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숭아

먹다보니 생각하고 쓰다보니 홍보한다

by 올대리

시골에 갈 적마다 복숭아를 무심하게 썰어주었던 할머니, 복숭아만 보면 눈물을 훔치는 어머니, 내 태몽이 복숭아라며 기뻐했던 아버지, 와 같은 복숭아와 얽힌 애틋한 추억이 저는 없습니다. 제게 복숭아는 그저 복숭아일 뿐이지요. 백도든 황도든 통조림에만 담겨있지 않으면 복숭아라고 인정하는 편입니다. 통조림의 복숭아도 황도라고 일컬어지곤 하는데, 복숭아나무 도桃를 사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복숭아라고 인정하지 않느냐고요? 음, 누런 통조림 속 황도를 보면 복숭아의 온전한 모습이 떠오르지 않거든요. 잔털이 송송 돋아있는, 분홍빛과 아이보리빛이 적절히 섞여있는, 딱딱하면서도 군데군데 말랑한 듯한 느낌이 그들에겐 없습니다.

최근 들어 제가 인정하는 복숭아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습니다. 한여름 하면 복숭아니까요. 푹푹 찌는 무더위에 시장은 여기저기에서 복숭아를 내놓았습니다. 워낙 과일가게가 많은지라 시장의 풍경 자체가 달라졌다고도 할 수 있을 정도였지요. 그 중 제 시선을 사로잡는 가게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복숭아 취향을 잘 반영한 판매 전략을 자랑하고 있더군요. 제법 비슷해 보이는 복숭아들을 섹션으로 나눠놓고는 서투르면서도 정성이 담긴 글씨체―시장에서 흔히 통용되는 시장 전용의 느낌―로 쓰인 팻말을 붙여놓았습니다. ‘딱딱한 놈’, ‘그저 그런 놈’, ‘말랑한 놈’ 영화 <놈놈놈>이 생각나 피식 웃고 말았습니다.



대부분의 자식들이 으레 그렇듯 저 또한 집안에 과일을 사다놓지 않습니다. 코앞이 시장이라 널린 게 과일가게인데도 말이지요. 과일을 구매하는 행위는 왠지 모르게 부모만 해야 할 것 같은 그런 느낌적인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뭐든 당연한 건 없는데 말이지요―항상 저를 위해 복숭아를 포함한 여러 과일을 냉장고에 채워 넣어주는 어머니에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하여튼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자면, 예 그렇습니다, 저는 <놈놈놈>과일 가게에서 복숭아를 사지 않았습니다. 비루한 핑계를 하나 대자면, 과일을 사는 것은 제 몫도 아닐뿐더러 저의 쥐꼬리만 한 용돈―표현은 이렇게 했지만 용돈을 받는 것에 대해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쥐꼬리라도 좋아요. 정말입니다―으로 복숭아를 사기엔 벅찬 감이 있지요.


저는 어머니와 친구 같은 사이라고 자부하곤 합니다. 엄밀히 따지자면 부모와 자식이지만 은근슬쩍 친구라는 영역을 끼워 넣지요. 서로에게 장난을 좀 많이 치는 편입니다. 저는 이런 의미에서 어머니와 텔레파시가 통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어머니는 “네가 내 뱃속에서 나왔는데 네 심보를 모를까봐?”라고 말하긴 합니다. 아주 동의하지 않는 바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쉽게 동의하지도 않습니다. 권위만 존재할 뿐 대화와 소통의 기회를 주지 않는 부모만큼 자식을 모르는 사람도 없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어머니는 저처럼 수다스럽습니다. 그래서 곧잘 텔레파시가 통하곤 하는데, 제가 <놈놈놈>과일 가게를 지나온 그날, 냉장고에는 복숭아가 수두룩하게 쌓여있었습니다.

과연 제가 생각한 복숭아였습니다. 키위와는 확실히 잔털이 다릅니다. 키위도 제가 좋아하는 과일입니다만 자꾸만 만져보고 싶단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그에 비해 복숭아는 촉감 좋은 잔털을 과시하지요. 부드러운 건 아니지만 뭐랄까, 까끌까끌하면서도 뭉툭하다고 해야 할까요. 예, 저는 변태임에 틀림없습니다. 복숭아를 쓰다듬으며 이곳저곳을 관찰하기 시작했습니다. 복숭아에겐 입구만 있을 뿐 출구는 없습니다. 사과나 배처럼 움푹 패인 부분이 두 개가 없다는 말입니다. 과일이라면 앞뒤로 먹을 수 없는 부분인 거슬리는 곳이 있지 않습니까? 특이하게 복숭아에겐 그것이 하나뿐이라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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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으로 복숭아와 추억을 만들어보리라 다짐했습니다. 아름다운 가족 이야기는커녕 복숭아를 먹다 사레 걸린 일 따위도 제겐 없었으니까요. 일주일 간 매일 아침을 복숭아 한 알과 함께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한 쪽만 움푹 패인 복숭아는 깍둑깍둑 썰어먹기에 안성맞춤이었습니다. 평소 과일 껍질을 벗기지 않는 저이기에 물로 대강 씻고 먹기 좋게만 썰었지요. 음, 확실히 보기 좋게 썬 건 아닙니다. 바쁜 아침에 플레이팅에까지 신경을 쓴다면 정작 저의 아침은 오히려 고달파질 확률이 높지 않겠습니까? 목적은 단 하나입니다. 복숭아와 친해지기. 복숭아와 시끄러운 기억 만들어보기.

그렇게 복숭아를 먹은 지 오늘이 7일 째 되는 날입니다. 다들 예상하셨겠지만 그냥 맛있게 맛만 보고 끝났습니다. 복숭아가 괜찮은 녀석이라 그랬던 건지, 아님 제 식습관과 소화능력이 탁월한 탓이어서 그랬는지는 의문이지만, 한 번도 사레들린 적이 없습니다. 체한 적도 없거니와 물려서 도저히 못 먹겠다고 생각한 적도 없습니다. 일주일 내내 건강한 아침 식사를 했고, 복숭아를 써는 능력이 향상되었으며, 복숭아의 잔털을 만지작거리는 빈도수가 좀 줄었습니다. 이 외엔 복숭아와 관련된 특별하고도 신선한 추억이랄 건 딱히 없었습니다. 그런데, 꼭 추억이란 놈이 아름다운 색깔로 블러처리라도 한 듯 색다를 필요는 없지요.

처음엔 딱딱했던 복숭아들이 말랑해져갔습니다. 복숭아에 칼이 들어갈 때 분명 ‘아삭’하는 소리를 저는 들었습니다. 먹기 좋게만 썰린 복숭아 한 조각을 입 안에 넣었을 때 역시 ‘아삭’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저의 무자비한 씹기 신공을 그대로 받아들인 복숭아는 입 안에서 산산조각이 났고, 단 맛 보다는 복숭아 맛이 더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복숭아는 ‘아삭’에서 ‘물컹’의 단계로 진입했는지 단 맛을 강렬하게 내뿜고 있었습니다. 과즙이 터지는 바람에 제가 아찔해질 정도였지요. 고작 일주일인데도 이렇게나 다른 모습을 보여주다니, 꽤 신비로운 매력의 소유자더군요. 이쯤 되면 복숭아와 재미난 기억으로 엮였다고 할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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