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와 쏘울메이트가 되고 싶다

먹다 보니 생각하고 쓰다 보니 홍보한다

by 올대리

맥주는 내 차선책이었다. 플랜 비 따위는 두지 않는 내게 우연 같이 찾아온 녀석. 이 글을 나의 지인이 본다면 매우 놀랄 일인데, 애초에 나는 강경한 소주 파였다. 맥주는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하면서 소주는 기본 2-3병을 마시는. 소맥은 간간히 마셨지만 소주와 맥주의 비율이 1:1이거나 소주의 비율이 더 높아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대학에 입학하고 괜히 멋있어 보이려고 마신 것 같다. 되고 싶은 대로 살았던 때였으니.


결국 병이 났다. 이기지도 못할 술은 마시는 게 아닌데. 멋스러움에 잔뜩 취해 나를 돌보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모습에 바통을 들고 이어달리기를 질주하는 말처럼 뛰어갔다. 내가 어떻게 되든 원치 않는 모임에 나가 원치 않는 술을 마셔댔다. 언젠가 필름이 한 번 끊기더니 그 뒤론 술만 마셨다 하면 줄기차게 필름이 나갔다. 구토도 시작했고, 빨간 점 같은 알레르기도 다리에서부터 점차 온몸으로 퍼졌다. 가장 큰 문제는 성인 여드름. 원인이 술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덩달아 찾아온 만성 피로감과 잦은 우울감 때문에 금주의 길을 택했다.


그렇게 2년이 지나고 막걸리를 처음 입에 댔는데, 아직도 그 느낌을 잊을 수 없다. 갑자기 훅 들어온 알코올 때문인지 한 모금에 정신이 알딸딸해졌다. 맞은편에 앉은 당시 애인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일그러져 보였고 실내는 순식간에 기울어졌다. 핑- 하더니 말 그대로 돌아버렸더랬지. 하지만 기분은 좋았다. 술은 역시 술이고 알코올이 몸에 좀 들어가 줘야 행복지수가 올라갈 때도 있으니. 어디선가 맥주는 도수가 낮다고, 맥주는 술이 아니라는 말을 들었다―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내게 맥주는 쇠 맛이 나는 이상한 탄산음료에 불과했다. 살짝 비릿하기도 했고. 막걸리나 와인은 가볍게 마시기엔 무리가 있는 듯해 맥주에 도전하기로 했다. 도대체 어디가 비렸다는 거야. 이렇게나 시원하고 맛있는 걸.


하지만 너무 오래 금주를 한 탓인지 맥주 한 잔에도 비틀거렸다. 스페인의 한 야외 좌석에서 맥주 한 잔을 마시고 취했던 기억이 난다. 정신을 어떻게 부여잡고 숙소로 돌아갔는지…. 아찔하군. 맥주를 마시곤 습관처럼 몸 이곳저곳을 둘러봤는데 알레르기는 보이지 않았다. 씩 웃고는 맥주를 두 잔, 다시 확인하고 세 잔, 다시 웃고는 넉 잔. 2년 간 금주해 온 술을 4년 간 점진적으로, 서서히 늘려갔다. 그러나 한계는 있는 법이지. 맥주 3000cc가 나의 주량으로 결정이 났는데, 정말이지 3000cc까지만 마실 수 있다. 그 이상을 넘어가면 바람인형처럼 몸이 사정없이 흔들린다.


맥주 마시고 취할 수 있냐, 배불러서 어떻게 마시냐고 내게 묻던 사람들에게 말한다. 맥주 마시고 된통 취할 수 있고, 마시다 보면 배가 마비가 돼서 쭉쭉 들어간다. 덩달아 행복지수가 높아지고 말도 많아지고 세상을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게 된다. 갑자기 슬펐다가 갑자기 신났다가 다이내믹한 감정을 오르내릴 수 있다. 물론 이런 상태가 오래 그리고 자주 이어진다면 좀 큰일이다. 엄청난 체력소모와 경제적 소모로 탈탈 털리게 되니. 되도록 일주일에 한 번만 마시려고 노력하는데, 일종의 대(大)확행이기 때문. 잃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내 몸이 즐거울 정도로만,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만 마시려고 한다. 겨우 얻은 선물 같은 차선책인데 이제라도 하고 싶은 걸 하기 위해 노력하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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