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토록 검은 뱀은 처음이었다. 2미터가 넘는 뱀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내가 숨이라도 쉬면 바로 달려들 것 같아서 꿈속인데도 숨을 참고 있었다. 덕분에 오늘 하루는 발 밑의 나뭇가지에도 엄마야-가 나왔다.
왜 깜짝 놀라면 엄마가 나올까.
동네 아저씨가 세워둔 팻말
뱀이 있다. 코알라도 많고 캥거루도 본다. 개미들 줄지어 들이치고 바퀴벌레는 잘도 뒤집어져 있다. 크리스마스부터 정초까지 천둥번개스톰 난리였는데 날이 개어 나가 보니 지렁이도 많았다. 어찌나 큰지 잘하면 뱀이 사촌 하자고 할 듯. 새도 많고 나무도 높고 자연과 하나 되는 퀸즐랜드.
그렇게 두려운 뱀이 담장에 진짜 나타났을 때 나는 꼼짝도 못 하고 멈췄다. 그런데 생각나는 건 파트너도 아니고 경찰관도 아니고 엄마. 나도 모르게 "엄마 어떡해-" 엄마는 어디에나 있어야 했다.
나는 어릴 적 가위에 잘 눌렸다. 꿈인 것은 알겠는데 깨지는 못하고 허우적거리는 느낌. 어디서 들어봤을 법한, 누가 몸을 누르고 있다든지 눈을 뜨면 귀신이 보일 거라는 등의 이야기 때문에 꿈인 줄 알면서도 무서움만 가득했다. 나만의 기도문을 마구 중얼거리며 어떻게 해서든 몸을 일으켜 안방으로 뛰어갔다.
엄마 나 가위눌렸어
엄마는 그것이 한밤이든 새벽이든 이마를 짚어주고 몸을 쓸어주며 기도했다. 그렇게 무수한 날들을 엄마와 아빠 사이에 끼여서 잠이 들었던 것 같다. 가위에 잘 눌리는 나는 엄마가 있어 다행이었다. 출장도 가지 않고 야근도 없는 엄마가 있어서 가위쯤이야 만병통치 엄마가 있으니 올 테면 오라지였다. 그런 내가 결혼을 하다니. 내 아이들의 가위를 책임져줘야 하는 사람이 되었다. 출장도 야근도 겁도 많은 내가.
호주에 와서 이사한 후의 밤. 새 집이 머쓱하고 곳곳이 생경하기만 한 그때. 호주 귀신이 나타났다. 까만 밤 12시가 지나자 지붕 위를 누군가 쿵쾅거린다. 그래 호주에도 귀신은 있겠지. 호주에서도 가위눌릴 수 있겠지. 그렇지. 사람은 아니니 호주 귀신이렸다.
밤의 악마였던 포섬은 그 후로도 우리집 지붕에서 자주 야간 달리기를 했다. 지붕 위를 쿵쾅거리던 그 악마는 요 며칠 우리 집 나무에서 기거한다
어느 밤이 아닌 낮에 우리는 나뭇가지에서 자고 있는 그것을 보았다. 다음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우리는 아무것도 안 하는데 아기 포섬을 키우는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긴 꼬리도 수북한 털도 눈앞에 잘 보이니 조금씩 마음이 간다.
보이지 않는 것들의 두려움을 지우는 것은 가만한 마음으로 잘 들여다보는 것
자가 아닌 너는 뱀
비가 무섭게 쏟아붓는 날이었다. 출근과 등교로 모두 가고 혼자인 나는 빗속에서 조금씩 움직이는 자(?)를 본다. 자가 저기 왜, 아 너는 뱀. 가늘지만 길구나. 다시 엄마야- 섬칫했는데 그 무거운 빗속에 가만히 있다. 그렇게 너와 나의 거리, 아침에 정오에 오후에 너를 보았다. 비를 맞다, 고개를 돌리고, 몸을 꺾었다, 웅크리는. 넌 가만히 있을 뿐.
살면서 무서운 것은 무엇일까. 빨래를 널러 나가면서 풀숲도 돌멩이도 노려보는 것, 산책로의 덩굴에서 무언가 튀어나올까 물러서는 것, 바스락 소리에 뒤를 돌아보면 오늘도 널찍한 걸음의 새들이 노니는. 이 거대한 자연에는 뱀도 코알라도 새도 나비도 흐르는 물과 꺾이면서 자라는 나무까지 이미 다 있는데. 벌써 있는 것들 안에 불쑥 들어간 나는 뭘 그리 무서워했을까. 이젠 엄마 없이 엄마인 내가 무어든 막아서야 하는데.
자음과 모음을 가르칠 때, 입술소리 ㅁ을 설명하며 엄마맘마하고 과장된 표정을 지어주면 아이들이 웃기다고 난리였다. 그렇게 한바탕 웃음 후에 나는 한껏 진중한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해준다.
몸에서 무언가 소리가 나올 때 입술을 떼면 저절로 나오는 말, 그 처음의 소리가 바로 엄마야.
입술소리 엄마 맘Mom 멈Mum 마마まま 마마妈妈 어느 나라 어느 장소에서도 깜짝 놀라도 너무 좋아도 우리들 입에서 가장 먼저 맴도는 소리. 그렇게 엄마가 된 내 옆에, 엄마는 없지만 늘 있다.
다행히 우리 아이들은 아직 가위에 눌리지 않았다. 이 거대한 자연 속에서 나도 날로 단단한 엄마가 된다. 포섬도 뱀도 벌레도 나무도 노니는 새들도 밟힌 풀도 소리를 지르는 아이들과 가끔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도, 가만히 들여다보는 마음으로 두려움을 지운다. 주변이 더 커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