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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은 나를 어떻게 바꾸어놓았는가?

마술인의 생각

by 박영균
인생에서 가장 열심히 살았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누구나 인생의 가장 치열한 순간이 있다. 내게는 고등학교 시절이 그렇다. 그때의 나는 그야말로 어른들이 좋아하는 모범적인 학생이었다. 그들에게 크게 반항하지도 않았고,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려고 애썼다. 수학문제를 풀고 영어 지문을 회독하던 장면이 고등학교 3년의 거의 유일한 기억이다. 가끔은 친구들을 따라서 게임을 할 때도 있었지만 그것 역시 내 취향보다는 친구들의 기대를 충족하고 싶어서였다. 나는 다들 나 같은 줄 알았다. 자기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아는 것은 무척 희귀하고 어려운 경험이라고 생각했다.


치열한 대학 입시가 마무리되고, 나는 깊은 방황을 겪었다. 누구도 내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제시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목표를 잃어버린 나는 몇 달 동안 방구석에 틀어박혔다. 무기력에 빠져 시간만 보낼 뿐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운전면허를 따거나,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여행을 다닐 때, 나는 홀로 공허함을 껴안고 무언가를 버텨내고 있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접한 인터넷 방송에서 신기한 장면을 접했다. 그 사람은 카드를 한 장 고르더니, 카드 뭉치 중간에 넣고 신호를 주었다. 그랬더니 고른 카드의 뒷면 색깔만 전혀 다른 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이 마술은 아주 오래전부터 사랑받아온 클래식한 카드 마술, 바로 레드 핫 마마(Red Hot Mama)였다. (혹은 시카고 오프너(Chicago Opener)라고도 불린다.) 그때 나는 아주 오랜만에 그동안 잊고 있었던 생각을 떠올렸다. 이걸 해봐야겠다는 생각이다.


10년 후, 내가 처음 접한 그 마술을 주제로 강의를 진행했다.


많은 마술사들이 인간관계를 이유로 마술을 시작한다. 이성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라든가, 친구들 사이에서 돋보이고 싶다든가. 마술은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고 가까워지기 위해서 선택할 수 있는 아주 좋은 취미니까. 하지만 나는 달랐다. 나는 내 마음속 구멍을 메꾸기 위해 마술을 시작했다. 마술이 아닌 다른 것일 수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나는 마술을 선택했다. 내 스스로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대학교에 들어가자마자 나는 마술 동아리를 찾아갔다. 지금이야 사람이 꽤나 있지만, 그 당시 마술 동아리는 소수의 인원이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1년에 한 번 반드시 해야 하는 정기공연 날짜가 다가올 때쯤, 신입부원이라고는 나 하나밖에 남지 않았고, 선배들과 나를 합쳐서 고작 7명이서 공연을 해야 했다. 신입생인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공연을 만들었다. 당연히 공연은 처참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무대 스탭을 따로 쓰지도 못해서, 공연자가 공연을 마치고 퇴장하면 그때부터 스탭이 되기도 했다.


아직도 기억나는 아주 재미있는 장면이 있다. 그 당시 우리는 무대 양 옆의 가림막을 만들어야 했다. 거기에 있는 누구도 가림막을 고정해 본 적이 없었기에, 우리는 그냥 막무가내로 천장에 청테이프로 천을 붙였다. 하지만 천의 무게가 너무 무거웠던 탓일까. 시간이 지나 한창 공연을 진행하던 중, 천의 무게를 못 견딘 청테이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어찌해야 할지 몰랐던 우리는 부랴부랴 의자를 밟고 올라가 접착력을 잃어버린 테이프 대신 천을 들고 있어야 했다. 남은 공연 시간 내내.


표정만큼은 그때랑 똑같다. (AI 생성 이미지)



마술은 나를 어떻게 바꾸어놓았는가?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다음'을 기약하는 것이다. '이 사람을 다음에 또 만나고 싶다.' '이곳에 다음에 다시 오고 싶다.' 공연이 끝나고, 누군가는 오랜 숙제를 끝마친 것처럼 후련해했다. 선배들은 동아리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고생했다는 말을 전했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공연이 끝나고 내가 처음으로 했던 생각은 "다음 공연이 기대된다."였다. 그 순간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마술을 좋아한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스스로에게 종종 이렇게 질문한다. "마술은 나를 어떻게 바꾸어놓았는가?" 하지만 그건 성립할 수 없는 질문이다. 마술의 오랜 비유 중 하나를 빌려서 이야기하자면, 사과를 오렌지로 바꾸는 마술이 신기하려면 우선 관객들은 이것이 사과라는 것을 분명하게 인지해야 한다. 그래야 오렌지로 바뀌었을 때 비로소 마술이 성립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군가 자신이 사과인지 오렌지인지 자몽인지 멜론인지 모른다면, 아무리 대단한 마술이라고 해도 신기하지 않다.


우연히 만난 마술이지만, 이 장르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게 해 주었고, 더 나아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해 주었다. 다른 사람에게는 고작 사람을 속이는 행위일지언정, 나에게는 그렇지 않다. 어쩌면 그게 내가 마술을 아직까지 할 수 있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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