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입니다 김치

그 결과는

by 와들리 Wadley

김치에 대한 글을 아래처럼 쓰고 나는 엄마에게 글을 공유하지 못했다. 엄마집을 나온 지난 15년 그렇게 수없이 엄마는 김치를 주셨는데 나는 늘 헉헉거리며 잘 먹지 못했기 때문이다. 김치만 그럴까. 엄마의 사랑도 그렇다. 요즘 나의 화두는 내리사랑, 나는 엄마의 사랑을 늘 한 박자 늦게 깨닫고 나를 꼭 닮은 내 딸은 나의 사랑을 두 박자 세 박자 아니 열 박자 느려도 잘 모르는 것 같다. 내 속이 터질 때마다 뒤통수가 싸늘한 것은, 우리 엄마도 나 때문에 속이 많이 터졌으리라 싶은 생각. 그 속을 나는 30년이 지나서야 안다.


그리고 태어난 지 40여 년 만에(문득 많이 창피해지는 이 구절) 김치를 처음으로 담가본 것이다. 일단 저렇게 절여두고 글을 쓰고 자기 전에 뒤적거려도 배추는 너무 쌩쌩했다. 왜 숨이 안 죽는 걸까. 호주 배추는 기가 쎈가. 닭도리탕 해주신다고 사온 닭 한 마리를 어무니아부지 두 분이 쩔쩔 매시며 "아니 뭔 호주 닭은 이렇게 큰 것이냐." "닭도 사람 닮는가 호주 사람들처럼 얼굴은 작고 몸집은 크네 그려." 하신 것처럼 배추도 몸집 큰 사람들처럼 기가 무지하게 쎈 것인가. 소금을 더 뿌리고 뒤집고 다시 뿌리고 뒤집고 망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새벽에 일어나 다시 뿌리고 뒤집어도 쌩쌩하다. 아, 나 뭐 잘못했나 봐. 역시 요리는 내게 안 되는 것인가.


아침이 되었다. 배추는? 어제와 같다. 아니 더 쌩쌩한 것 같다. 분명히 김장할 때 엄마가 절여두고 물 빼느라 쌓아둔 배추들은 퀭하니 졸린 얼굴들처럼 흐느적거렸는데, 이것은 소금물을 먹고 잔뜩 약이 오른 몸짓의 빤빤함이다. 같이 사는 사람들은 놀리느라 난리다. 숨이 안 죽었네, 또 소금 조금 뿌렸지, 아유 배추 아까워 어쩐다. 우리 집에서 성씨가 같은 세 명은 나를 놀려먹고 돌려먹는 맛에 사는 것 같다. 소금 뿌렸거든, 아니거든, 될 거거든, 든!든!흥!


녹색창 외국창 모두 검색해도 알려주는 물과 소금과 시간의 양이 많이 넘었다. 그럼 어떻게 한다. 그냥 무치는 수밖에. 엄마가 남겨준 양념과 엄마의 레시피가 담긴 속을 넣으려다가. 잠깐, 뭐가 이상하다. 무를 넣어야 하나? 무가 없네. 일단 후퇴. 후다다닥 마트에 무를 사러 간다. 자 다시 무를 채 썰고. 잠깐 뭐가 또 빠진 것 같은데.(배추와 양념 맛을 한번 보고)- 모르겠다. 이래서 우리 집 세 명은 나를 믿지 못하나 보다. 김치는 발효의 과학이니 일단 무치고 기다려보자. 요리의 즐거움은 내게 아직 멀다.


본 건 있어 가지고-가 절로 나온다. 물이 빠진 배추를 하나 떡 하니 놓고 채 썬 무에 버무린 양념을 척척 바른다. 아니 척척보다는 여기선 스윽스윽이나 후루룩 후루룩이 더 맞을 듯하다. 영 바르는 품새가 안 나온다. 아 싱크대에 서서해서 그런가? 바닥에 철퍼덕 앉아 또 스르륵 발라본다. 나도 모르게 치근덕이라고 쓸 뻔했다. 쬐금씩 묻히고 있는 모양새다. 두리번거리며 감을 잡아보니 양념이 넉넉하지 않을 것 같다. "엄마 이게 뭐야" 쪼그만한 게 어디서 본 건 있어 가지고 내가 영 틀려먹었다는 것을 알아챘나 보다. "괜찮아 다 익게 되어 있어." 내가 자신만만했던 것은 선조들을 믿기 때문이었다.


발효의 미학 김치. 양가의 어머니들이 그렇게 먹어보라고 하신 김치는 참으로 건강한 음식이다. 누가 보면 상했나 썩었나 싶도록 버려두어도 그들은 그 안에서 자생하며 익어간다. 참으로 신기한 음식이 아닐 수 없다. 김치 만들기 배추 숨 죽이기를 열심히 찾아보느라 나는 김치가 얼마나 유익균이 많으며 몸에 좋은지 너무 많이 알아버렸다.


내게 한국어 수업을 받는 윌리엄네 형제는 독일인 가정이고 베지테리언이다. 우유는 물론 초콜릿도 먹지 않는다.(샌드위치 햄버거 피자 아닌 건강한 점심 도시락을 싸고 계실 윌리엄 엄마 대단) 그런데 그 가정에서 김치를 먹는다고 한다. 입양한 둘째가 한국인이라서 그런가 했더니 베지테리언에게 너무 좋은 음식이라며 아이들이 흥분했다.(그날의 학습단어가 김치 김장 김밥 김말이- '김'시리즈였다.) 김치에 대한 외국인의 수요가 늘어난다는 소식을 듣긴 했지만 막상 눈앞에서 만나니 신기하고 뿌듯할 따름이었다.


우리네 선조들은 어찌 이런 건강한 유익균이 많은 음식을 만들고 오래 두고 보관하고 건강하게 먹곤 했는지. 그러고 보니 한국에서 나는 체구가 건실한(?) 편이었는데 호주에서는 아주 쬐그맣다. 이젠 익숙해져 그렇지 참으로 놀라운 거구들이 참 많이 있다. 어무이 말씀대로 김치를 안 먹어서 그런가 보다.


그러므로 익어갈 것이라는 믿음이다. 쌩쌩하고 조금 발라도 내가 본 김치들을 보글보글 살아있음을 보여주며 한참을 스스로의 힘을 키우고 잎과 잎을 오롯이 모아 순하게 익어갈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마치 일단 도망가려는 사람처럼 쓰윽 쓰윽 바르고 소분할 지퍼백에 나누어 담고 냉장고 말고 어디 구석에 척하고 놓아두기 바빴다. 일단 나몰라라를 위해 동작이 아주 날랬음을 고백한다. 또 들은 건 있어 가지고 냉장고에 넣기 전에 익으라고 실온에 며칠 놓아두는 거, 그게 내게는 알아서 좀 익어주세요 제발-이었다. 그리고 3일 뒤 냉장고 구석에 넣었고 그로부터 3일 뒤 나는 그것을 열었다.


냄새가 그럴듯한데


함께 사는 여러분은 지난 몇 주간 김치를 못 먹었으니 일단 냄새에 취하고 맛은 그냥저냥 넘어가리라. 왜냐하면 김치라는 것이 알아서 발효되어 익어주는 고마운 음식이니까. 이것 보라 숨 죽은 거 보라. 역시 나는 김치에게 빚을 지고야 말았다. 알아서 익어주고 만들어지는 살아있는 김치(그대라고 쓰고 오글거려서 지움) 우리는 역시 부모님의 영향을 너무 많이 받아서 엄마가 김치 썰던 폼으로 담던 모습으로 국물도 조금 접시에 묻은 건 닦아내고 예쁘게. 그들에게 내어준다. 나는 미리 먹지 않고 기다리면서 잠시 두근거렸음을 고백한다.


오 맛있는데


역시 어무니와 선조들의 보살피심으로 김치는 알아서 맛을 내주었다. 지난 며칠 무거운 여기 지퍼백 주변을 지날 때마다 터지면 어쩌지, 상하면 어쩌지, 썩으면 어쩌지-까지 마음이 편치 않았는데 그렇게 묵혀주고 익어주고 숨 죽어주고 맛이 되었나 보다. 한국인의 칼칼한 라면 한 젓가락에 김치를 함께 먹으니 이곳이 한국의 어느 평상 위가 따로 없다. 맛있고 정겨운 건 결국 음식이 우리네 삶에 가장 중요한 것인가. 오랜만에 모두의 얼굴이 평온하다. 실실거리기도 한다. 알고 보면 내 어무니들 손맛이다. 내가 어깨너머로 보고 나르고 살피고 먹고 씻어내고 또 받아오면서 그 정성을 받고 자랐다. 밖에 있는데 더 많이 생각나는 건 엄마다.


첫 완성
배추 세일한다고? 딱 기다려 내가 김치 해줄게.


이 자신감은 무엇일까. 남은 소고기로 김치볶음밥 남은 김치에 갈비를 넣어 김치찜 별 거 없으면 김치에 김 싸서 끝. 김치만만세다. 엄마 다음 김치할 때 양념 다시 불러주세요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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