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꿨다. 안개가 자욱했다. 붉은색 하늘은 언제라도 무너질 준비가 된 것처럼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와 안개를 데려갔다. 나는 축구장보다 더 넓은 탁 트인 공간에 서 있었다. 전광판에 2540년이라는 글자가 빛났다. 철로 된 바닥이 지진 난 것처럼 흔들리기 시작했다. 바닥이 투명하게 바뀌었다. 사람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누워 있는 그 모습은 마치 공동묘지의 묘비와 봉분, 관뚜껑까지 거대한 칼로 단번에 잘라내고 남은 단면을 보는 듯했다. 나는 내가 왜 여기 있는지 생각해 보았다. 아무도 나에게 여기 있으라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여기 있었고 이 꼴을 보고 있다. 저들처럼 누워 있는 것이 아니라, 두 발로 땅을 딛고 서서 내가 왜 이러고 있는지 고민 중이었다. 나는 또 다른 나를 만들었다. 타인을 만들고, 타인의 생각을 만들고, 그들과 내가 사는 세상을 만들었다. 만들어진 세계에서 꿈꾸는 것처럼 살다 어느 날 갑자기 비밀을 알아버렸다.
나는 철로 된 차가운 바닥 아래 누워 있었다. 그는 나였다. 눈을 감고 있었다. 머리에 이상한 유리관을 여러 개 꽂은 채 평온한 표정으로 잠들어 있었다. 아니, 자는 건지 죽은 건지 모르겠다. 움직이지 않으니 그게 죽은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죽었다고 해도 아무 문제 없어 보였다. 그런 것이다. 저항하지 않고 시키는 대로 얌전히 모든 걸 받아들이는 인간은 평온해 보이지만, 죽은 것과 다름없다. 죽어가면서 순응하고, 죽은 채 숨 쉰다. 근데 나는 왜 여기 있는가? 왜 나만 불쑥 튀어나와 저것들을 보며 엉뚱한 상상을 하고 있는가?
밤이 되었다. 약속 장소로 차를 타고 갔다. 주차를 끝내고 생각해 봤다. 과연 이대로 괜찮은 것인가? 정말 이대로 괜찮은 것인가? 진짜 이대로 괜찮은 것인가? 중국풍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1층에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유명한 집이라고 했다. 짜장면 냄새인지, 짬뽕 냄새인지, 그것도 아니면 탕수육? 군만두? 아무튼 혀에 침이 고이는 냄새가 실내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직원들은 서빙하기 바빴다. 바로 앞에 보이는 계단으로 2층에 올라갔다. 원형 테이블에 앉아 이야기하는 남자 셋, 여자 한 명, 그 익숙한 얼굴들을 향해 걸어갔다. 나를 처음 발견한 지구가 말했다.
“어, 왔어? 근데, 너 머리가 왜 그 모양이냐?”
“그냥 한 번 해봤어. 어떻냐?”
테이블 가운데 놓여 있는 꿔바로우를 젓가락으로 집으며 평화가 한마디 했다.
“너무 빠글거리지 않냐? 아줌마 같다.”
“내가 살짝만 해달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말했는데?”
“한숨 자고 일어났더니 이 모양일세.”
현재가 술잔을 내밀며 말했다.
“마음에 안 들면, 원상복구 해달라고 하지.”
“복구하는데도 몇 시간 걸린대. 머릿결 두 번 죽이기 싫어서.”
나는 현재의 술잔을 채우고, 미래에게 고량주 병을 들이댔다.
“미안, 차 갖고 왔어.”
“아, 그래? 콜라?”
“그래, 난 괜찮아 보이는데? 원래 파마하고 좀 지나야 자연스러워지거든.”
“얼마나?”
“한 보름?”
잠시 후 식당 직원이 메인요리라며 북경 오리를 테이블 위에 놓았다. 북경의 미세먼지 때문이었는지, 오리는 너무나 왜소했다. 지구, 평화, 현재, 미래도 그 작은 몸집에 놀란 것 같았다. 미래가 메뉴판을 다시 들여다보며 말했다.
“그러니까 이게 저거란 말이지?”
“얼만데?”
“십이만 원.”
“헐.”
지구가 제일 먼저 젓가락을 들었다.
“촌티 내지 말고, 얼른 먹어.”
“먹을 게 있을까?”
평화는 꽃빵을 연유에 찍어 먹으며 나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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