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배달의 민족 조직문화
사람마다 선호하는 일터가 다르다. 물론 세대별로 취향이 나뉜다고는 하지만 M세대도 아니고 Z세대도 아닌 90년대 초반생 직장인의 입장에서 봤을 땐, 선호하는 일터는 개개인마다 너무 다르다. 회사는 하루 중 가장 오랜 시간을 몸 담고 있는 공간이며, 직장 동료는 하루 중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는 사람이다. 일터와 일터를 둘러싼 구성원들과의 성향이 맞아야 탈이 나지 않고 오래 다닐 수 있는 확률이 높다. 마라탕을 먹으면 속이 안 좋은데 유행이라고 매일 먹을 수는 없다. 탕후루를 한 입 먹기도 괴로운데 먹어야 하는 상황이 매일 있으면 큰일 난다. 저마다 입맛이 다르듯 회사와 맞는 성향도 다르다. 직장을 다니면서 나에게 맞는 일터를 찾아야 하는 이유다.
회사마다 조직문화가 다르다. 조직문화의 중요성을 잘 아는 회사는 채용 공고에서부터 자사 콘텐츠, 강연 등에서 그 색깔을 확실하게 드러낸다. 최근 이런 회사들이 많아지면서 입사 전부터 그 회사가 선호하는 인재부터 일하는 방식을 입사 전에도 알 수 있게 됐다. 지원자는 자신의 업무 스타일과 성격을 고려하여 회사에 지원할 수 있게 됐고, 이런 흐름이 채용 방식을 일방향에서 쌍방향으로 바꾸는 데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니 더욱이 나에게 맞는 일터를 알고 디벨롭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이왕이면 건강한 회사 생활을 하는 직장인이 되면 좋으니까!
신입 사원 시절의 올대리는 협업이 많은 업무보다는 홀로 처리하는 일을 선호했다. 팀워크보다는 개개인의 역량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고, 그 결과 개인의 업무를 스스로 책임지는 분위기가 형성된 회사를 다녔다. 주로 하나의 서비스를 책임지고 스케줄링부터 처리까지 하는 일을 담당했다. 모두가 그런 일을 하고 있는 회사였기 때문에 오히려 대직이 쉬웠다. 같은 업무를 나눠서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기여도를 표기할 필요도 없었고, 무임승차를 하는 사람도 없었다. 즉, 각자가 각자 맡은 바 일만 하면 되는 각자도생의 구조였다.
각자도생 업무의 장점은 사람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적다는 것이고, 단점은 커뮤니케이션 스킬을 기를 수 없다는 것이다. 이 회사를 다니면서 상사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있다. "우리 회사는 사람들이 다 좋아. 사람 때문에 나가는 사람이 거의 없다니까?" 사람과 사람이 의견을 주고받고, 설득하고, 토론하고, 회의를 하는 단계가 필요하지 않은 곳이었다. 화합도 갈등도 뭔가가 부딪쳐야 가능한 일이다.
이제 막 입사한 신입사원이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이 사실을 몰랐다. 우물 안 병아리였다. 조금 큰 기업이라면 분업화가 확실해서 다 이렇게 일을 하는 줄 알았다. 인간관계로 인한 스트레스가 없었기 때문에 각자도생의 업무 스타일이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주변에서도 '개썅마이웨이'라고들 하니 의심할 여지도 없었다. 어떤 프로젝트를 리드하고 매니징 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꽤 만족하면서 회사를 다녔다. 상사와의 갈등, 동료와의 불화, 후임의 답답함 등의 에피소드와 거리가 멀었다. 성과 스트레스도 없었고, 결혼과 출산으로 인한 경력 단절에 대한 두려움도 없었다. 거기에 복지도 좋았다. 회사에 대한 스트레스가 제로에 가까웠기 때문에 개인주의 성향의 조직 문화가 아주 잘 맞는다고 확신했다.
콘텐츠 운영에서 기획으로 직군을 바꾸면서 이직을 했다. 이직을 결심한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고통이 거의 제로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변화가 없고 안정적인 삶을 살기엔 최적의 회사였지만 안타깝게도 나에겐 맞지 않았다. 동료들과 함께 프로젝트를 디벨롭하며 완성하는 직장에 대한 갈망이 커졌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변화와 고통을 겪으며 성장을 하고 싶었다. 콘텐츠에는 제휴 - 기획 - 제작 - 운영 4단계의 업무가 있는데, 맨 마지막에서 누군가가 만든 콘텐츠를 관리하는 역할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제휴와 기획, 제작의 경험을 쌓기 위해 과감하게 이직을 했다.
3년 간 조용한 회사를 다니다 갑작스레 시끄러운 회사로 옮겨갔으니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했다. 매일매일이 협업이었고, 기획자라는 직군의 특성상 메신저만 하다가 하루가 끝난 적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협업 위주의 회사를 다니는 이유는 지금 내가 생각하는 일터의 취향은 협업 문화가 활성화된 곳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프로젝트를 위해 고객의 이야기를 듣고, 팀원들과 해결책을 찾고, 유관부서 동료들을 설득한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건 커뮤니케이션 스킬이다.
최근에는 업무 영역이 콘텐츠 기획에서 프로젝트 매니저로 확장되고 있는데, 콘텐츠의 전반적인 과정을 물고 뜯고 씹고 맛보는 중이다. 파트너사와 콜라보 콘텐츠를 만들 때 고려해야 할 사항, 자사의 톤앤매너를 어떻게 콘텐츠에 녹여낼지에 대한 고민, 의도한 바를 디자이너들과 어떻게 풀어낼 것인지, 콘텐츠가 송출되었을 때 오는 고객의 반응 등에 대해 매일 생각한다. 다른 스킬들도 매우 중요하지만 의사소통 능력이 길러지지 않으면 일을 진행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그러다 보니 마인드가 바뀌었다. 잡담을 지향하는 쪽으로. 회사에서 관계를 넓히지도 깊게 파지도 않았다. 굳이 사생활까지 스몰토크 소재로 사용하면서 사람들과 수다를 떨어야 하나라는 생각도 했었다. 이성으로만 일을 하는 거지 감성까지 끼워 넣어 프로페셔널하지 못하게 일을 해야 하나 싶었다. 하지만 협업이 많은 회사에서 필요한 건 잡담이더라. 잡담으로 업무에 기름칠을 하면 그때부턴 안 될 것만 같았던 일이 스무스하게 진행이 된다. 이런 경험을 태어나서 처음 해봤다. 왜 사람들이 점심시간에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하는지 알았다. 왜 회식을 좋아하는 분들이 많은지도 알았다. 사내 행사를 통해 만남의 자리를 만드는 지도 이해가 갔다. 물론 여전히 술을 진탕 마시는 저녁 회식은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잡담문화를 유도하는 회사는 대부분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한 곳이다. 전통적인 대기업이나 제조업보다는 IT 계열이나 스타트업에서 주로 볼 수 있는 조직 문화다. 기획자, 개발자, 디자이너 등이 모여 하나의 프로젝트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대화를 많이 나눠야 한다. 서로 다른 언어로 이야기하는 직군이 만나 합을 맞추려면 대화가 필수적이다.
건강한 소통 문화를 만들기 위해 피플팀까지 운영하는 대표적인 회사가 있다. 배달의 민족이다. 가인지 캠퍼스의 <경영전략 컨퍼런스: 조직문화를 설계하라>라는 강의에서 배민의 조직문화를 엿볼 수 있었다. 배민은 일하기 좋은 일터를 만들기 위해 조직문화에 굉장히 공을 들이는 기업 중 하나다. 구성원이 100명이 넘어갈 때쯤, 김봉진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피플팀을 만드는 게 어떨까요? 사람과 사람 사이에 꽃을 피우는 단계가 필요한 시기인 것 같아요." 행복한 구성원이 좋은 서비스를 만든다는 큰 줄기가 지금의 배민을 있게 한 게 아닐까.
좋은 구성원들이 모인 좋은 회사를 위해 배민 피플실에서 실천하고 있는 것은 다음과 같다.
1. 정서적 에너지: 함께 일 잘하기 위해, 사소하지만 중요한 일
잡담은 신뢰의 원료이고 유대감을 높이는 원동력이기에 구성원들 간의 잡담을 늘리는 조직 문화를 만드는 데 애를 쓴다고 한다. 사람들끼리 모여 스몰토크를 나눌 수 있는 공간으로 인테리어를 하고, 이른바 '배려의 비트'라고 불리는 사무실 BGM을 튼다. 재택근무로 인해 대화를 나누기 어려운 시기에는 온라인으로라도 잡담을 하는 시간은 '와우타임'을 운영한다.
2. 소통: 중요한 건 알지만 잘 안 되는 것
쉽고, 명확하고, 위트있게. 배민 오피스 곳곳에 붙어있는 슬로건이다. 구성원이 2000명이 넘어가도 편안한 소통을 위해서라면 단체 메신저방을 활용한다. 슬랙으로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바꾸기도 하고, 가벼운 소통을 위해 'ㅋㅋ타임'부터 매월 회사의 소식을 전사에 공유하는 '우아한 데이'도 운영한다. 사람이 50명만 넘어가도 전사 공유가 안 되기 시작하고 입사자와 퇴사자가 번갈아가며 등장하기 때문에 구성원의 얼굴과 이름을 모르는 경우도 허다하다. 작은 스타트업이 2000명 규모의 기업으로 성장하기까지 소통을 위한 조직 문화에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을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3. 다정함과 따뜻함의 위력: 생각보다 놓치고 있는 것들
스타트업은 네 일 내 일이 없다. 쌓인 게 일이고 널린 게 일이고 태산인 게 일이다. 더욱이 초기 스타트업이라면 야근하는 사람들이 정말 정말 정말 많다. 아직 안정화된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오류도 많고 해결해야 할 것도 많고 도입해야 할 것도 많다. 그러다 보니 야근 문화가 당연해지기 시작하는데, 배민 역시 초창기에는 이런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그래서 피플실에서 4시에 퇴근하는 복지 제도를 도입했다고 한다. 구성원들이 소중한 가족과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오래 다니는 구성원이 많은 조직의 특징은 가족, 친구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존중한다.
배달의 민족 조직문화 강연을 열어 준 가인지 캠퍼스의 경영전략 컨퍼런스를 보고 다시금 자신의 일터 취향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특히 새롭고 낯선 것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사람, 협업으로 인해 프로젝트가 완성되는 과정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이라면 커뮤니케이션이 활발한 회사를 선호할 것이다. 누군가는 올대리처럼 돌고 돌아 일터 취향을 발견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운이 좋게 첫 회사에서 만족감을 느낄 수도 있다. 순서가 어떻게 되는 그건 중요하지 않다. 지금의 '나'에게 맞는 취향을 하나씩 알고 바꿔보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는다면 분명 건강한 회사원이 되어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