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메랑 주의보

by 서효봉

야호! 퇴근이다. 퇴근을 눈치챈 오장육부가 요동친다. 배 엄청 고프네. 저녁은 뭐 먹나? 외식? 노. 노. 어제도 외식했는데 오늘까지 그럴 순 없지. 그냥, 반찬 가게에서 반찬이나 사 가자. 이렇게 반찬 가게에 들렀다. 우리 동네 반찬 가게는 부부가 운영한다. 아들, 딸 잘 키워낸 듯한 나이 지긋한 부부인데, 역할 분담이 뚜렷하다. 반찬 가게의 반찬은 모두 아주머니가 만드시고, 근엄한 아저씨는 포장하고 계산하는 역할을 맡고 계신다. 근데, 여기 반찬 정말 맛있다. 처음 이 반찬가게가 생기고 맛보았던 두부조림의 맛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을 정도다. 게다가 아들, 딸네 집에도 수시로 갖다 주는 반찬이라 조미료 같은 건 아예 넣지 않는다고 한다. 몸에 나쁘지 않고 맛있으니 자꾸 가게 된다. 물론 다른 반찬가게들보다 조금 비싸긴 하다. 하지만 맛있고 양도 많은 편. 그 덕에 단골손님이 되어버렸고, 일주일에 2번 이상은 꼭 들린다.


그런데 퇴근하고 반찬가게에 가면 대부분 7시 넘어 들리게 된다. 8시쯤 문을 닫기 때문에 서둘러서 갈 수밖에 없다. 이렇게 끝날 때쯤 급하게 가면 아주머니께서 서비스로 반찬을 하나 더 챙겨주신다. 처음엔 놔두면 상할 반찬들을 처리하는 줄 알았는데, 자꾸 받다 보니 꼭 그런 건 아니란 걸 알게 되었다. 더 주는데 별로 티도 안 낸다. 가끔은 이렇게 자꾸 주셔도 되나 싶을 정도다. 어느 날 북엇국과 버섯볶음, 깻잎전을 샀다. 역시나 서비스로 어묵볶음을 넣어주셨다. 반찬을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임대라고 붙여놓은 건물 앞을 지났다. 생각해보니 그 자리는 이 동네에 가장 먼저 생긴 반찬가게가 있던 자리였다. 그 반찬가게는 조금 젊은 아주머니 한 분이 운영했는데 여기도 반찬이 맛은 있었다. 가격도 저렴했다. 하지만 갈 때마다 부담스럽다. 반찬 3개를 사면 약간 할인을 해주는데, 이것도 맛있고 저것도 맛있으니 사라고 계속 권했다. 그러다 많이 사지 않으면 남는 게 없다고 눈치를 주기도 했다. 흐흐. 이런 걸 다 기억하는 나도 참 소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그 반찬가게는 가장 먼저 자리 잡았지만, 지금은 다른 반찬가게에 밀려 문을 닫게 되었다.


물론 적극적으로 영업하는 게 잘못되었다는 말은 아니다. 때로는 그런 적극성도 필요하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참 알 수 없는 것이다. 사라고 대놓고 말하면 오히려 사기 싫고, 은근슬쩍 덤을 주면 고마워서 더 사게 되는 게 사람 심리다. 왜 그럴까? 우리가 자주 가는 반찬가게의 방식을 냉정하게 이야기하면 고단수 영업 전략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냉정하게 이야기하기 싫다. 사람은 먼저 마음을 내는 사람에게 끌리는 게 아닐까? 먼저 베풀면 지금 손해가 나도 나중엔 부메랑처럼 돌아오게 되어 있는 것이다. 똑같이 팔아도 또는 그게 영업 전략이라 해도 팔아보겠다는 마음보다 더 주겠다는 마음을 내보이는 게 우릴 기분 좋게 한다. 결국 장사든 뭐든 인간이 하는 일이다. 기계가 하는 일이 아니다. 그러니 우리가 누군가를 향해 말하고, 행동하고, 마음먹는 건 저기 저 세상을 향해 부메랑을 던지는 것과 같은 것이다. 언뜻 저 멀리 날아간 듯 보여도 시간이 지나면 크게 돌아서 나에게 되돌아온다.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니, 나에게도 그런 일이 많았다. 내가 욕심을 내거나 잘못된 선택을 했을 때, 당장 이상 없어 보여도 언젠가 어떤 식으로든 돌아왔다. 그건 논리적으로 딱 이만큼 했으니 이만큼 돌아온다는 개념이 아니다. 어쩌면 부메랑을 던지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그 모든 게 달라졌던 걸지도 모른다. 누구나 좋은 사람이 되길 원한다. 착한 마음으로 살길 바란다. 하지만 이 비좁고 삭막한 도시의 부대낌이 우릴 뒤쫓아 오면서 여유를 잃어버린다. 언제나 급하게 말하고 경솔하게 행동한다. 실수를 반복하며 우린 마모되어 간다. 도시의 부품이 되어 마모되는 삶은 엉뚱한 곳으로 부메랑을 날린다. 이걸 원한 게 아닌데 말이다.



가볍고 투명한 공기가 가득한 숲과 들판으로 달리자. 그 푸른 배경의 한가운데 누워 잠시 낮잠을 자고, 천천히 눈을 떠보자. 팔베개한 채 저 하늘을 보며 가만히 생각해보자. 생각이 없어져 더 생각이 나지 않을 때까지 착하게 뒹굴자. 그렇게 철없어지면 조용히 일어나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풍경을 향해 부메랑을 힘껏 날리자.


단지, 인간답고 싶다는, 그 마음 하나로 약속된, 가벼운 내일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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