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쓰는 사람

by 서효봉

작업실 의자에 앉아 스마트폰을 본다. 전화를 기다리는 것도 아니고 특별히 할 게 있는 것도 아니다. 멍하니 앉아 손가락 끝으로 책상을 계속 두드리다 보니 대체 뭐 하는 건가 싶다. 스마트폰이라도 만져야 쓸모 있는 인간이 되지 않을까 해서 화면을 이리저리 터치해 본다. 기사를 보고, 댓글을 보고, 뒤로 가기를 계속 누르다 스마트폰을 놓는다. 별 소용없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소설가의 모임 이후로 공부가 안된다. 무슨 저주에라도 걸린 듯하다.


다음 모임은 일주일 뒤. 벌써, 걱정이다. 지금부터라도 젠가 연습을 해둘까 생각하다 머리를 흔든다. 그냥 소설책 몇 권 가져다 짜깁기하자. 인재는 양 손바닥으로 머리를 두 번 치곤 고개를 들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공부해야지. 노트북 전원 버튼을 누른다. 동영상 강의를 켜고 연결된 이어폰을 귀에 꽂는다. 책을 펴고 화면 속 강사의 이야기를 듣는다. 눈과 귀가 영상을 향해 열려 있는데 머릿속에 입력되는 게 없다. 멍하니 있다 정신을 차리니 강의가 끝났다. 이번엔 양손으로 뺨을 때려본다. 의자에서 일어나 작업실 문을 열고 복도로 나갔다. 복도는 쥐 죽은 듯 조용하다. 복도 끝 남자 화장실로 들어갔다. 소변을 보는데 화장실 문이 열리면서 준수가 들어왔다. 준수는 잠시 멈칫하더니 인사했다.


“인재씨, 안녕하세요.”


인재는 오줌 누는 자세에서 고개만 살짝 끄덕이며 말했다.


“아, 예. 안녕하세요.”


준수는 인재 옆 소변기에 서서 오줌을 누며 말했다.


“잘 돼가요?”

“소설 쓰는 거요? 안 되네요. 집중이 안 돼요.”

“그렇죠? 집중하는 게 힘들어요.”


나란히 볼 일을 마친 인재와 준수는 손을 씻고 복도로 나왔다. 인재는 커피 한잔하자는 준수의 제안에 응접실로 따라갔다. 준수는 커피머신에 내려져 있는 새카만 원두커피를 머그잔에 부었다. 커피 향이 비밀스럽게 퍼졌다. 준수는 커피를 인재에게 건네주며 소파에 앉았다. 인재는 준수에게 모임 이후로 집중이 안 된다고 했다. 물론 소설 쓰기는 아니지만, 그게 뭐든 집중이 안 되는 건 사실이다. 준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곤 말했다.


“저도 그랬어요.”


인재도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혹시 그때 먹은 약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요?”

“그 알약이요? 저도 처음엔 인재씨처럼 좀 꺼림칙했어요.”

“근데 그게 무슨 약인가요?”

“일종의 최면제 같은 거라고 들었어요.”


인재는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최면제요?”

“수면을 유도하는 최면제라는데 약간 중독성이 있나 봐요.”

“그런 약을 아무렇게나 먹어도 되나요?”


준수는 말없이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잠시 뜸을 들이곤 대답했다.


“걱정마세요. 여기 주인장 예전에 의사였다니까.”

“의사요?”

“정신과 의사였다고 들었어요. 지금은 은퇴했지만.”


인재는 뭔가 묘한 느낌이 들었다. 정신과 의사가 운영하는 소설가의 서재라. 이것만으로도 소설 한 편은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잠시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러고도 30분 정도 이야기를 더 했다. 준수는 친절한 사람이었다. 같이 있는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스타일이다. 철학적인 이야기를 좋아했지만, 인재는 그게 부담스럽지 않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인재는 준수에게 왜 소설가가 되었는지 물었다. 준수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세상은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거든요. 세상이 이러니 소설을 쓸 수밖에요.”


인재는 무슨 말인지 감이 안 왔다. 차라리 세상은 돈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했다면 이해가 쉬웠을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이니 선택했다고 말했으면 좋았을 텐데. 준수는 세상이 어쩌고 해서 소설을 쓸 수밖에 없다고 했다. 진지한 이야기에 분위기가 가라앉자 이번엔 준수가 인재에게 물었다.


“혹시 모임 이후로 꿈 안 꿨어요?”


인재는 격하게 공감하며 대답했다.


“맞아요! 계속 잠이 쏟아지고 잠만 자면 무슨 꿈을 꿔요.”


준수는 인재를 부럽다는 듯 쳐다보며 말했다.


“계속 그 꿈을 기억하려고 해봐요. 생각나는 대로 막 쓰다 보면….”

“쓰다 보면?”

“소설 한 편 금방이죠. 여기 있는 사람들 다 그랬어요.”


인재는 갑자기 마음이 편해졌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감과 초조함으로 가슴이 답답했는데 준수의 말을 듣고 나서부터 그 답답함이 가라앉았다. 커피를 마셔서 그런지 멍청했던 의식도 또렷해졌다. 작업실로 돌아온 인재는 노트북에 워드 프로그램을 실행했다. 하얀 바탕에 검은 작대기가 깜빡거린다. 준비된 그 작대기를 한참 쳐다보다 마우스로 저장을 눌렀다. ‘제목없음’으로 저장되었다. 바탕 화면에 저장된 파일을 확인했다. 다시 불안해졌다. 답답해졌다. 오늘은 더 공부할 수 없을 것 같다. 시간만 낭비할 것이다. 노트북을 끄고 가방에 집어넣었다. 대충 가방을 챙겨 나서려는데 노크하는 소리가 들린다. 작업실 문이 열렸다. 민정이었다. 민정은 수첩과 연필을 들고 문 앞에 서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아저씨, 벌써 집에 가요?”

“그래. 오늘은 컨디션이 안 좋아서. 아, 그리고 나 아저씨 아니다.”

“그럼 아줌마세요?”

“너 지금 그걸 개그라고 한 거니?”

“아저씨를 아저씨라 부르지 못하다니. 이거 어디서 들어봤는데.”

“아버지겠지. 근데 뭐 하러 왔어?”


민정은 기다렸다는 듯이 수첩을 넘기고 연필을 고쳐 쥐었다. 기자 같은 포즈로 서서 인재에게 질문하기 시작했다.


“혹시 어제 무슨 꿈 꿨어요?”

“꿈?”

“꿈 몰라요? 잘 때 꾸는 거 있잖아요.”

“그러니까 그걸 왜 물어보냐고.”

“뭐,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죠. 재밌으면 제 소설에도 갖다 쓰게요.”

“아하, 그러니까 이야기 훔치러 왔구만.”

“훔치다뇨? 취재하러 온 거예요. 취재!”


인재는 발끈하는 민정의 머리를 쓰다듬고는 가방을 어깨에 둘러멨다.


“나도 말해주고 싶은데 무슨 꿈인지 기억이 안 나네요. 꼬마 기자님”

“알겠어요. 기억나거든 말해주세요. 최대한 자세히”


민정의 배웅을 받으며 소설가의 서재를 나왔다. 민정은 어떻게든 이야깃거리를 얻고 싶은 모양이다. 멀어지는 인재를 향해 손까지 흔들며 배웅했으니 말이다. 인재는 방으로 돌아와 바닥에 누웠다. 대자로 누워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다 갑자기 벌떡 일어나 노트북을 꺼냈다. 자판을 두드리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손이 저절로 움직이는 것 같다. 꿈에서 보았던 장면을 떠올려 묘사를 하는데 생각의 흐름을 손이 따라가지 못했다. 묘사를 건너뛰고 계속 썼다. 생각나는 것만 막 쓰기 시작했는데, 쓰다 보니 기억이 하나둘씩 났다. 세 장까지 쓰고 나서 손이 멈췄다. 위로 스크롤 해 처음부터 읽어보는데 기분이 묘하다. 이런 것도 소설인가 싶지만, 첫 번째치곤 제법이라는 생각도 든다. 저장을 클릭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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