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정의 기억
아빠에 대해, 묻지 마세요. 물어봐도 대답해 줄 수 있는 게 별로 없으니까요. 아는 게 없으니 저는 아빠를 싫어하는 걸까요? 근데 그렇게 생각하면 왠지 슬퍼요. 왜냐면 싫은지, 좋은지도 잘 모르겠거든요. 제가 기억하는 건 놀이터에요. 놀이터에서 장난감 갖고 놀다 아빠가 오면 달려가 그네를 탔던 기억이 있어요. 그네를 탈 때 아빠는 저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민정아,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게 뭔 줄 아니?”
“몰라, 그게 뭐야?”
“다른 세계로 떠나는 여행이야.”
“여행?”
“그래, 여행. 민정이도 여행 가고 싶어?”
“응,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거 할래.”
“그래, 그래. 나중에 꼭 아빠랑 같이 여행 가자.”
“응!”
근데, 아빠는 그 여행을 혼자 가버렸어요. 간다는 말도 없이 가더니 오지도 않네요. 엄마는 아빠가 하늘나라로 갔다고 했지만, 할아버지는 끝까지 그럴 리 없다고 했어요. 그것 때문에 엄마랑 할아버지는 사이가 별로예요. 저는 어떻게 생각하냐고요? 당근, 할아버지 편이죠. 왜냐면 아빠가 죽었다는 증거가 하나도 없거든요. 경찰 아저씨들도 실종이라고만 했고요. 엄마도 사실 처음엔 저처럼 생각했어요. 근데, 그 연못에서 아빠 차가 발견되고 나니 엄마는 일주일 내내 울었어요. 그리곤 미국으로 떠나버렸죠. 아빠도, 엄마도 왜 저를 두고 떠난 걸까요? 저는 안중에도 없나 봐요. 아빠는 세상에서 제일 재밌다는 걸 하러 떠나고, 엄마는 필요할 때만 가끔 전화해요. 할아버지만 저를 처음부터 끝까지 보살펴 주셨어요. 그러니 제가 할아버지 편일 수밖에 없겠죠? 안 그래요?
영래의 기억
아들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놈이 나타났다. 그놈은 나 때문에 아들이 실종됐다고 비난했다. 난 인정할 수 없었다. 왜 나 때문인가? 말도 안 되는 헛소리다! 사라진 아들을 찾아 1년을 돌아다녔다. 대체 어디로 사라진 걸까? 아들을 본 목격자의 이야기로는 어느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녀석을 봤다고 한다. 그쪽으로는 가봐야 산이고, 끝까지 가면 바다일 뿐이다.
도저히 행방을 찾을 수 없어 결국 흥신소에 의뢰했다. 흥신소 사람들은 이런저런 명목으로 추가 비용이 든다는 말만 계속하다 한 달이 지나서야 쓸만한 정보를 들려줬다. 아들의 차가 지나간 요금소를 중심으로 탐문하다 이상한 소문을 들었다고 한다. 그 근처에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자주 사라지는 연못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요?’라고 물었더니 그 연못에 가라앉아 있다 발견된 차가 하나 있었는데 그 차가 아들의 차라는 것.
나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그 연못으로 출발했고, 경찰에도 이 사실을 알렸다. 경찰은 한참 지난 실종자의 차가 연못에서 나온 게 대수냐는 반응을 보이더니 대충 처리해버렸다. 차에서 시신이 발견된 것도 아니고 그저 완전히 녹슨 차만 덩그러니 나왔기 때문이다. 그놈은 경찰서로 쳐들어가 한바탕 난리를 부렸고, 보기 좋게 유치장에 갇혔다. 갇혀서 생각해 보니 애초에 뭔가 잘못된 게 아닌가 싶었다. 시신이 나온 게 아니니 아직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 찾는 게 우선이지 화내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그렇게 성질 난 그놈을 달래고 있는데, 같이 갇혀 있던 사람 중에 한 영감이 다가와 말했다.
“그 연못에 갔었소?”
“네. 근데…. 어떻게 아셨죠?”
“경찰서에서 그렇게 크게 떠드는 데 모르는 게 이상하지”
“죄송합니다. 너무 화가 나서”
“뭐, 나한테 죄송할 게 있나. 허허”
“혹시 연못에 대해 아시나요?”
“암, 알지. 내가 그 연못을 10년이나 연구했는데.”
“연구요? 10년이나?”
나는 그 영감이 미친 게 아닌가 싶었지만, 달리 할 일도 없는 곳이라 그 이상한 이야기를 계속 들었다.
“그 연못에서 사람 사라지는 건 알지?”
“네. 안 그래도 그걸 여쭤보고 싶었습니다. 사람이 사라진다는 게 무슨….”
“정확하게는 다른 곳으로 가버린 거야.”
“가버려요?”
“뭐 내가 이런 이야기해 봐야 안 믿겠지만…. 거긴, 가끔 시간이 멈춘다네”
“예에?”
“무슨 말인지 모르겠으면 내가 작년에 쓴 논문을 참고하게. 뭐 여기 들어온 걸 봐선 논문 같은 거나 쳐다보고 있을 양반은 아닌 것 같지만.”
나는 그 영감이 어느 대학의 교수였다가 그 연못을 연구하면서 모든 걸 잃었다는 이야기를 오랜 시간 들었다. 결론은 그 연못이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이상하고 위험한 곳이라는 것. 나는 유치장을 나온 뒤 이틀 정도 있다 그 영감을 다시 만났다. 어느 카페에서 만난 그 영감은 유치장에서와는 달리 진짜 교수 같은 차림새였다. 사실 그때까지도 내가 왜 이런 미친 이야기에 관심이 가는지 잘 몰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도 그놈도 본능적으로 이 이야기가 아들의 행방과 관련이 있음을 느꼈던 것 같다. 영감은 나의 의사 가운을 보고 진짜 의사였구만 하고 놀라더니 갑자기 비밀 이야기하듯 다가와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이런 이야기 안 믿겠지만, 일단 들어보겠나?”
“네, 부탁드립니다.”
“거기 연못 말일세. 다른 세계로 가는 문이 열리는 곳이라네.”
“다른 세계로 가는 문?”
“잠시 시간이 멈추면 문이 열리네. 언제 어느 지점에서 열리는지는 모르지만. 누굴 찾고 있나?”
“아들을 찾고 있습니다.”
“쯧쯧. 엔진이 필요하겠구만.”
“엔진?”
여기서 그놈이 나오는 바람에 모든 게 잘못되었다. 그놈은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갓난아이를 두고 사라진 아들 녀석을 찾기 위해. 무슨 짓이든.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