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고백부터 해야겠다.
기가 그러니까 기술 가정시간에 우리는, 못질과 톱과 망치에 대해 배우고 바느질의 여러 방법에 대해 배웠다. 손가방도 만들고 미니 저고리 치마도 만들고 그릇 닦는 수세미도 만들었던 것 같다. 도대체 요리꽝 살림꽝 손재주가 바닥이었던 중딩 나는 엄마의 도움으로 미니 한복 저고리와 치마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렇게 살아온 것이다. 삐뚤빼뚤 엉망진창 나의 손재주는 엄마의 마무리로 겨우겨우 제출하고 살았던 거다. 그러나 결혼은 달랐다. 조금 뜯어진 거 들고 엄마네 집에 들고 갈 순 없으니까. 헌병대에서 빳빳한 다림질을 배워온 파트너에게 이것도 다려줘-하고 맡기면 되지만 바느질은 손 큰 파트너도 못 하는 일이다. 그때부터 나는 바느질 권력을 갖게 되었다.
단추 떨어졌어.
거기 둬.
언제 달아줄 거야?
내가 봐서 시간 될 때 할게.
그렇다. 하기 싫어서 질질 끌고 미룬 거다. 바느질 못하는 파트너는 기다릴 수밖에. 나의 권력이라지만 겨우 겨우 꿰맨 나의 자국은 여전히 똑바르지 않다. 단추가 겨우 연명할 뿐. 조금 더 심각한(?) 것들은 단골 세탁소에 드라이할 것과 같이 맡기기. 이사 가면 나는 단골 세탁소를 무조건 만들었다. 아, 그런데 여기 호주는 그런 세탁소 안 보인다. 양쪽 눈 2.0의 나도 이제 바늘구멍이 날로 침침한데 이것 참.
단추 아니면 뜯어진 것들은 걸레로 쓰면서 버리면 된다. 무서운 패스트 패션 때문인지 더 무서운 메이드 인 차이나 때문인지 옷값도 참 만만해졌다. 나의 중딩 때 5천 원 하던 티셔츠가 여전히 5천 원인 것 같은 느낌. 겹겹이 꿰매고 아껴서 쓰는 일은 머나먼 이야기가 된 듯하다. 저렴한 게 많고 쉽게 쓰고 금세 사는 무서운 세상.
한국집에도 호주집에도 하나 둘 여분 단추들은 통 안에 쌓여 있는데 쓰일 일은 많지 않다. 지난 6개월 동안 단추 한 두 번 달고 크게 바늘 쓸 일이 없지만 내게 장장 4시간의 땀 흘리는 일과를 안겨준 것이 있으니 바로 '이불속 꿰매기'였다.
3개 방의 침대 구입하고 매트 구입하고 매트 겉 씌우고 베개 커버 사고 베갯속 사서 넣고 이불 커버 사고 이불속 사고. 아, 그런데 아마 한 번쯤 경험했을 것이다. 이불 커버 안에서 이불속이 마구 뭉쳐져서 자고 일어나면 내가 덮고 잔 건지 안고 잔 건지 저기 먼발치에 펴지지도 않는 느낌을. 그래서 엄마는 이불속을 갈아주면서 모서리와 가운데 곳곳 겉과 속을 바늘로 떠주곤 했구나. 다 엄마가 해주는 대로 철없이 살았지만 어깨너머 배운 것들은 남아서 나도 따라서 하는 것이다. 그러나,
더블 하나 싱글 두 개 총 3개의 이불을 뜨는 것은, 무딘 손의 내게는 길고 긴 여정이었다. 네 귀를 맞추고 한쪽 끝에서 저 끝까지 나름 반듯하려는 홈질 하다가 조금 널찍하게 박음질하다가 나중에는 그냥저냥 시침질인지 휘갑치기인지 가정시간에 달달 외운 건 남아 가지고 그런 이름들을 생각하며 바늘을 돌려보는 것이다. 실을 너무 길게 넣어도 꼬이고 짧아도 금세 줄어들고 날은 더운데 이불은 오늘따라 호수만 하다.
다시 또 고백한다. 처음 꿰맨 중딩 딸 이불이 제일 촘촘하다. 나머지는 땀 흘리다 바늘에 실 넣다 꼼꼼하다가 대충 가면서 그냥저냥 막 꿰맸다. 한밤을 덮는 이불인데 한 나절을 다 잡아먹도록 끝나지 않는다. 누군가 휙 하고 던져주는 바느질감은 결국 엄마들의 시간과 정성 아래 아주아주 오래 시간 손에서 손으로 이어온 것. 엄마는 달마다 계절마다 이불을 바꾸고 속을 바꾸고 옷들을 다리고 말리고 접어 넣고 얼마나 혼자 바빴던 걸까.
국민학교 입학사진 속 나는 흰 강아지 무늬가 박힌 회색 원피스를 입고 있다. 검정 토끼털이 달린 빨간색 코트도 생각이 난다. 초록색 투피스는 그중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것이었다. 다 엄마가 손으로 떠준 것들이다. 엄마의 능력이란 가끔 상상 이상이어서 도대체 못하는 것은 무엇인가 싶다. 그때는 싫었는데 지금 보면 꽤나 고급스럽고 멋진 옷들이다. 패스트 패션 아니고 온기가 가득해서 대대로 물림하고 싶달까.
맥가이버 같은 아버지의 의욕에도 불구하고 엎어진 사업 이후로, 엄마는 우리 옷도 뜨고 인형도 뜨고 가발도 떴다. 어느 날 밤에 화장실 가려고 눈을 뜨면, 잠을 안 자고 가발을 뜨면서 무언가 부업을 해보려고 애를 쓰던 엄마의 뒷모습이 기억난다. 있는 것에 없는 것까지 직원들에게 다 내어주었다는 아버지는 집을 일으키려고 늘 새벽에 집을 나섰다. 온통 땀으로 젖어 돌아오시던 아버지는 후-하고 내뿜는 담배 연기에 답답한 마음을 날리셨다고 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아빠의 젖은 등을 보지 못하고 두 손에 들고 오신 빵이며 치킨에 신이 났었다. 바느질도 뜨개질도 잘 못하는 나는 그냥 나만 생각했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너무 열심히 살았다.
작은 아이가 뜨개질을 좋아한다. 바늘을 몰래 가져가더니 옷도 만든다. 바늘 위험해, 조심해야 해! 했지만 나보다 낫다 싶다. 녀석은 나와 다르게 손재주도 있고 눈썰미도 있다. 사실 녀석은 나와도 그러므로 우리 엄마와도 생김새는 안 닮았는데 그런 재주와 느낌은 우리 엄마를 닮았나 보다. 언젠가 녀석이 뜨개질도 바느질도 하다 잘 안 되면 내게 가져오다가 "아, 엄마 말고 할머니 오면 봐달라고 해야지." 한다. 역시 현명하다. 우리 아이들에게 나의 엄마는 요리도 최고, 머리도 완벽하게 잘 묶어주고, 바느질과 뜨개질의 천재다. 나는 아이들에게 무엇으로 남을까. 여전히 버벅대고 있지만 엄마 닮아 살림이 조금 재미있어지고 있다고 고백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