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가 힘들다. 내 몸이 힘들어 죽겠다. 애가 몇 킬로다. 걸음마를 뗐다. 밥을 안 먹는다.'
이 정도였다. 서로 위로도 해주고 다독여주며 그렇게 육아에 힘을 냈다.
그때 힘들다고 하소연했던 육아는 지금 사춘기 아이들을 키우는 입장에서는 애교 수준이었다.
그래도 아이들이 어릴 때는 아이들의 긍정적인 면을 찾아서 이야기하며 흐뭇해하기도 했다.
' 아이가 한글을 벌써 읽을 줄 안다. 우리 아이가 좀 똑똑한 거 같다. 알파벳도 금방 배우더라.'
사실 나도 우리 큰아이가 꽤나 똑똑한 줄 알았다.
내가 매일 읽어주던 상어 책을 어느 날인가 책을 보지도 않고 모든 내용을 외워서 말하지 않는가!!
한 권의 책을 단어 하나 틀리지 않고 정확히 외워서 말했다. 더욱이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다.
흥분한 나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자기야, 우리 아이는 천재인가 봐."
감히 이렇게 착각할 때도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안다. 딱 이나이때 아이들이 주는 기쁨의 순간들이 앞으로 겪을 아이의 사춘기 시절을 버티게 해주는 추억이라는 것을 말이다. 오죽하면 '아이들이 다섯 살 때까지의 모습, 그때 준 기쁨이 부모에게 줄 수 있는 효도를 다한 것이다.'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요즘 엄마들처럼 우리도 이 영특한 아이를 영어 유치원에 보내야 하나 고민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아이를 영어 유치원에 보낼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서점에서 알파벳 낱말 카드와 영어 CD를 사서 집에서 틀어주었다. 한동안 내가 이끄는 대로 아이는 잘 따라왔다.그런데 며칠 동안 잘 따라온다고 내가 아이에게 과한 욕심을 부렸다.
아이가 어느 날
"엄마 이제 안 할래. 너무 어려워요. 미안해요."
이렇게 이야기했다.
자신의 잘못도 아닌데 자신의 잘못인 마냥 이야기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고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미안. 엄마가 더 미안해." 라며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아이는 자신이 잘하는 모습을 보고 기뻐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기 위해 어려워도 참고 있었다.
내 욕심으로 아이 마음에 영어에 대한 감정을 나쁘게 만들고 있었다.
아이의 이 한마디를 듣고 나는 영어 관련 책을 모두 치워 버렸다.
그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은 육아서에서 읽은 대로 아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주는 거였다.
그때라도 내가 마음을 접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후로 아이의 선행에 욕심을 버리고 그저 책 읽기만 신경 써 주었다.
그 외에 초등학교 다닐 때 시험 점수를 물어봐도 적당히 잘 따라간다고 생각되면 더 욕심을 부린 적도 없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고 벌써 큰아이가 중학교 3학년이 되었다.
사춘기 나이가 되었지만 큰 트러블 없이 아이는 학교 생활을 너무 만족해하고 동아리 생활 또한 열심히 한다. 다른 집 엄마들은 아이와 있는 시간이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오죽하면 '다시 뱃속에 넣을 수 있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할 정도라고 한다. 또한 퇴근하고 집에 들어가서 아이와 부딪힐 마음의 준비를 하느라 한 시간씩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집에 들어간다는 소리도 주변에서 왕왕 들었다.
그에 비해 우리 집은 너무나 평온하다. 우리 아이는 사춘기가 무색하게 엄마인 나를 안아주며 인사한다.
오늘 하루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며 시크하게 대답해 주는 엄마의 대답에 웃어준다.
'그래 이 정도면 됐지. 아이도 행복하고 나도 더 이상 신경 쓸 일이 없으면 됐지. 이 정도면 참으로 감사하지.'
생각한다. 그런데도 시간이 흐르면 이내 나의 마음에 욕심이 들어선다.
사람은 참으로 간사하다. 나 또한 중심 없이 그저 주변말에 귀 기울이고 마음이 약한 엄마일 뿐이다.
"이 시간 학원이라도 가야 하는 거 아닐까, 이 시간 너무 놀고 있는 거 아냐?
네가 지금 엄마랑 한가하게 수다 떨 때니? 동아리가 무슨 말이야 하루 한 시간이 얼마나 아까운데,,,,,,"
이 정도까지 생각이 미치니 또 불안이 밀려온다.
내 욕심이 가득 찬 날 우연히 친구들과 아이들의 진로문제로 대화를 하다 보니 우리 아이는 좋은 고등학교를 가는 모든 과정에서 한참 모자라단다.
좋은 고등학교를 보내고 싶은데 그 정도 수준이 안 되는 거 같다. 설령 그 학교를 간다고 해도 다른 아이들은 이미 모든 고등 교육 과정을 학원 커리큘럼에 맞게 나아가고 있는데 우리 아이는 그에 비해해 놓은 것이 없다. 이제 학원 좀 보내볼까 하는데 우리 애가 갈 수 있는 실력 있고 마음에 드는 학원이 없다. 그들이 말하는 유명한 학원에 그 틈에 끼어 넣고 싶은데 안 되니 내 마음이 좀 속상하고 서럽다.
속상한 마음을 가지고 남편에게 이런저런 나의 서러운 마음에 대한 하소연을 했다. 그런데 내 이야기를 듣던 남편이 나에게 말했다.
"너는 지금 서러운 마음을 가지면 안 돼. 그 애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입시를 위해 준비해 왔으니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거지. 그런데 우리가 이제 와서 애들이 좀 잘한다고 그 학원 그런 과정에 들어가려고 하는 건 진짜 염치가 없는 거지. 지금 이 상황에서 도전해 보고 아이가 노력해서 좋은 고등학교에 들어간다면 그 학교 수업에 만족해. 그 학교에서 상위권에 들지 못한다고 속상해한다면 우리가 양심이 없는 거지."
"그럼 뭐 하러 그 학교를 가? 우리 애한테는 손해인데......"
"아니지. 잘하는 친구들과 좋은 선생님들과 그런 수업을 함께 하는 것만으로 우리 애한테는 좋은 자극이 될 거야. 이제 고등학생이면 어린애도 아니고 엄마인 네가 그런 것까지 신경 쓰며 걱정할 필요는 없어. 이제 부모가 대신 뭔가 해줘야 할 나이는 지났어. 자기가 부족하면 열심히 해보겠지. 뭐 안 돼도 할 수 없는 거지. 우리는 아이 옆에서 정서적으로 지지만 해주면 되는 거야.
우리의 양육의 목표가 좋은 대학 보내기는 아니었잖아. "
그렇다. 난 염치가 없었다. 처음부터 꼭 좋은 대학을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 시절 우리는 그냥 사는 게 바빴고 아이들 공부에는 신경을 써주지 못했다.
그나마 내가 아파서 몇 해 집에 있는 동안 공부를 봐줘서 아이들이 그럭저럭 좀 하는 건데 내가 욕심이 과했다.
우리에게 처음부터 양육이라는 의미는 '인성이 바른 아이를 키워서 스스로 독립할 수 있게 잘 기르자.'는 생각만 가지고 살았는데 이제 와서 공부를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