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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영균 Jan 30. 2021

당신의 마술, 당신의 캐릭터

신년특집 [독창성] 시리즈 2.

 "형의 마술에는 형의 스타일이 있어요."


     저는 2014년에 대학 마술 동아리에서 처음으로 마술을 시작했습니다. 동아리에서 처음으로 마술 공연을 했을 때, 제 관심은 오로지 저만의 마술, 독창적인 마술이었습니다. 이것 저것 시도를 해보았지만 어느 하나 쓸만한 것이 없었죠. 이것저것 조잡하게 이어붙인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괴물처럼, 제가 '만든' 마술들 역시 남들과 다르고 싶다는 이유로 엉성하게 짜맞춘 마술일 뿐이었습니다.

     그 사실을 깨닫고 저는 방향을 틀었습니다. 어차피 제가 마술을 보여줄 대상은 관객들이었고, 관객들에게 중요한 건 "이 마술이 독창적인가?"가 아니라 "이 마술이 신기한가?"이기 때문이죠. 그때부터 저는 저만의 마술보다 신기한 마술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마술을 열심히 공부했고, 사람들에게 마술을 보여줄 때에도 언제나 다른 누군가의 마술을 배워서 보여주었죠. 


나만의 마술이 갖고 싶었던, 무려 2014년.


     그러던 어느 날, 동아리 후배 한 명이 제게 마술에 대한 고민이 있다며 상담을 신청했습니다. 그의 고민도 예전의 제가 그랬던 것처럼 "나만의 마술이 하고 싶다." 였습니다. 저는 위의 내용을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고민했죠. 결국 중요한 건 '나만의 마술'이 아니라 '신기한 마술'이라는 걸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 후배는 제가 상상도 못했던 말을 꺼냈습니다. "형의 마술에는 형의 스타일이 있어요."

     그의 말을 따르면, 제가 어떤 마술을 보여줄 때, 그 마술에는 저의 개성이 녹아들어있었고, 같은 마술이라도 다른 사람들의 마술과 분명하게 구별되는 어떤 느낌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 때 저는 마술의 독창성을 결정하는 요소는 비단 기술이나 트릭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마술을 보여주는 방식, 더 나아가 마술사의 캐릭터를 얼마나 잘 드러내느냐가 그 마술과 마술사의 독창성을 결정할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여러분은 무엇을, 왜 좋아하시나요?


    그렇다면 자신의 캐릭터는 어떻게 만들어가는 걸까요? 아니, 애초에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캐릭터'라는게 있을까요? 캐릭터를 갖고 있다는 것은, 내가 다른 사람들과 구별될 수 있는 부분에서 시작합니다. 완전히 동일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잠재적으로 그들만의 '캐릭터'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누구인지 깨닫기란 쉽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을 따라하는 것보다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 몇 배나 더 어렵지요.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캐릭터인지 알아가기 위한 좋은 출발점은 자신의 취향을 아는 것입니다. 평소 자주 듣는 노래가 있나요? 좋아하는 연예인이 있나요? 밥반찬으로는 어떤 음식을 가장 좋아하세요? 빨간색과 파란색 카드 중 어떤 색깔의 카드를 더 좋아하세요? 컵라면은 어떤 브랜드를 주로 드시나요? 만약 로또 1등에 당첨된다면, 그 돈을 어디에 사용하고 싶으세요?

    많은 사람들이 위의 질문에 대한 각자만의 답을 가지고 있습니다. 각각의 대답들은 얼핏 평범해보일 수도 있습니다. 밥반찬으로 김치찌개를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저 말고도 많이 있겠지요. 에픽하이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도 저 말고 많이 있습니다. 빨간색을 좋아하는 사람? 차고 넘치죠. 하지만 이러한 질문들이 많아질 수록, 그 교집합에 남아있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어 결국은 저 한 명만 남을 겁니다.


    내가 어떤 걸 좋아했는지 알았다면,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봅시다. "왜 그걸 좋아하시나요?" 김치찌개를 왜 좋아하나요? 어렸을 때부터 엄마와 할머니의 김치찌개를 먹고 자랐거든요. 에픽하이를 좋아하는 이유? 사춘기를 극복하는데 에픽하이 노래가 큰 도움을 줬습니다. 빨간색과 파란색 카드 중에 왜 하필 빨간색을 좋아하나요? 파란색은 살짝 어둡고 눈에 잘 띄지 않는데, 빨간색은 그에 비해 밝고 생기가 느껴지는 색깔이라서 좋아합니다.

     이유는 하나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사실, 무언가를 좋아할 때는 보통 수많은 이유들이 복잡하게 얽혀있죠. 중요한 건 그걸 생각하는 과정 그 자체에 있습니다. "내가 왜 ~를 좋아할까?" 라는 질문에는 내가 내 스스로를 관찰하는 과정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죠. 배우는 대본을 받고 나면 자신이 맡은 배역이 어떤 캐릭터인지 분석하는 과정을 거친다고 합니다. 대본을 받은 배우처럼, 우리도 우리 스스로를 분석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내가 나 자신을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합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렇지 않죠. 오히려 오랜 시간 나을 지켜봐 온 사람들, 친구나 애인이나 부모님이 나를 더 잘 알고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정 어렵다면 그들에게 용기내서 물어보는 것도 좋습니다. "네가 생각했을 때, 나는 어떤 사람이야?" 원하는 답변이 나올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여러분의 캐릭터를 확립하는 데에 큰 도움을 줄 겁니다.


자기 자신을 연기하는 사람들.


    고작 마술 하나 하는데, 왜 이렇게까지 거창한 고민을 해야할까 의문을 가질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 진정성이 부족한 마술사는 관객들을 신기하게 만들 수는 있어도 그들에게 매력을 어필할 수는 없습니다. 진정성을 채우는 법은 다양합니다. 배우들은 오랜 훈련 끝에 다른 사람의 모습을 연기해냅니다. 이는 일종의 진정성을 만들어내는 기술이지요. 하지만 마술사는 배우와 달리, 다양한 배역을 연기해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기 자신을 연기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요.


    작년 10월 아르카나에서 진행한 김준표 마술사의 세미나 도중, 김준표 마술사의 캐릭터에 대한 질문이 나왔습니다. 그 분은 짧고 간결하게 "제 캐릭터는 김준표입니다." 라고 답했습니다. 그 옆에서 세미나를 보조해주시던 유튜버 김슬기님 역시 "내가 가진 어떤 자아를 과장해서 보여주는 것."이라고 덧붙이셨지요. 여기에서 캐릭터에 대한 중요한 고찰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캐릭터는 실제의 '나'에 기반하고 있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고 약간의 '과장'이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과장이 필요하다는 말은, 오버액션을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여기서 말하는 '과장'이란, 자연적인 나의 모습 중에서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은 모습을 다듬는 것에 가깝지요.


    그렇다면 어떤 부분을 과장하고 다듬어야 할까요? 여기에서 다시 한 번, 다윈 오티즈의 훌륭한 책, [스트롱 매직]*의 도움을 받아봅시다. 저자는 '배역'과 '원료'라는 개념을 통해 캐릭터를 만드는 과정을 설명하죠. 우선 배역은 '당신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입니다. 좀 더 자세하게는, '마술 현상을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서 마술사가 어떤 역할을 맡아야하는가?' 라고 할 수 있죠. 

마술을 할 때는 당신이 공연하는 현상의 종류가 당신의 배역을 나타낸다. (...) 그러므로 페르소나를 찾기 위한 여정의 훌륭한 출발점은 당신이 어떤 종류의 마술을 가장 자주 보여주는지, 또한 어떤 사람이 이런 마술을 공연할 것 같은지 고민해보는 것이겠다. (p.202)


    반면 원료는 '당신은 어떤 특징을 갖고 있는가?'에 대한 대답입니다. 외모나 체형, 옷차림 뿐만 아니라 위에서 이야기한 취향이나 욕망과 같은 내적인 작동 방식 역시 이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나의 어떤 원료를 어떻게 가공해야 이 마술에서 필요한 배역에 알맞는 캐릭터를 만들 수 있을까요? 저자는 다음과 같이 정리합니다.

마술사로서의 당신은 자신을 위한 대본 작가가 돼야 한다. 당신이 자주 선보이는 현상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당신은 어떤 사람인지 관찰하라. 이 요소들을 그래프 속 두 개의 선이라고 생각해봐라. 이 두 선의 교차점에 당신만의 페르소나**가 있다. (p.202)





* Strong Magic. 다윈 오티즈, 김슬기 옮김, 루카스 퍼블리케이션

** Persona. '탈'을 뜻하는 라틴어 단어로부터 유래되었으며, 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외적인 모습이나 성격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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