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의 눈이 움직였다. 그림인 줄 알았던 드래곤은 날갯짓을 시작했고, 하늘을 향해 날아올랐다. 순식간에 점이 되어 사라졌다. 인재는 얼굴이 축축해짐을 느꼈다. 축축함이 심해져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눈을 떴다. 개 한 마리, 그러니까 아주 큰 개 한 마리, 아니 개보다 더 큰 개, 늑대 같은 개가 아니고, 엄청나게 큰 늑대가 얼굴을 핥고 있었다.
“으악! 뭐야!”
번개처럼 일어나 주변을 둘러보니 개 아니 큰 늑대 두 마리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경계하는 자세를 취하자, 놈들도 이빨을 드러냈다. 이대로 잔인하게 먹히는 건가 하고 끔찍한 상상을 하고 있는데 늑대들 뒤로 요상한 복장은 한 노인이 나타났다. 얼마나 요상 하냐면 허름한 로브 같은 걸 입고 머리에 마녀들이 쓰는 모자를 썼다. 그러니까 이건 마치 마법사 같은 복장이다. 마법사가 말했다.
“워, 워, 진정해. 먹는 거 아냐.”
마법사는 늑대들의 주인이라도 되는 양 달래더니 인재에게 다가왔다.
“이제 일어났구먼. 꼬마 손님은 벌써 저기서 저녁을 먹고 있는데, 배고프지 않소?”
다정한 말투에 긴장이 풀린 인재는 자기도 모르게 배고프다고 말했다. 홀린 것처럼 그 마법사를 따라 근처 오두막으로 들어갔다. 민정이 수프 같은 걸 먹고 있었다. 인재를 보더니 외쳤다.
“아, 이제 일어났어요? 아빠!”
“아빠? 아빠라니!”
“아빠 왜 그래? 머리 다쳤어?”
마법사는 안 됐다는 듯 혀를 찼고, 회복약이 어디 있더라 하며 찾기 시작했다. 기억상실증 인재는 기가 찼지만, 무슨 사정이 있겠거니 하고는 의자에 앉아 수프를 먹기 시작했다. 녹색의 수프가 보기보다 엄청 맛있었다. 접시의 바닥까지 핥으며 인재가 말했다.
“저기, 어르신, 이게 무슨 수픈가요?”
“아, 맛이 어떻소?”
“진짜 맛있네요. 이거.”
“개구리 수프요. 1등급 청개구리 수프.”
“네? 개구리?”
갑자기 토가 나올 것 같은 표정이 된 인재는 화장실을 찾았지만, 개구기 수프를 대접하는 집에 화장실 같은 게 있을 리 없었다. 그 모습을 본 마법사가 회복 마법서를 찾아 서재로 간 사이 인재가 민정에게 말했다.
“어떻게 된 거야? 그리고, 아빠라니?”
“허허, 그렇게 되었소. 저 마법사님이 아빠냐고 묻길래 귀찮아서 그냥 그렇다고 하였소. 허허.”
“너, 말투 똑바로 안 할래?”
“네, 네. 아저씨는 항상 적응이 느리네요.”
“내가 느린 거니? 네가 빠른 거니?”
“뭐, 둘 다?”
돌아온 마법사는 인재에게 회복 마법을 걸어주었다. 인재는 꾀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 다정한 부녀는 어떤 딱한 사정으로 흩어진 가족들을 찾고 있다는 애절한 이야기를 마법사에게 했다. 도움을 받기로 했다. 다음 날, 마법사는 택시 부르듯 거대한 독수리들을 호출했다. 셋은 독수리를 타고 주변 탐색을 시작했다. 오전 내내 날아다녔지만, 성과가 없어 엘프의 숲에 내려가 점심을 먹기로 했다. 이제는 적응된 음식 중에서도 가장 별미인 곰팡이 수프를 먹으며 배를 채우고 있는데, 어디선가 살려달라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난 방향으로 급히 달려가 보니 희경과 루키가 판타지 소설에 자주 나오는 오크와 트롤 수십 마리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인재는 체념한 듯 말했다.
“허허, 이게 진짤까? 꿈이라도 해도, 이거 진짜 장난 아닌데?”
인재가 혼자 미친 사람처럼 웃고 있는 사이 마법사가 희경과 루키 앞에 나섰다. 그러나 괴물들의 숫자가 너무 많았다. 마법사는 파이어볼, 썬더볼트, 블리자드 스톰 뭐 이런 말도 안 되는 마법들을 써댔지만 역시 숫자에는 장사 없다. 괴물들이 계속 밀려들자 마법사가 외쳤다.
“뛰어!”
그렇게 인재와 민정, 희경과 루키는 마법사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달리고 또 달리는데 어디선가 화살들이 날아와 괴물들을 향해 마구 쏟아졌다. 깜짝 놀라 멈추니 나무 위에 엘프들이 나타나 인사했다. 마법사는 엘프들과 알 수 없는 언어로 뭐라고 이야기를 나누더니 씨익 웃었다. 잠시 후 뒤따라오던 괴물들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 순간 엘프들이 올라가 있던 나무들이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이는 게 아닌가? 수십 그루의 나무가 뿌리를 드러내고 괴물들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