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이 많은 걸 언제 써?
결혼할 때 엄마랑 이것저것 쇼핑하러 다니는 그때가 좋았다. '결혼'이라는 이름에 마음껏 구경하고 백화점에서 통 크게 사고 그랬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물건들도 15년이 넘었다. 뒤돌아보면 순식간이다. 둘로 시작했지만 나중에 필요할 거야-라는 엄마 말씀에 뭐든지 세트로 사던 시절이었다.
그중에 가장 마음에 들었던 내 취향저격 세트는 이불이었다. 지금이면 손 떨려서 못 살 가격이었지만 단번에 고르고 사서 좋았다. 당연히 세월에 벌써 해져서 안녕하고 보내주었다. 다시 가보아도 그런 스타일은 이제 없다. 싱글에서 더블로 커진 이불의 크기만큼 나는 이제 하나가 아닌 둘을 먼저 생각한다.
그릇은 무난하되 좋아하는 색의 무늬가 있는 코*로 샀다. 이 많은 세트를 언제 다 쓰나 했는데 손님 한번 오시니 그릇이 부족해 난리였다. 우리 엄마는 손이 커서 한번 했다 하면 한 솥 가득 한 다라이 가득이었다. 좁은 집에 열이며 스물이며 연말이면 우리집에들 모였다. 나누고 퍼주고 싸주며 엄마가 지은 복을 내가 받는다 싶다.
그 세트들 중에서 제일은 예상하지 못했던 최고는 스뎅 그러니까 스테인리스 냄비 세트이다. 요즘이야 통삼중을 넘어서서 통오중에 질도 발전했지만 가격도 많이 내려갔다. 그러나 그때 그 세트는 정말 많이 비쌌다. 엄마 이걸 꼭 사야 해? 이거 너무 비싸고 무겁고 눌어붙고 관리하기도 어려울 것 같고. 일단 사. 이게 좋아.
해져서 벌써 사라진 이불, 잘 안 깨지지만 지루해서 다른 걸 쓰게 되는 그릇, 그러나 이건 아니었다. 쓰면 쓸수록 좋은 거다. 세상에. 이 큰 솥도 뭔가 크게 끓여낼 때 너무 좋고, 이 작은 냄비는 그냥 매일 만나는 아이템이고. 무엇보다 변하지를 않는다. 세상에 조금 태워먹었나 싶어도 쓱쓱 문지르고 약을 바르면 새것처럼 빛난다.
이런 마법 같은 살림이 있나. 그렇다. 서른이 다 되도록 나는 살림을 전혀 몰랐다. 엄마가 쓰는 그릇도 엄마가 쓰는 냄비도 엄마가 김치를 소복이 담아 튀어 오른 김칫국물까지 조심히 닦아서 식탁에 낸다는 것을. 그리고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애가 기든 걷든 사춘기가 되든, 끝없는 고민과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몰랐다.
가끔 생각한다. 엄마는 왜 내게 가르쳐주지 않았을까. 왜 내게. 설거지해라, 그릇에는 이렇게 담고, 이불은 이렇게 널어야지, 냄비는 이렇게 쓰고 프라이팬은 이런 게 좋은 거야 얼른 부쳐서 가져와 등등 하지 않았을까. 하루가 다르게 배가 부르고 겨우겨우 낳았는데 저렇게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면서-라고 등 돌리는 아이가 되는. 그런 시간을 다 겪었을 엄마는 왜 내게 가르치고 혼내고 시키지 않았을까.
친정에 가면 나는 손님처럼 앉아서 아니 누워서 티비를 본다. 엄마가 밥 먹어라 하면 식탁에 가서 앉고 먹고. 엄마는 또, 너는 너네 집에서 해. 우리집에서는 하지 말고 쉬어-했다. 도대체 엄마는 왜 이렇게 착한 걸까. 바보 같은 우리 엄마. 그렇게 키웠으니 내가 그렇게 몰랐지. 혼자 주방에 선 엄마의 사십여 년이 이제야 보인다.
마법의 스뎅이지만 손자국 참 잘도 난다. 바지런하지 않으면 금세 자국자국 온통 가득이라 물때도 차오르곤 한다. 호주 집에서도 일 년 살이 스뎅 몇 개 냄비 쓰면서 바지런히 닦는다. 그리고 둘러보면 변기 물버튼도 수도꼭지도 스뎅들인데 어쩜 그렇게 자국천지인지. 전엔 보이지 않았을 물자국이 여기서는 왜 이리 잘 보이나.
새벽에 나가 별 보며 퇴근하던 학교 생활에선 학교가 전부였다. 우리집 수도꼭지는 아마 조용한 파트너가 잘 닦았으리라. 일을 멈춘 여기에서 스뎅을 새삼 본다. 냄비 꼭지 버튼 하나하나 닦으면서 스테인리스가 제일 건강하고 좋아-하던 엄마를 생각한다. 매일 물때를 닦을 때마다 엄마를 생각한다. 엄마는 온 집에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