간은 좀 억울하다. 돈 없는 것도 서러운 데 시간까지 없다니. 내가 돈 버는 기계인가? 적당히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야 사는 재미가 있지. 이렇게 생각하고 뭔가 해보려면 또 하나가 더 필요하다. 그게 뭘까?
용기.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용기. 그것만 있으면 될 것 같다. 그런데 그게 없다. 용감하지 않아서 별 일 없이 사는 걸지도 모르지만, 용감하지 않으니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관두자. 꿈을 이룰 용기까진 없지만, 쇼핑할 용기 정도는 준비되어 있다. 우리에겐 신용이라는 훌륭한 카드가 있지 않은가? 정말 나를 신용해서 이 카드를 준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카드 덕분에 별의별 것들을 다 산다. 외상은 즐겁다. 알지? 요즘은 뭐 사러 갈 시간도 없어서 대체로 인터넷으로 산다. 그러다 금액이 커지면, 고민도 커진다. 이게 더 싸네? 그럼 이걸 사? 후기가 엉망이다. 아, 저건 후기가 좋네. 근데 더 비싸다. 싸고 좋은 건 세상에 없는 걸까? 아니야. 난 믿고 있어. 분명 싸고 좋은 게 어딘가 있을 거야. 꿈을 좇는 소년처럼 가성비 좋은 물건을 찾아 인터넷을 헤맨다. 그렇게 고민이 깊어지면 아내가 말한다. 고민 시작했으니 내년쯤 사겠네? 내년까지 얼마 남진 않았지만 놀림받고 기분 좋을 리는 없다. 이것도 아니네, 저것도 아니네. 시간이 길어질수록 스트레스가 쌓인다. 나중엔 지쳐서 그냥 처음 봤던 물건을 사든 지 아니면 아무거나 사고 이 짓을 관둬야겠다고 마음먹게 된다. 사는 것도 일이구나 싶다.
다크서클 내려온 눈을 비비며 침대에 누웠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근데 사는 것과 사는 건 왜 똑같은 글자를 쓰는 걸까? 구입하는 것과 살아가는 것은 엄연히 다른 데 왜 둘 다 산다고 하지? 다음 날 새벽, 글 쓴다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집중이 되지 않는다. 한 줄 쓰고 지우고, 또 한 줄 쓰고 지운다. 한 문단을 쓰고 다 지운 적도 있다. 그때마다 이것도 아니네, 저것도 아니네 하며 한숨을 쉬었다. 애꿎은 머리만 벅벅 긁으며 괴로워했다. 나중엔 지쳐서 그냥 처음 생각했던 대로 쓰던지, 아무거나 써야겠다고 마음먹는다. 회사에서도 무슨 프로젝트를 하는 것마다 제대로 되는 게 없다. 이거다 싶어서 진행하면 저게 문제고, 저거다 싶어서 진행하면 이게 문제다. 되는 일이 없다고 생각하니 답은 로또에 있다는 하늘의 계시가 들린다. 거금 오천 원을 들여 로또를 사면 한동안 행복하지만 오천 원 치 행복은 일주일뿐이다. 추첨이 끝나면 결국 이것도 아닌가 보다 하고는 복권을 찢어 쓰레기통에 버린다.
새벽. 글 쓰다 지치면 가끔 창문 밖을 본다. 시원한 공기가 밀려오는 어스름한 풍경을 아무 생각 없이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 쓸거리가 생긴다. 그렇게 책상으로 돌아와 키보드를 두드릴 땐 이게 더 좋은지, 저게 더 좋은지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떠오르는 걸 쓰고 또 쓴다. 한참 쓰다 보면 어느새 뭔가 채워져 있다. 쇼핑을 할 때도 이렇게 해 보았다. 갈등할 무렵 잠시 어딘가의 창문을 열고, 새로운 공기를 마시니 결재 버튼을 누를 용기가 쉽게 생긴다. 어쩌면 우린 어떻게든 살아가기 위해 뭔가를 사는 걸지도 모르겠다. 큰 용기든, 작은 용기든 내 존재는 그 용기로 증명되니 말이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지만 열어볼 창문이 곁에 있고, 신선한 공기가 우릴 기다리고 있다. 잠시 모든 걸 잊게 해 줄 풍경과 만나, 조용히 나에게 걸어 가보자. 오늘, 하루, 고생했어요.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