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목요일은 특별하다. 왜? 아내가 좋아하는 드라마 때문이다. 제목은 남자 친구. 송혜교와 박보검이 나오는 이 드라마는 케이블 채널 tvN에서 볼 수 있다. 갑자기 웬 홍보? 아무튼 요즘 아내는 이 드라마 보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원래 드라마를 좋아하지만, 아무 드라마나 좋아하진 않는다. 나름 평론가적 시점에서 드라마를 분석하는데 그럴 땐 마치 전문가 같다. 우리 집에 드라마 작가와 PD가 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유치한 대사가 나오거나 막장 설정이 이어지면 아예 TV를 꺼 버린다. 엄격하다. 덕분에 나는 아무 드라마나 볼 수 없다. 매의 눈으로 엄선한 드라마들만 시청이 가능한데 그런 면에서 남자 친구는 합격점을 받았나 보다. 요즘 툭하면 나에게 와서 이런 말을 남긴다.
“나, 남자 친구 보러간다아아~”
이렇게 도발하면 나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 한데 상대가 박보검이라니. 너무하다. 어쩔 수 없이 아이돌 그룹 여자 친구를 소환해 ‘나, 여자 친구 보러간다아아’ 이렇게 유치하게 논다. 서로 도발을 끝내고 각자 할 일을 하다 결국 TV 앞에 모이는데 드라마는 정말 재밌다. 나도 빠져서 같이 본다. 그런데 사실 아내는 송혜교 팬이었다. 송혜교가 나오는 드라마는 거의 빠지지 않고 보았다. 게다가 송혜교가 나오는 드라마는 다 성공했다고 한다. 나는 그런가 보다 하고 담담하게 이야기했지만, 속으로는 좋아하는 상대가 박보검이 아니라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유치함이 하늘을 뚫고 우주로 뻗어 나갈 정도다. 끝났다. 아쉽다. 다음 주 수요일, 목요일을 기다린다.
그러나 끝없이 이어지는 드라마는 없는 것이다. 드라마는 종영했다. 이제 송혜교도, 박보검도 더 이상 수요일, 목요일에 찾아오지 않는다. 아내는 황금시대가 끝났다며 아쉬워하고 있다. 잠시 여운을 느낀 후 내가 왜 이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인지 생각해보았다. 2주 전, 아름다운 드라마의 한 장면을 보다 우연히 아내의 얼굴을 힐끔 보았다. 어딘가에 푹 빠져 있는 모습.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조용히 감동했다.
그렇게도 열심히 찾아 헤맨 우리의 행복, 여기 와 있다. 아무런 기척도 없이 다가온 작고 소중한 행복. 그것에 대해 쓰고 싶었다. 우리에게 그런 순간은 시시때때로 찾아와 마음의 문을 두드리지만 어쩐 일인지 응답이 없다. 더 멋지고 더 좋은 세상을 향한 입장권을 구하러 출타 중이다. 환하게 웃으며 찾아온 그 손님의 흔적을 발견하고 깨달았다. 행복해지는데 입장권 따윈 없어도 된다는 걸. 같은 곳을 바라보다, 내 곁에 있는 사람의 얼굴을 볼 수 있고, 표정을 느낄 수 있고, 함께 웃을 수 있다면. 손 잡아줄 수 있다면.
드라마는 드라마라고 선 긋고 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드라마처럼 살고 싶다. 부끄러워도 용기 내면서 사는 게 인생에 대한 예의 아닌가. 예의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 박보검이 아니라서 미안하지만 그대도 송혜교는 아니니 걱정할 필요 없다. 우리의 드라마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오글거리지만 그냥 용기 내어 다짐해본다. 나는 남편이지만 그대에겐 남자 친구처럼. 동화 같은 이야기를, 그 짧은 순간의 행복을, 지금 여기 우리 앞에, 날마다 조용히 가져다 놓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