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밴드 가져와봐 손 베었다.
또? 아 정말, 괜찮아?
호주 와서 며칠에 한 번은 이랬다. 맞다. 나 요리 워낙 안 하고 안 좋아했으니 고로 칼 쓸 일 없었으니, 결혼 15년 차인데 살림을 시작한 사람 같다. 도대체 칼질은 왜 늘지 않는가.
고구마 당근 감자 호박 오이 두부, 가장 썰기 어려운 것은?
그렇다 고구마다. 위는 칼질이 힘든 순서대로 나열한 것이다. 삶거나 구우면 부들부들 얼마나 맛있게요-하고픈 내 사랑 고구마는 나의 손가락을 3번이나 흠집 냈다. 오늘은 오른손 내일은 왼손, 손에 밴드가 마를 날이 없다. 고구마는 얇게 썰수록 오븐에서 바삭바삭 맛있게 익는데, 우리집 고구마는 깎을수록 날로 두터워진다. 약간 덜 익어도 건강한 맛이야 괜찮아- 이러면서.
요리를 잘하는 사람들은 쓱쓱 싹싹 빠르면서도 단정하게 잘도 칼질한다. 내게 이것은 바느질과 같이 홈질 시침질에 이어 깍둑썰기 어슷썰기 채썰기 등으로 시작은 창대하나 점점 뭉그러진다. 모두 다양하고 남다르다. 균일함은 어디로 갔나. 요즘 나의 상담원 챗GPT에게 '칼질 잘하는 방법'을 물었다.
> 칼질을 잘하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방법을 따르면 좋습니다:
칼 잡는 법: 엄지와 검지로 칼손잡이가 아닌 칼등을 부드럽게 잡습니다.
재료 잡는 법: 재료를 잡는 손의 새끼손가락과 엄지로 재료의 상하를 흔들리지 않게 재료를 고정시키고, 검지를 구부리고 칼등에 붙여주세요.
칼질하는 법: 칼질을 할 때는 부드럽게 칼의 앞쪽부터 재료를 지나가면서 칼의 전체를 이용해 썰어주세요. 이외에도 다양한 칼질 방법이 있으나 아래를 참조하세요. 칼질을 잘하려면 연습이 가장 중요하므로, 안전을 유지하면서 꾸준히 연습해 보세요. 파이팅입니다!
세상에 기계가 나에게 파이팅까지 외쳐 주었으나 연습이 가장 중요하다는 그 말이 맞다. 15년 동안 양가 어른들이 싸주신 반찬으로 오래오래 연명하고 살았으니 연습할 기회가 없었다. 남 탓 아니고 내 탓이다. 내게 요리는 시간과 정성을 들여 열심히 한 그릇 내놓아도 먹으면 금세 사라지는 그 덧없는 것이었으니까.
칼등을 잡고, 재료를 고정시키고, 앞쪽부터 재료를 지나가면서 전체를 썰어본다. 하나 두울, 아이고 딱딱해라. 눈이 침침하더니 재료가 흔들한다. 이것은 땀인가 눈물인가. 역시 양파는 언제나 맵다. 양파의 둥그런 부분은 끝까지 말고 한번 평평하게 뒤집어 놓고 썰어야 하는데. 고집스럽게 칼을 댔다가 이번엔 좀 세게 그었다.
뚝 뚝 뚝
소고기를 썰고 닭다리를 썰고 양고기를 썰고. 야채와 달리 고깃감을 썰 때의 느낌은 사뭇 다르다. 도마에 배어 나오는 핏물. 썰면 썰수록 칼에 스친 내 살도 떠오른다. 이 미끄덩한 느낌 때문에 처음엔 만지기가 힘들었는데. 이제는 제법 썩썩 썬다. 남의 살 따위는 접어두자. 그런데 피가 자꾸 흐른다.
손가락을 머리 위로 두고 실로 꽁꽁 묶고. 벌어진 손가락은 늘 보기가 힘들다. 내 살 내 손인데도 차마 못 보겠다는 표정인 걸 보면 의료계에는 역시 갈 수 없는 배포다. 외국에서 살다 보니 아이들 감기도 나의 손가락도 큰 병원 가야 하나-가 먼저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 다행히 피는 멎었고 연고와 밴드로 감싸주기.
안 되겠다. 좀 더 묵직한 칼이 필요해. 그래서 샀다. 중국식 넓적한 칼이다. 역시 무게감이 있어서 더 잘 썰린다. 아 그래도 아직 무딘 느낌인데. 칼갈이도 사야겠어. 하루 한 달 한 해 잠시 산다고 달라질 건 없다. 냉장고와 주방은 하나 둘 살림이 늘어간다. 언제 이렇게 칼갈이 하나도 고민했지? 애들이 있는데 신혼 느낌이다.
영광의 상처들이 늘어갈수록 외식은 줄어들었다. 사실 아직도 칼날을 보면 등골이 싸한 두려움이 있다. 칼을 들기만 했는데도 뒤통수가 서늘하다. 잡을 때마다 둘 때마다 조심스럽고 무섭지만 없으면 큰 일이다. 그러고 보니 이 집에서 살림을 시작하며 제일 처음 산 것이 칼, 프라이팬, 가위였다. 단 하루를 살더라도 단 하루의 밥을 지어먹더라도, 칼이 필요했다. 그렇게 주부생활 6개월 차는 살림의 맛을 깨닫고 있다.
결혼 15년 사회생활 20년, 이제야 살림을 본다. 김치를 담그고 닭다리를 손질하고 물이 흘러나가는 수채구멍을 닦는 법이나 곳곳의 물얼룩을 없애는 방법처럼 처음인 것도 참 많다. 칼질에 바느질에 두 손에는 영광의 상처가 마를 날 없지만, 오늘도 뚝딱 끓인 된장찌개에 아이들이 맛있다를 연발한다. 학교 간 주인의 빈 방을 치울 때마다, 바닥의 머리카락을 주울 때마다, 입을 꾸욱 다문다. 엄마처럼 묵묵히 하리라 더 낮게 더 깊이 내어주리라 결심한 마음을 생각한다. 엄마처럼, 그것이 이렇게 어려운 것이다.
커서 부모님의 집으로부터 나와 살게 된 이후로 처음 나 혼자 살림을 한다. 도와주는 손길 없이 이럴 땐 이렇게를 생각하며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고 요리를 하고 집안의 모든 것을 한다. 깨끗한 집에서 상쾌함을 느끼고 도시락 피드백을 받으며 신남을 누린다. 이런저런 재료를 사고 요리를 만들 때마다 더 이상 '덧없음'이 아닌 '건강한 기쁨'을 맛본다. 이 모든 것에 엄마가 있다. 집에 대한 마음은 늘 엄마로 이어졌다. 남은 호주살이도 그렇게 엄마를 생각하며 살 것이다. 내 마음속 반짝이는 그 오랜 고마움으로 연재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