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서 집 구하기
이 집에는 총 87개의 스위치가 있습니다.
세어보았다. 여기에 스위치가 있으면 좋겠어 싶은 곳에 꼭 있다. 40년이 넘은 이 집 이야기다. 이 집은 전 주인인 크리스틴이 남자아이들을 낳아 그들이 자라고 먹고 마시며 학교를 졸업한 뒤 어른이 되어 출가하기까지 쉼 없는 40여 년 동안 그들의 삶을 받쳐준 공간이다. 내 나이만큼의 집에서 나는 자주 그 부부를 본다.
처음에 이 집을 보러 왔을 때 아름다운 나무가 앞에 있었지만 평범해 보이는 단층의 벽돌집이었다. 호주에선 집을 구경할 때 부동산이 해당 시간을 올리면 보고 싶은 사람들이 신청하여 해당 시간에 오픈해 주게 되어 있다. 이것을 인스펙션(inspection)이라 말한다. 우리는 큰 기대 없이 방 3개에 욕실 1개면 되겠다 싶어 신청을 했고 정말 운이 좋게도 인스펙션엔 우리만 있었다. 최근 호주는 렌트 대란으로 수십 명이 한 번에 집을 구경하며 렌트를 못 구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세입자로 선택이 될지 모르지만 우리는 둘러보기 시작했다.
집 문을 열자 온통 하얀빛의 실내는 환했고 집 뒤편에서 들어오는 빛이 아늑했다. 40년 된 집이 이렇게 깨끗하다니. 새 주인에게 집을 판 상태였지만 원래 주인의 오랜 정성이 느껴졌다. 아직 살던 살림이 그대로였는데 구석구석 깨끗할 뿐만 아니라 정갈했다. 뒷마당으로 가는 계단은 집이 가진 고유한 내력을 느끼게 했다. 일 년 살이 집이었지만 여기가 우리가 살고픈 곳이구나 싶었다. 물론 우리가 결정할 일은 아니었다.
호주에서는 집주인이 렌트할 사람을 고르게 된다. 수많은 사람들이 인스펙션을 한다면 렌트비를 낼 여력이 충분해 보이고 이전에도 렌트비를 잘 납입한 이른바 '경력자'가 우선된다. 아무런 경력도 내력도 없고 심지어 영어도 낫굿앳잉글리쉬 상태인 우리는 이제 구구절절 편지를 써서 기다려야 했다. 호주의 부동산 사이트에서는 인스펙션 후에 해당 집을 렌트하고 싶다고 신청할 때 집주인에게 개별적으로 어필할 수 있다. 집주인은 이 집을 빌려주었을 때 매주 렌트비 잘 내고 집이 상하지 않게 잘 쓰고 관리할 사람을 찾을 터, 우리는 이렇게 썼다.
한국인이라 실내에서 신발을 신지 않아요. 아이가 둘이지만 여자 아이들이고 자기 방을 알아서 잘 치운답니다. 이제 다 커서 학교에 다니니 집을 어지럽히거나 더럽힐 걱정도 없어요. 한국의 집도 흰색 인테리어라 이 집과 같이 하얀 톤의 집을 잘 관리할 자신이 있어요. 식물 가꾸기는 낯설지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조금은 오글거릴 수도 있는 멘트들을 덧붙이며 우리는 '나를 뽑아주세요'를 거듭했다. 공개구혼도 아니고 타국에서의 첫 렌트 서러움도 느껴지지만, 이 집이 좋았다. 어른들 말씀대로 내가 살 집은 느낌이 있는 게 맞을까. 비록 주당 렌트비가 훅 하고 올라버린 퀸즐랜드 브리즈번의 현실이 있었지만, 오래오래도 아닌 1년의 임시 거주지이지만, 이 집이 우리집 같았다. 며칠 후 우리는 부동산의 연락을 받았다.
축하합니다. 집주인이 당신을 선택했어요.
여기 와서 알 수 없는 갑작스런 콩글레츄레이션을 받은 우리는 뭐지? 하고 어리둥절했다가. 우리가 됐데 우릴 선택했데! 하면서 마치 복권에라도 당첨된 것처럼 좋아했다. 매주 렌트비가 만만치 않지만, 일단 되었으니 야호! 그렇게 우리는 와들리에 오게 되었다.
새 집주인을 본 적은 없다. 이름이 왕씨인 것만 알 뿐. 아마도 이 지역에 많은 중국인일 테지. 당첨(?) 후 입주 전 동네 구경차 쓰윽 지나가던 우리는, 살고 있던 그러니까 40여 년을 살아온 원래 주인 크리스틴을 만난 적이 있다. 그녀는 청소에 바빴다. 우릴 보고 반가워하며 내가 너희를 위해 열심히 청소하고 갈게-하던 그녀.
이제 6개월 남짓, 이 집에 살며 집안 곳곳 구석구석에서 크리스틴 부부의 자취를 느낀다. 여기에 콘센트가 있으면 좋겠어하면 그것이 벽 가운데든 벽 아래 즈음이든 반드시 있다. 스위치는 저기서 켜도 여기서 끄면 자러 들어갈 때 참 좋겠다 하면 역시 반드시 양쪽으로 있다. 차고는 집에 들어오면 실내에서도 불을 켜고 끄면 좋겠네 하니까 역시 그것도 있다. 있다. 생각하면 그것은 살아가기 편리하게 감동처럼 있다. 그렇게 나는 6개월 동안 어디든 깔끔하며 무엇이든 편리한 그 부부의 오랜 내력과 정성을 만나고 있다.
나의 아버지가 엄마가 그러했다. 보일러가 고장이네-하면 뚝딱 고치시고 전기며 세탁기며 전선공사며 수많은 자격증을 가진 아버지는 못 하는 게 없으셨다. 엄마도 그랬다. 닭도리탕도 뚝딱 10인분의 밥도 뚝딱, 누가 오든 우리집을 보며 왜 이렇게 깨끗하냐고 말하곤 했다. 맥가이버 부부랄까. 크리스틴 부부의 자취를 느낄 때 난 우리 엄마 아버지가 떠오른다. 집을 향한 애정과 정성.
몇 해 전 아버지가 나무에서 떨어지셨다. 온 동네 집이며 나무며 고쳐주고 잘라주는 동네 맥가이버를 하시다가 뚝 떨어지셨나 보다. 근데 이 분들이 내게 이야기를 하지 않으셨다. 잘 지내? 하면 그래- 별일 없어? 없어-그런데 뭔가 찜찜했다. 그러더니 어느 밤 꿈에 아버지가 나타났다. 엄마 말해 무슨 일 있지? 아버지가 동네 사람 나무 잘라준다고 도와주다가 떨어지셨어. 세상에, 난 그것도 모르고. 다행히 잘 치료받으셔서 지금 잘 다니시고 다시 건강한 모습이시지만, 나는 알게 되었다. 내가 알던 젊은 맥가이버 아빠도 70대라는 것을.
여기에 스위치 저기에 연장함, 친정집에서 많이 보던 풍경이다. 어쩌면 나는 이 집에서 우리 엄마 아빠가 빚어놓은 집의 기운을 느꼈는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더 이 집에서 부모님을 많이 생각한다. 집도 나이가 들듯 사람도 주름이 늘어간다. 그러나 나는 바란다. 곳곳에 사람의 애정과 손때가 묻은 이 집처럼 부모님도 우리의 애정과 기도를 받아 변함없이 단단하시길. 여전히 머쓱하지만 내일 또 전화드려야겠다. 몸은 좀 어때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