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이 두 개다. 하늘에 거짓말처럼 두 개의 태양이 떠 있다. 힘겹게 눈을 뜬 인재는 쓰레기 더미들 사이에 쓰러져 있었다. 몸을 움직이려 해봤지만, 말을 듣지 않았다. 꿈인가? 아니면 마취된 건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머리 위로 누가 다가와 말했다.
“아저씨, 아직 쓰러져 있어요?”
“엥? 너 어떻게?”
“어떻게?”
“괜찮아?”
“보다시피, 멀쩡하죠.”
“근데 난 왜?”
“왜? 뭐가 어떤데요?”
“몸이 안 움직여!”
“그럼, 움직일 줄 알았냐?”
“뭐? 너 왜?”
“왜?”
인재를 내려다보던 민정의 얼굴이 서서히 영래의 얼굴로 변해갔다. 초등학생이 한 생애를 빠르게 거쳐 노인이 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소름 돋는다. 표독스러운 표정으로 인재를 노려보던 영래의 얼굴이 시커멓게 타들어 갔다. 사람의 얼굴이 재가 되어 사라진다. 인재는 소리를 질렀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의식이 아득해진다.
“아저씨, 아저씨!”
민정의 목소리. 다시 눈을 뜬 인재 앞에 민정의 얼굴이 나타났다. 깜짝 놀란 인재는 벌떡 일어나 방어 자세를 취했다. 그러고 보니 이제 손발도 자유롭게 움직여진다.
“아저씨, 괜찮아요?”
“너, 너, 인마! 너, 누구야?”
“헐, 이 아저씨가 머릴 다쳤나?”
경계를 푼 인재는 주변을 둘러봤다. 여전히 하늘엔 두 개의 태양이 떠 있었다. 인재가 누워있던 벤치와 주변 풍경은 딱 도심 어딘가의 공원이었다.
“여긴 어디지?”
“저도 몰라요. 눈 떠 보니 여기였어요.”
“우리가 정말 소설의 세계에 온 건가?”
“일단 지나가는 사람 있으면 뭐라도 물어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래. 섣불리 움직이지 말자.”
인재와 민정은 그렇게 벤치에 앉아 사람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기다리고 기다렸다. 1시간쯤 기다렸다. 2시간이 넘게 기다렸다. 슬슬 짜증이 밀려왔다.
“아니, 무슨 공원에 사람이 없어?”
“아저씨! 마냥 기다리다가는 굶어 죽겠어요. 배고파요.”
“안 되겠다. 찾아 나서야겠다. 일어나자.”
벤치에서 일어났다. 인재와 민정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동시에 말했다.
“근데, 어디로?”
둘 다 한숨을 푹 쉬며 다시 앉았다. 민정이 답답하다는 듯이 말했다.
“아니, 무슨 어른이 이렇게 리더십이 없어요?”
“헐, 내가 어른인 걸 알긴 아는구나!”
“알죠. 도무지 믿음직한 구석이 없는 어른. 쩝.”
“도무지 어른 공경을 모르는 녀석. 쩝.”
그렇게 티격태격하고 있는데 공원 오솔길로 사람 2명이 걸어보는 게 보였다. 동혁과 준수였다. 그 둘은 인재와 민정을 보고 반갑다는 듯 달려오다 갑자기 멈춰 섰다. 그러더니 황급히 자기들 쪽으로 오라고 손짓하기 시작했다.
“아니, 무슨 일이지?”
“그러게요. 뭔가 되게 급해 보이는데요?”
인재와 민정은 벤치에서 일어나 동혁과 준수가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동혁과 준수는 그 둘이 움직이는 걸 확인하더니 다른 길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인재도 민정도 영문도 모른 채 달리기 시작했다.
“아니, 왜? 갑자기 왜 달려?”
“몰라요. 이야기도 안 해주고 왜 저래.”
10분쯤 달렸을까? 공원을 벗어나 빌딩 숲 사이의 어느 골목에서야 멈춰서서 숨을 골랐다. 지친 표정의 동혁이 인재에게 말했다.
“헉헉, 큰일 날 뻔했어요.”
“헉헉, 아니, 왜요? 갑자기 왜?”
“뒤에 쫓아오는 사람들 못 봤어요?”
“쫓아오는 사람들?”
“네, 총까지 들고 쫓아 왔는데….”
“총이요?”
여기가 무슨 미국인가? 총이라니? 준수가 바닥에 주저앉으며 말했다.
“여기 진짜 소설의 세계인가 봐요.”
“네?”
“저기 하늘에 태양 2개 떠 있는 거 봤어요?”
“네, 봤어요.”
“그럼, 이건요?”
준수는 건물 벽면을 손으로 터치했다. 그랬더니 벽면에 화면이 하나 나타났고 뉴스가 나오기 시작했다.
“과학자들은 태양계의 균형이 무너져 조만간 궤도를 이탈하는 행성들이 속출할 것이라 내다보고 있습니다. 세계 정부 UNG의 5대 의장인 칼 마르크스는….”
“아니, 이건?”
“그래요. 전에 민정이 서재에서 발표했던 그 소설….”
옆에서 듣고 있던 민정이 눈을 빛내며 외쳤다.
“와! 대박! 이게 진짜 내가 쓴 소설 속이라고요?”
인재와 동혁, 준수는 어쩔 줄 몰라 하며 좋아하는 민정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인재가 민정에게 물었다.
“그럼, 그 총 들고 쫓아오는 사람들은 뭐야? 너, 기억 안 나?”
“아…. 그게…. 아마, 신비주의자들을 소탕하는 세계 정부 요원들?”
“그럼, 우리가 신비주의자야?”
“정부 말 안 들으면 그냥 다 신비주의자예요. 킥킥”
“야, 웃음이 나오냐? 목숨 걸고 달렸는데….”
“음, 여기가 제 소설 속 세계라면….”
“세계라면?”
“아마, 곧 텔레스크린 방송이 시작될걸요?”
“텔레스크린?”
준수가 그 단어를 듣고는 되물었다.
“설마, 1984에 나오는 그거?”
“뭐 비슷한 거죠.”
민정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주변에 있는 빌딩의 벽면이 모조리 스크린으로 변했다. 5, 4, 3, 2, 1 하는 카운트다운이 끝나고 화면에 녹색 선이 하나 나타났다. 뒤이어 어떤 목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의 파장에 따라 선이 출렁이며 움직였다. 근데 그 목소리…. 듣다 보니 어딘가 익숙한 목소리다.
“할아버지?”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