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서 현재가 상상했다. 소년이 있었다. 그는 이야기를 좋아했다.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이 뭐냐고 물어보면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말할 것이다. 이야기라고.
어느 날, 집에 노인이 찾아왔다. 노인은 소년의 아버지보다 키가 크고, 백발에, 눈이 새까맸다. 흰자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머니는 노인을 목사님이라고 불렀다. 목사님은 거실에서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소년을 모아놓고 기도했다. 기도 중에는 항상 예수님의 이야기를 함께 들려주었다. 소년은 예수님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어서 목사님이 올 때마다 더 이야기해달라고 졸랐다. 목사님은 착한 일 하나를 하면 예수님 이야기를 들려주겠다고 했다. 그날부터 세상의 모든 착한 일은 소년의 차지였다. 어떤 날은 하루에 열 번이나 착한 일을 하고 목사님이 있는 교회로 뛰어가기도 했다. 그렇게 일 년쯤 지났을까? 목사님은 이제 더 들려줄 이야기가 없다고 했다.
“목사님, 예수님 이야기가 아니라도 좋아요. 아무 이야기나 해주세요. 제발요.”
“좋아. 대신 이 이야기는 절대로 누구에게도 말해선 안 돼. 알겠지? 우리만의 비밀이야.”
“물론이죠. 빨리 이야기해 주세요. 빨리.”
목사님은 들뜬 소년을 데리고 교회 지하실로 내려갔다. 지하실 문을 여니 아주 긴 복도가 나왔다. 그 복도 양옆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문이 있었다. 문마다 숫자가 적혀 있었는데 목사님은 ‘2420’이라고 적힌 문 앞에서 뒤돌아섰다.
“이 방에 들어가면 아주 재밌는 이야기가 있지만, 조심해야 할 게 하나 있단다.”
“뭐요?”
“들어가서 소리를 내거나 누군가와 말해선 안 돼. 절대.”
“소리 내면 어떻게 돼요?”
“못 돌아올지도 몰라.”
“대박! 빨리 가요.”
“그럼, 자, 눈 감고 나를 따라 들어와.”
소년은 눈 감은 채 목사님을 따라 걷고 또 걸었다. 근데 아무리 걸어도 목사님이 멈추지 않았다. 그렇다고 눈을 뜰 수도, 말할 수도 없었다. 1시간 넘게 걸은 느낌이다. 다리 아프고 힘들어서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그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목사님, 목사님, 언제까지 가야 해요? 눈 떠도 돼요?”
“…….”
“눈 뜨고 싶어요. 다리도 아프고. 네?”
“…….”
“아, 목사님!”
결국 참지 못하고 눈을 떴다. 바닥이 철로 된 복도를 어떤 사람들과 함께 줄지어 걷고 있었다. 손목에 채워진 수갑은 앞뒤 사람과 쇠사슬로 연결되어 있었다. 전부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이었다. 옆에 있는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야, 여기 어디야?”
“조용히 해. 말하다 걸리면 죽어.”
“죽는다고?”
“조용히 좀 해.”
걷고 또 걸었다.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인데도 끝없이 걸었다. 그러다 유리방으로 다섯 명씩 들어갔다. 같은 방에 갇힌 아이들은 모두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었다. 아무도 소리 내지 않았고,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30분쯤 지났을까. 문이 열리고 다섯 명이 더 들어왔다. 그 아이들도 역시 똑같은 자세로 앉았다. 한 아이가 내 옆으로 다가와 속삭였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