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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들리 Wadley Nov 21. 2023

처음입니다

김치

김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짜고 맵고 어떤 것은 먹고 나면 얼얼해서 이를 닦아도 마늘 냄새가 진동한다. 나도 모르게 이에 남은 고춧가루를 본 이후로 김치를 먹으면 자꾸만 혀로 이를 쓸어내린다. 어머님과 엄마 앞에서는 맛있어요 좋아요라고 말하지만, 솔직히 안 좋아한다.


한국인에게는 김치지. 맞다. 라면 먹을 때에도 칼칼한 김치찌개에도 입에 침이 고이는 그 느낌은 나도 역시 한국인 맞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김치 글쎄-가 된 데에는 양가 어머님의 역할이 크다. 애들이 어려서, 남편이 출장 가서, 바빠서, 김치를 먹을 시간이 없는데 자꾸 주신다. 이건 새로 담근 거야. 이건 무가 좋더라고 깍두기 이번에 먹어야 해. 아유 알타리가 그냥 어찌나 실한지. 그렇게 계속 주시는 두 분께 나는 싫다고 말도 못 하고 넙죽넙죽 받아온다. 그게 또 두 분의 기쁨이실 테니까. 물론 고백한다. 나 김치 막 다 버리는 그런 딸 며느리 아니다. 받아서 넣고 쌓이고 쌓이면 나누다가 그러다 냉장고 끝에서 무언가 허옇게 올라오고 냄새나면 버린 적은 있다. 엄마 어무니 믿어주세요. 최선을 다해서 먹고 나누고 볶고 노력은 했습니다.


호주에서 처음 한 달 김치를 안 먹었다. 한국에서도 가격이 좀 나은 호주산 소고기는 여기 호주이니 돼지고기보다 싸고, 햄버거 피자 그렇게 안 된다고 두 어무니가 놀라실 음식들이 주 메뉴이니 신나게 먹고 만들고 했다. 이렇게 쉬울 수가 빵 사이에 잘 넣으면 되고, 오븐에 잘 구우면 되고. 그렇게 신메뉴 아닌 새로운 서양 음식들에 입맛을 맞춰가고 있었다.(고기에 쌈장은 먹었음을 고백) 김치 없어도 고기도 빵도 잘만 들어가네. 그랬는데 두 달째가 되자 그 맛이 필요해져 버렸다. 냅다 비싸기도 하다 싶은 김치를 조금 샀다.


이게 다야?


11살 둘째가 이렇게 김치를 좋아했던가. 제발 한 조각만 먹으라고 할머니 앞에서 눈치를 마구 줘도 안 먹던 녀석인데 밥에 김치만 해서 우걱우걱 먹는다. 역시 우리는 한국인이었나. 쩝쩝 김치 이렇게 사 먹기엔 비싼데. 그리고 이건 정말 사 먹는 맛이잖아. 우리가 먹던 두 어머님의 김치는 정말 금(金)치였다. 어찌해야 하나.


엄마 김치 담가줘.


김치? 내가? 나 한 번도 해본 적 없는데(쯧쯧 자랑이다.) 본 적은 있잖아. 응 옆에서 도와만 드렸지 몰라. 아 빨리 할머니한테 전화해서 물어봐. 구원투수 엄마께 전화를 해서 배추를 절이고 양념을 만들고 뭔가 한참 들었는데 몽롱한 건 왜인가. 김치에 소금에 고춧가루 팍팍. 이게 끝이 아니었구나. 나와서 사 먹어보니 엄마와 어머님의 김치가 그토록 맛있었음을 그리고 우리에게 매주 매달 안겨주시던 그 '짐'같던 김치가 주중에 두 어머님 두 손이 벌게지도록 열심히 만든 정성이었음을 이제야 생각한다. 아, 나는 여전히 철부지다.


일단 배추를 샀다. 호주 배추인데 비스무리하다. 고춧가루도 처음이다.(냉동실에서 줄지 않던 고춧가루들이 그립다). 젓갈 대신 멸치액젓 넣으면 된다고 해서 그것도 사고 마늘도 파도 배도 응? 엄마? 다시마?를 달여? 무도 사고 좋은 세상 한국인마트에 다 있다. 없던 식재료가 주방에 하나 가득이다. 다듬는데 오후가 다 지났다. 소금에 절인다는 것이 이것이로구나. 처음이다. 그래서 숨이 잘 안 죽나 보다. 너무 쌩쌩하다.


과연 이 김치의 맛은 어찌 될 것인가. 일단 오늘 절이고 뭔가 묻혀보고 맛을 기다려보자.


오늘밤은 두 어머니를 많이 생각하기로 한다. 역시 나와봐야 엄마 마음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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