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단 술

술이 달게 느껴지는 타이밍

by 올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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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가 지옥이다. 학기 초라 한창 바쁜데 밤에 잠은 안 오고 죽을 맛이다. 하루 이틀이야 그간 신보사에서 길러온 체력으로 버텨냈다지만 보름이 지나니 도저히 안 되겠다. 얼굴이 엉망진창인지 다들 한 마디씩 한다. 나도 아니까 그만해줬으면 좋겠는데. 사람 만나기가 무서워질 정도다. 얼굴이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상태가 영 아니다. 많이 피곤하니? 병원 가봐야 하는 거 아니야? 사실 내 걱정이 돼서 하는 말이 아니라 그냥 저들 욕심 채우려고 하는 말이면서. 그래서 요즘 화장이 진해졌다. 푸석해진 피부와 턱 끝까지 내려온 다크서클을 가리려면 어쩔 수 없었다. 불면증에 시달리느라 새빨개진 두 눈은 어찌할 수 없어 알 없는 안경으로 시선을 분산시켰다. 언제쯤이면 잠을 잘 수 있을까. 잠이 오지 않아 밤마다 용희의 인스타를 염탐 중인데, 그대로다. 너무 그대로라 할 말이 없다. 봤던 걸 또 보고 또 보고 또 봤지만 나와 헤어진 흔적은 그 어디에도 없다. 물론 나와 만났던 흔적도 없었지만. 그래도 보통 헤어지면 팔로우도 끊고 연락처도 삭제해야 응당 맞는 게 아닌가.

"야. 김은~"

정소영이다.

"응."

"너 요즘 무슨 일 있냐?"

"아니.. 일은 무슨..."

또 얼굴에서 티가 나는 모양이다. 사람도 숨을 수 있는 구멍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님 됐고. 밥 먹었어? 안 먹었으면 밥이나 먹으러 가자. 이 언니가 쏜다."

언니는 무슨. 아 사실 정소영이 언니는 맞다. 어쩌다 보니 말을 놓게 됐는데 호칭까지 놓게 될 줄이야. 내가 유일하게 말과 호칭을 놓은 사람이 바로 정소영이다. 밥이라도 먹으면 기분이 좀 나아질까 싶어 얼른 대답했다.

"가자."




또 돈가스 집이다. 저 돈가스 킬러가 가자는 곳이 그렇지 뭐.

"뭐해?"

정소영이 다짜고짜 물었다.

"뭘 해?"

나는 재차 물었다.

"너 지금 그냥 밥 먹는 거야?"

"왜?"

"사진을 안 찍었잖아!!!! 내가 지금 이렇게 두 손 모으고 기다리고 있는 거 안 보이냐?"

"사진 좀 안 찍은 거 갖고 무슨 호들갑을..."

나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너 진짜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야?"

"아 왜! 없다니까! 왜 자꾸 물어? 너도 내 얼굴이 이상하단 소리 할 거면 하지 마. 너무 많이 들어서 지겨우니까!"

"아, 알겠어.. 왜 갑자기 소리는 지르고 그래? 그리고..."

"그리고 뭐!"

"네 얼굴 하나도 안 이상해. 그건 모르겠고. 그냥 네 표정이 낯설어서 그랬어."

"..."

나는 수저를 내려놓고 화장실에 가서 눈물을 삼켰다. 손으로 입을 막고 소리가 새어 나오지 않길 진심으로 바랐다. 변기 물을 일부러 계속 내리며 끅 끅 거렸다. 화장이 무너질까 눈에 손을 대진 않았다. 변기 위에 앉아 천장을 쳐다보고 눈을 꿈뻑꿈뻑했다. 눈물은 이런 내 노력도 모르는지 쉴 새 없이 터져 나왔다. 그동안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다. 카톡도 해보고 DM도 보내고 문자도 했는데. 용희는 묵묵부답이었고 차마 전화까지 할 용기는 나지 않았다. 시간이 약이라던데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고통스럽다. 용희의 얼굴이 더 또렷하고 선명해진다. 용희가 더는 내 옆에 없는 사람이라는 걸 믿을 수 없다. 아니 믿기 싫다. 믿어버리면 너무 무서울 것 같았다. 상상하기도 싫은 공포에 가까운 두려움이랄까. 공포가 눈에 보인다면 어떤 형상일까. 가끔 느껴진다. 짙은 보라색의 자욱한 연기가 내 목을 조이는 듯한.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화장실에서 나올 수 있었다. 정소영은 끝까지 나를 기다렸다. 문을 두드리는 사장님에게 친구가 지금 체한 것 같으니 양해를 부탁드린다고 말하는 걸 들었다. 내가 모습을 보이자 정소영이 물었다.

"우리 집 가서 놀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