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불안할 때 잠에 빠지면 생기는 일

가끔은 예감이 틀렸으면 좋겠다

by 올대리

밤을 꼴딱 새웠다. 한국에서도 안 가본 클럽이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재밌었다. 음악소리가 온 공간을 가득 메웠다. 귀가 윙윙 거릴 정도였다. 클럽은 실내와 야외로 나뉘어있었다. 한적한 야외 공간에서는 삼삼오오 모여 대화를 나눴다. 그 밖의 여러 스테이지에서는 술 한 잔을 손에 들고 돌아다니며 춤을 췄다. 춤을 춘다는 행위 자체가 중요했다. 잘 추고 못 추고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몸을 살짝 흔드는 사람도 있었고, 저들끼리 흥에 겨워 나무를 잡고 무아지경으로 춤을 추기도 했다. 즉시 쉬운 춤을 만들어 주변 사람들에게 전파하는 사람도 있었다. 잠깐이었지만 그들을 따라 했다. 처음엔 민망했는데 금방 분위기에 젖어들었다. BTS의 노래가 나올 땐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더라. 노래를 열심히 따라 부르기까지 했다. 지금 생각하니 창피해 미칠 지경이다. 노래도 못 부르는 주제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신나게 부르다니. 나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뭐해? 나가야지."

짐을 싸던 시리가 말했다. 오늘은 마드리드로 돌아가는 날이다. 1분도 못 잤지만 곧 열차시간이라 나가야 했다.

"어. 가자. 나도 짐 다 챙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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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열차에 타자마자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밤새 몸을 그렇게 흔들어댔으니 피곤할 만도 하지. 토마토 축제에서 놀았던 거랑은 비교가 안 된다. 나는 짐칸에 캐리어를 묶어두는 것도 잊고 마드리드에 도착할 때까지 눈을 뜨지 못했다.

"은! 일어나! 도착한 거 같아. 내릴 준비 해야 돼."

시리가 나를 흔들어 깨웠다.

"어? 응..."

비몽사몽인 나는 허겁지겁 크로스백을 메고 캐리어를 찾기 위해 짐칸으로 이동했다. 그러나 캐리어가 보이지 않았다. 눈에 확 띄는 큰 사이즈인데도 도통 찾을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출입문이 열렸다. 지금 내리지 않으면 다른 도시까지 가야 할지도 모른다. 마음이 급해졌다.

"무슨 일이야?"

"시리. 나 캐리어가 안 보여..."

"뭐?"

시리와 함께 마지막으로 짐칸을 샅샅이 뒤졌지만 결국 빈손으로 열차에서 내렸다.

"인포데스크 가서 물어보자. 탑승권 보여주면 나중에라도 찾아서 택배로 보내줄 거야. 너무 걱정 마."

시리가 나를 다독였다. 그때 내 캐리어를 들고 뛰어가는 한 무리를 발견했다.

"시리. 너 인포 먼저 가 있어. 나 쟤네들 좀 쫓아갈게."

나는 전속력을 다해 그들을 쫓았다. 그들은 후미진 골목으로 들어가더니 내 캐리어를 펼쳤다. 옷가지들을 아무렇게나 던지고 카메라나 액세서리 같은 귀중품만 따로 모았다. 빠른 속도로 보아하니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다. 살다 살다 소매치기범을 눈앞에서 만날 줄이야. 나는 무슨 용기인지 소리를 지르며 그들을 향해 뛰어갔다.

"내 캐리어야! 내놔."

분명 앳된 남자애들 두 명이 캐리어를 뒤지고 있었는데 골목 사이에서 4명이 더 튀어나왔다. 험상궂게 생겼다. 우락부락해서 더 무서워 보였다.

"네꺼라는 증거 있어?"

"네임택 안 보여? 그게 내 이름이야. 내 연락처도 있고."

"그 이름이랑 연락처가 네 거라는 증거 있냐고."

말이 안 통한다. 막무가내로 다가오는 그들이 무서웠다. 더는 실랑이를 하고 싶지 않았다. 완전 주눅 들었다.

"중국인이 여긴 왜 와가지고."

그들이 비아냥거리며 웃었다. 스페인에 와서 저 소리를 들을 때마다 스페인어를 괜히 배웠다고 생각했다. 배우지 않았더라면 들리지도 않았을 텐데. 그럼 안 들었어도 될 말인데. 배우는 바람에 상처가 켜켜이 쌓이는 걸 두 눈 뜨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오면 안 되냐? 내 돈 내고 내가 온다는데 너희들이 무슨 상관이지?"

시리가 언제 왔는지 유창한 스페인어로 쏘아댔다.

"쟨 또 뭐야."

"은. 경찰에 신고했으니까 곧 올 거야. 캐리어 갖고 가자."

"경찰? 경찰이 올 거 같냐? 중국인이라 바본가?"

그들은 끊임없이 비아냥댔지만 시리는 소매치기의 말을 무시하고 캐리어가 있는 곳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소매치기가 시리를 막아섰다. 시리는 돌아서 다시 걸어갔다. 소매치기가 뒤를 돌아 시리를 잡았다. 시리는 손을 치우고 캐리어를 잡았다. 캐리어를 잡고 있던 다른 소매치기가 그대로 캐리어를 세게 닫아버렸다. 손이 낀 시리가 소리를 질렀다. 그 상태로 소매치기가 시리를 밀쳐 시리가 바닥에 내팽겨 쳐졌다.

"그만해!!!!!"

나는 소리를 지르고 시리에게 뛰어갔다. 캐리어를 그냥 가져가라고 했다. 시리가 많이 다쳤다. 일단 시리를 데리고 나가 치료하는 게 급선무였다. 절뚝이는 시리를 부축하고 그곳을 겨우 빠져나왔다. 무릎에서 피가 많이 난다. 지혈을 먼저 시켜야겠단 생각에 원피스를 찢어 시리의 무릎에 묶었다. 택시를 타고 시리의 집으로 갔다. 입술을 꽉 깨물고 시리의 손을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