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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영균 Jul 14. 2024

마술사 권준혁의 [백색소음] 리뷰

마술공연리뷰

마술사 권준혁


     권준혁 마술사는 예전부터 권에드라는 예명으로 예전부터 잘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권에드의 마술을 실제로 본 이들은 손에 꼽았다. SNS 피드를 마술 영상으로 가득 채운 요즘 마술사들과 달리, 그는 아주 제한적인 자리에서만 자신의 마술을 공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한 신비주의적인 태도는 많은 마술사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되어 퍼져나갔고, 나를 포함한 많은 마술사들이 권에드의 마술을 궁금해했다. 하지만 그는 대한민국보다 해외에서 더 많은 활동을 펼쳤고, 국내에서 그의 마술 공연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2024년. 클로즈업 마술 전용 공연장 비포선셋에서 권준혁 마술사의 백색소음 공연 포스터가 업로드되었다.

백색소음 공연 포스터.


클로즈업 마술이란


     우리나라의 마술 공연은 대부분이 무대 위에서 진행하는 이른바 스테이지 마술 위주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마술이 무대 위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관객 바로 앞에서 진행하는 클로즈업 마술도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마술 장르이다. 하지만 한 우리나라에서는 마술을 취미로 하는 사람들은 클로즈업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은 스테이지를 해야 한다는 기묘한 고정관념이 존재한다


그러나 클로즈업 마술공연만의 매력도 분명히 존재한다. 관객이 더 가까이에서 몰입하여 마술을 볼 수 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객석과 무대, 관객과 마술사라는 이분법적인 경계가 희미해지고, 모든 이들이 함께 공연을 만들어간다는 점이 클로즈업이라는 장르만이 가진 분명한 장점이다. 관객들은 마치 카페에서 친구들과 대화하는 것처럼, 마술사의 표정 변화와 몸짓을 아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마술사와 관객은 같은 공간에서 같은 것을 보고 들으며 같은 것을 경험하게 된다. 때로는 마술사가 아닌 관객이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권준혁 마술사의 백색소음은 지금껏 우리나라에 단 한 번도 없었던, 진정한 의미의 클로즈업 마술 공연이다.


공연에 입장하면 밥 화이트에게 물려받은 컵 3개가 놓여있다.
공연에 쓰이는 소품들은 일상 속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이다.


마술이란 무엇인가?


     공연은 전체적으로 1부와 2부로 나뉜다. 1부 공연의 주된 내용은 권준혁 마술사가 존경하는 마술사들의 작품이다. 맥스 말리니, 다이 버논, 그리고 그의 스승인 밥 화이트와 조니 톰슨. 그러나 그는 단지 예전 마술사들의 작품을 그대로 재연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 마술들을 통해 권준혁 마술사는 관객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마술이란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이 마술은 공연장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순간이라고 말하지만, 그는 마술이란 결코 특별하지 않으며, 우리 모두 마술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사랑해.” “괜찮아.” “할 수 있어.” 와 같은 말들은, 그 말을 듣는 사람들에게 마술 같은 변화를 일으키는 강력한 마술 주문이다.


     공연의 2부는 이러한 주제의식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는 우리 모두 어느 순간부터 마술을 그만두었다고 말하면서 관객들이 스스로 마술을 이루어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의 말대로 관객들은 정말로 스스로 고른 카드를 찾고, 스스로 잠긴 자물쇠를 연다. 무대의 중심에는 관객이 있고, 마술사는 그저 그 옆에서 묵묵히 관객들을 도울 뿐이다.


배경의 책들도 마술 공연의 일부이다.


마술사들의 마술


     마술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이 공연은 더 큰 의미로 다가온다. 내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마술사가 아무 의미 없는 행동을 몇 분 동안 이어가는 부분이다. 처음에 관객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의 행동을 지켜본다. 그가 정확히 어떤 목적으로 행동하는지는 모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행동에 몰입하고 함께 집중하게 된다. 마술사 스스로가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관객도 함께 그 의미를 찾아 나서는 장면이라고 볼 수 있다.


     어떤 마술사들은 스스로의 마술에 어떠한 의미도 부여하지 못하면서 관객들이 의미를 찾아내지 못한다고 불평한다. 하지만 이것은 우스운 일이다. 마술사조차 마술이 왜 중요하고 어떤 가치를 가졌는지 모르는데, 어떻게 관객들에게만 일방적으로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백색소음이란 우리가 귀를 기울이기 전까지는 그저 소음에 불과하다. 그러나 우리가 귀를 기울이는 순간 ‘소음’은 의미를 지닌 ‘소리’가 된다. 카페의 음악 소리, 옆 자리 일행들의 잡담 소리, 달그락거리는 얼음 소리, 창 밖을 지나는 자동차의 엔진 소리. 권준혁 마술사의 마술을 보고 누군가는 그의 마술이 하나도 특별하지 않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그의 마술과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면, 우리는 반드시 마술에 대한 그의 애정과 헌신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1회차 공연
2회차 공연














+ 권준혁과 권에드


그가 권에드가 아닌 권준혁이라는 이름으로 공연을 진행한 이유를 추측하면서 마무리하려고 한다. 내가 그를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은 2015년 즈음이었다. 그 당시의 권에드 마술사는 마술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갖고 있었다. 마술이란 특별해야 한다는, 꽤나 보수적인 세계관을 지니고 있었다. 날카롭고 예리한 사람, 열정적인 추종자와, 그만큼 열정적인 적들을 만들어내는 사람. 그게 내가 기억하는 권에드의 이미지였다.


2024년 다시 만난 권준혁 마술사에게서는 그때의 날카로움이 아닌 부드러움이 느껴졌다. 그는 여전히 마술을 사랑하고 아끼고 있었지만, 그만큼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을 아끼고 있었다. 그는 보통의 사람들을 위한 공연을 처음으로 열었고, 그 공연에서 마술은 더 이상 특별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권에드가 아닌 권준혁으로서 나아가는 그를 응원한다.


Abracadab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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