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금발도 머리가 날 때는 검정이지?
이건 무슨 소리냐. 얘야 금발은 금발로 나야지. 학교 친구들 머리 보면 금발인데 속은 까맣던데. 음 그건 염색했나? 글쎄다. 근데 내 머릿결 좋다고들 난리야. 그러게 외국인의 머리카락이 금발인 건 생각했는데 머릿결이 안 좋은지는 몰랐네. 얇고 엉킨다고?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 아이야, 너는 참 굵고도 많구나. 역시 엄마 아빠를 닮아서. 할아버지 할머니를 닮아서. 그러게 유전의 형질은 그렇게 손을 맞잡는다.
오늘도 우리 집에는 한 마리가 될 법만 머리카락이 굴러 다닌다.
두 아이의 머리카락이 나날이 길어지고 있다. 호주에 와서 미용실에 안 가기도 했지만 단발과 중발에서 길게 길게 아이돌처럼 기르는 딸들의 머리카락은 장어처럼 바닥에서 몸을 뒤흔든다. 주워도 주워도 자꾸만 밟히는 머리카락, 내가 눈이 좋아진 걸까. 왜 이렇게 머리카락이 잘 보이는 걸까. 나는 왜 이렇게 줍고 있는 걸까.
엄마 아버지가 옷 보풀 떼는 돌돌이 테이프를 좋아하시는 줄 알았다. 늘 그것을 손에 들고 띡 띡 머리카락 붙여 모으느라 바쁘셨다. 방안에도 거실에도 선반 위에도 욕실에도. 나는 도무지 보이지 않는데 엄마 아부지는 그 머리카락들을 찾아서 숙이고 숙이고 하셨다. 그런데 내가 지금 그 모습이다. 숙이고 숙이고 쫓아다니면서 머리카락을 줍는다. 아 잠깐만 아 여기 또 있네. 아이구 정말 끝이 없구나. 아, 이러다 애 머리 다 뽑힐라.
우리 엄마 아부지는 아주 깔끔한 분들이셨다. 부부가 금실이 좋아야 하는데 이 깔끔도 맞아야지 잘 살지 싶다. 그런 면에서 두 분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둘째라면 서로 서러우실 정도로 깔끔 그 자체이다. 엄마가 웬만해서는 잔소리 안 듣는 깔끔파인데 우리 자라고 나서 뒤늦게 설거지를 시도하시는 아버지가 그릇을 이렇게 닦아야지 하시는 걸 보고 놀랐다. 저렇게 닦다간 그릇이 부서지지 않을까. 뽀드드드득. 그렇다 그 그릇들처럼 나는 우리 집 바닥에서 머리카락이든 먼지든 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자랐으니 무릇 집이란 깨끗한 곳인 줄만 알았지 치우지 않으면 순식간에 더러워진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았다.
치우고 닦고 뿌리고 쓸고 털고 널고 개고 여기서 저기로 숙이고 말리고 올리고 모으고 버리고
집안일이란 하자면 끝이 없고 잠시만 눈을 두지 못하면 물때며 곰팡이며 먼지가 마구 굴려 다닌다. 특히 머리카락이란, 서울집도 호주집도 우리네 집은 왜 이렇게 하얀 것인가. 흰 벽 흰 가구 흰 주방 흰 침대, 잘 보여도 너무 잘 보이는 머리카락은 집어도 집어도 끝이 없다. 세면대에도 수채구멍에도 머리카락을 주우며 걷다 보니 가장 많은 머리숱을 보유하고 있는 큰 아이 방이다. 이 아이의 머리카락이란 어느 미용실이든 헤어 디자이너 선생님이 혀를 내두르는, 보조 선생님까지 여럿이 붙어서 작업해야 당일 헤어펌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 머리채를 한 손으로는 잡을 수 없어서 빗기려면 진땀이 나기 시작한다. 머리끈이란 띵 하고 금방 끊어지는 것이어서 가장 두껍고 질긴 것으로 사는 것이 어디에서든 이 아이에게 중요하다.
엄마 나는 왜 이렇게 머리가 많아. 진짜 반만 줄었으면 좋겠다.
노여워 마시라. 내가 이미 등짝 한 대 스매싱했다. 감사를 모르고 이 녀석이. 감기도 빗기도 말리기도 힘든 머리털에 징징하던 저 모습은 30년 전 내가 아닌가. 정말 내 머리털은 왜 이러냐고. 신체의 비중을 탓하지 않고 머리털 때문에 머리가 무럭무럭 커지는 것만 같던 중딩. 그 나이에 나는 성질만 낼 줄 알 뿐 머리카락을 주운 기억은 없다. 그러니까 그 많은 머리카락을 어머니와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줍고 계셨던 거다. 내 방에서 욕실에서 방 오가는 길목에서 널브러져 있는 머리카락을 본 기억은 아무리 생각해도 없으니까. 그렇게 수많았던 내 머리카락은 그만큼 수도 없이 빠졌을 텐데. 나는 딸아이 꽁무니를 쫓아다니며 머리카락 치우라고 잔소리를 하고 있느냐는 말이다. 결국 또 아무 말도 못 하고 그분들처럼 말없이 줍고 치울 수밖에.
수영장 샤워실에 유독 검은 머리카락이 눈에 띈다. 누가 볼세라 나는 내 것도 아닌데 열심히 휴지로 훔쳐서 버린다. 머리카락색으로 누가 사용했고 뒤도 안 돌아보고 가버렸는지 이 땅에선 너무나 티가 난다. 그렇게 봉사라 생각하자 하면서 샤워 후 머리카락을 정리해주곤 한다. 동양인의 검정 머리도 얇고 가는 금발 머리도 그리고, 어느 나라에서도 만날 흰머리도 보인다. 눈동자 피부색 돋아난 털과 색깔 말 하나하나 다 달라도 결국 나이가 든다는 것은 같은 색의 머리칼을 갖게 되는 것. 생김새 목소리 오늘의 감정 다 달라도 결국 나이가 들며 나는 날로 부모님처럼 된다. 잘 줍고 깨끗하고 싶고 너머로 배운 모습 그대로 치우고 정돈한다. 저 아이도 그럴 것이다.
너의 머리카락을 줍는다. 엄마가 그러하셨듯 나도 말없이 주울 것이다. 답답해하지도 원망하지도 않는다. 더불어는 늘 간절했던 엄마의 기도처럼 나도 머리카락 수만큼 아이를 위해 기도할 것이다. 마음의 수만큼 머리카락도 반갑게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엄마도 내게 그러했다. 언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