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세계로

by 서효봉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그러나 내용은 꽤 소름 돋는 내용이었다. 모든 사람의 외부 활동을 금하고, 3명 이상 모이면 즉각 체포된다는 게 주된 내용이었다. 방송을 듣던 인재와 동혁, 준수는 민정을 원망스럽게 쳐다봤다. 민정은 위기감을 느꼈는지 대꾸했다.


“왜요? 내 소설 좋다고 난리더니….”


인재가 흘겨보던 시선을 정리하며 말했다.


“그럼, 이제 어쩌죠? 뭘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이대로 있다가 잡혀가면 일만 더 복잡해질 텐데….”


그때 갑자기 세상이 절반쯤 어두워졌다. 하늘에 떠 있던 태양 가운데 하나가 마치 형광등 꺼지듯이 꺼졌다. 동시에 어디선가 사이렌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더니 골목길 양쪽으로 경찰차처럼 생긴 차들이 밀고 들어왔다. 동혁이 담배를 꺼내 물며 말했다.


“이거, 뭐, 벌써 복잡해진 거 같은데?”


짙은 선글라스를 낀 세계 정부 요원들은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다가와 네 명을 체포했다. 여긴 미란다 원칙 같은 것도 없나 보다. 순식간에 체포된 네 명은 수갑을 차고 짐짝처럼 호송 버스에 실렸다. 버스에는 이미 체포된 사람들이 10명쯤 타고 있었는데 그중 두 명이 벌떡 일어나 그들을 향해 외쳤다.


“여기예요. 여기!”


희경과 루키는 마치 여행하다 일행을 만난 듯 태연하게 그들에게 손짓했고 네 명은 자연스레 그 두 사람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인재가 희경에게 물었다.


“희경 씨, 어떻게 된 거예요?”

“저희는 눈 떠 보니 이 버스 안이었어요.”

“버스 안이요?”

“네, 수갑 차고 버스에 앉아 있었는데, 버스가 무슨 시티투어 하듯이 돌아다니더라고요.”

“부럽네요.”

“네? 다른 분들은 어떻게?”


인재는 네 명이 겪었던 일과 뉴스에서 봤던 것 그리고 영래로 추정되는 목소리에 관해 이야기했다. 희경과 루키는 처음엔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설명을 들으면서 이 상황을 이해했다. 듣기만 하던 루키가 말했다.


“그럼, 이제 어쩌죠? 이대로 잡혀가면….”


준수가 민정을 쳐다보며 말했다.


“민정아, 우리 지금 어디로 가는 걸까?”

“글쎄요…. 세계 정부의 본부로 갈 것 같은데….”

“본부? 그럼,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있는 곳?”

“네, 아마도….”


그렇게 여섯 명의 소설가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호송 버스는 도시의 중심에서 벗어나, 긴 다리를 건넜다. 다리를 절반쯤 지났을 때 하늘에 떠 있던 남은 하나의 태양마저 꺼졌다. 길고 긴 어둠을 달리는 동안 호송 버스 안에 있던 사람들은 전부 잠이 들었다. 인재가 눈을 떴을 땐 이미 세계 정부로 추정되는 어떤 건물의 내부였다. 다른 소설가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 인재는 수갑을 찬 채로 어떤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잠시 후 문이 열리고 익숙한 얼굴이 들어왔다.


“오랜만이군요.”

“영감님! 이게 대체….”


영래였다. 복장이 무슨 스타워즈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특이하긴 했으나 분명 영래였다. 영래는 인재에게 다가가 수갑을 풀어주더니 말을 이었다.


“여기까지 찾아올 줄은 몰랐네요. 민정이를 보살펴줘서 고마워요.”

“괜찮으신가요? 왜 갑자기 떠나셨어요?”

“인재씨도 대충 짐작할 텐데요? 내가 내가 아니라는 걸.”

“네, 대충은…. 지금은 그럼 원래의 영감님이신가요?”

“사실, 난 그림자에 불과해요.”

“그림자?”

“네, 그놈은 이미 여길 떠나 다른 세계로 가버렸어요. 난 그놈이 여기 남겨둔 허수아비지 같은 존재죠.”

“그게 무슨….”

“차차 알게 될 거예요. 아무튼, 지금의 저는 그놈의 그림자라 언제 변할지 몰라요. 일단 이 세계는 위험하니 빨리 벗어나는 게 좋을 거예요.”

“어떻게….”

“제가 이 지도에 소설이 끝나는 엔딩 지점을 표시해 뒀어요.”

“엔딩 지점이요?”

“네, 소설의 엔딩 지점에 함께 넘어온 소설가들이 다 모이면 다음 세계로 갈 수 있죠. 서둘러요. 시간이 없어요. 오늘 자정 전에 그 지점에 가야 해요. 내일이 되어, 지점이 바뀌면 저도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인재는 영래가 넘겨준 지도를 손에 들고 문밖으로 나갔다. 복도를 달리고 달리니 탁 트인 공간이 나왔다. 인재처럼 손에 지도를 든 다른 소설가들을 마치 약속한 것처럼 만났다. 그들 또한 이미 모든 걸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함께 지도에 표시된 지점을 향해 달렸다. 그렇게 달려 도착한 곳은 천장이 아주 높은 로비 같은 곳이었다. 건물 3층 높이쯤 되는 거대한 나무가 크리스마스트리처럼 장식되어 서 있었다. 잠시 넋을 잃고 나무를 바라보던 소설가들은 그 나무의 맞은편 벽면에 그려진 드래곤을 발견했다. 준수가 말했다.


“이제, 뭘 어떻게 하지?”


인재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러게요. 그냥 모이면 어떻게 된다는 것 아니었나?”


그때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멀쩡히 서 있던 그 나무가 소설가들을 향해 쓰러지는 게 아닌가?


“으악! 달려!”


너무 늦었다. 나무는 여섯 명의 소설가를 덮쳤다. 정적이 흘렀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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