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의 물은 언제 마르나
문득 비 내리는 밤입니다
by 와들리 Wadley Dec 7. 2023
너희는 물을 사 먹게 될 것이다.
전화기를 들고 다니게 될 것이다.
어렸던 날의 기억에 남는 말들이 몇몇 있다면 그중 하나는 과학선생님 말씀이다. 그분은 괴짜로 유명했는데 수업시간에 진도를 나가는 것보다는 자신의 견해와 세상의 이치를 여럿 설파하셨다. 다양한 범주의 그것들은 다 기억에 남지 않지만 두고두고 잊을 수 없는 것이 저것이다.
이게 무슨 소리냐 하는 분들은 나와 다른 세대라 말하자. 그러니까 내 어릴 적 수돗가란 물이 철철 나오며 입을 대고 마셔도 괜찮았다. 물론 어머니는 물에 보리를 넣어 시원하고 구수한 보리차를 늘 끓여주셨지만 물을 사 먹는다는 것은 상상하지 못할 일이었다. 아니 그 차고 넘치는 물을 왜 돈을 주고? 전화기도 마찬가지. 줄이 없는데 들고 다닌다니. 기억난다. 과학수업이 끝나고 친구들은 저 미*과학이라고 으휴-했지만 진정한 천재가 아니었던가. 찾아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물 이야기이다.
이사 들어온 날 집 아래 커다란 물주머니(보통은 물탱크라고 할 텐데 우리나라의 딱딱한 탱크가 아닌 천주머니 방식이다)가 눈에 띄었다. 저것은 무언가. 잔디에 물 주면 됩니다-라고 듣긴 했지만 집만 한 크기이니 엄청나다. 그러니까 이 호주집의 바닥에는 물주머니가 커다란 괴물처럼 몸을 웅크리고 있는 것이다. 그 존재의 의미는 머지않아 밝혀졌다.
비가 오지 않는 날이 계속되었다. 처음에는 매일 날이 좋아-였지만 앞뒤의 잔디와 식물들이 날이 갈수록 말라가고 있었다. 워낙 정원 가꾸기에 정성이었던 전 주인 덕에 처음 집을 인스펙션(여기서는 집을 보러 오는 것을 인스펙션한다 하며 시간대별로 신청을 받아 한번에 여럿이 보기도 한다. 이때 집을 잘 보여야 매매든 대여든 잘할 수 있으니 인스펙션을 위해 청소는 물론 가구를 빌려 꾸미기도)할 때 우와 깨끗하기도 하지만 정성스러운 집이구나 했다. 그러나 그것은 역시 쉽지 않아서 우리는 그 사이 화분 몇 개를 죽였다. 엄청 긴장된다. 비가 안 오니 이 집 바닥에 도사린 물탱크가 이렇게 쓰일 줄이야- 파트너(호주식, 남의 편보다 맘에 드는)는 탱크에 달린 호수를 열어 신나게 물을 주었다. 그것도 마르는 날이 있으니. 그 커다란 주머니가 그 빵빵했던 주머니가 이토록 바닥에 찰싹 붙을 줄이야. 멀쩡한 물을 그냥 퍼서 주기에는
물값이 비싸도 너무 비싸고
전기세도 왜 이렇게 비싼 거니 호주
브리즈번 시티 영상을 보니 가물어서 모두가 함께 물을 아껴 써야 한단다. 그래서 물이 비싸구나 싶다. 살림은 잘 몰라도 환경문제에 나름 의식과 관심이 있었기에 워낙 의식을 하고 살기는 했다. 나부터-가 중요하다는 것을. 그렇게 된 데에는 그 20년 전의 호주살이와도 관련이 있다.
이게 다 닦은 거예요?
싱크대 양쪽 개수대 한쪽에는 그릇을 담근 뒤 세제를 칠해 닦고 나머지 한 곳에는 물을 채운 뒤 세제 묻은 그릇을 헹군다. 끝. 잠깐, 끝? 이렇게 닦았다가는 더럽다고 깨끗이 헹구라고 한 마디 들을 정도다. 이게 끝이라니. 그렇게 한번 행군 뒤 그릇 닦는 수건으로 깨끗하게 물기 없이 닦는다. 물기 닦아 얼룩 없게 넣는 건 우리나라도 같지만 헹굼이 저렇게 끝이라니 싶다. 그때 배웠다. 여긴 물이 부족하지만 환경오염도 진심으로 생각해서 물을 아끼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다고. 그 기억은 20년 동안 오래도록 남아 한국의 물값이 싸건 비싸건 평소에도 물을 아껴서 쓰려고 했다. 과일 씻은 물을 그냥 흘려보내지 말고 모아서 먹은 그릇을 애벌 씻는다는지 목욕물 받은 걸로 청소에 쓴다든지. 물론 많은 사람들이 이 정도 물절약을 하고 있겠지만 말이다. 호주에서 배운 물절약이 내겐 오래도록 머릿속에 남아 있었던 거다. 호주 CVA로 나무 심기와 동물 보호 봉사활동을 했기에 호주는 내게 환경을 보호하고 자연을 그대로 지키려는 나라로 아주 강하게 남아 있었던 것이다.
kwater어쩐지 전기요금도 두 배네- 했지만 물세가 비싸다 했더니 호주가 워낙 비싼 곳이었고 한국은 저렴한 편이었다. 그나마 이번에는 물가상승 및 전기요금 인상에 따른 호주 정부의 특별지원이 있어서 그렇지, 지원 없이는 전기요금 월 15만 원이 넘는다. 참고로 우리는 티브이와 인터넷을 연결하지 않고 일 년 살이 중이고, 한국에서 쓰던 건조기도 없이 살고 있다. 호주 전역의 집값 상승 렌트 대란에 착실한 테넌트로 주당 렌트비도 꼬박꼬박 내고 있으니 환경도 환경이지만 허리띠를 졸라야 하는 것이 사실인 것이다.
그렇게 4인 가족이 서로 폭풍 잔소리를 하면서 우리도 변했다. 한쪽 개수대는 막아서 애벌용으로 쓰고 청소하여 버리고, 깨끗한 물을 그냥 하수구로 흘려보내는 일은 없다. 아이들도 칫솔질을 할 때 컵에 담아 쓰고, 몸에 비누칠할 때 그냥 틀어두던 샤워기도 잠가서 헹굴 때 다시 연다. 기본적인 것들인데 더 의식하며 살게 되었다. 빡빡한 살림이 우리를 좀 더 의식하는 사람으로 잘 만들어주고 있다고 본다.
물세 많이 나왔니?
호주에 왔다가신 엄마가 물으신다. 여기선 손에 물 닿지 말고 편히 계시라 한다는 것이 나도 모르게 엄마 여기 물세 비싸 그릇 좀 그만 씻어-라고 했다. 내 딸에게는 너 말 좀 이쁘게 해라 나한테 왜 친구만도 못하게 하니-라며 화낸 나다. 그런데 나는 또 왜 이리 못나게 말하는 딸일까. 엄마 그냥 편히 계세요 제가 할게요 하면 될 것을 왜 물세 이야기를 했을까. 저녁 하는 딸 내 부부에게 뭐라도 도와주고 싶어서 앉지도 못하고 나오는 그릇 하나하나 닦던 엄마는 내 말에 얼마나 무안했을까. 그 말 이후로 가실 때까지 혹여나 딸에게 피해 줄까 봐 엄마는 얼마나 신경이 쓰이셨을까 말이다. 게다가 때마침 수도꼭지가 고장 나서 똑똑 떨어지는 물이 부모님 두 분께 또 노심초사 염려하시게 했으니 물이 뭐라고 참 낯이 뜨겁다.
1.5리터 10병의 마실 물을 찬장에 채워두니 마음이 든든하다. 이렇게 사두거나 정수기를 설치해서 물을 먹는 시대가 되었다. 세탁기에서 쉼 없이 나아갈 세제와 샴푸와 린스와 각종 독한 액체들을 생각하면 어느 뉴스에서 본 해변의 죽은 고래 떼가 떠오른다. 끝없이 쓰레기가 떠내려온다는 어느 바다 마을의 이름도 입에 맴돈다. 어릴 적에는 '물을 사 먹는다고? 세상에-'라고 했는데 우리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또 어떤 시대가 밀려올까.
물은 아껴서 쓰고 환경을 더 생각하는 생활을 잊지 않기로 한다. 수도꼭지를 볼 때마다 자식에게 불편을 주었을까 염려할 엄마의 마음도 생각한다. 물은 언제나 위에서 아래로 꼭지를 돌리면 순식간에 나오곤 했지만, 말은 마르는 수도꼭지처럼 천천히 젖어들도록 조심스레 하기로 한다. 엄마 미안, 걱정 말아요. 아끼면서 귀하게 잘 살고 있어요.
똑 똑 밤의 수도꼭지에 귀를 기울여 엄마를 위해 기도하는 밤이다. 쏴아 갑자기 내리는 비. 밤의 빗소리가 온 집안을 메운다. 온통 부어주는 엄마의 마음 같다. 그렇게 나는 아직도 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