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은 수면의 질을 결정하는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그날의 온도와 습도와 같은 외부 환경은 물론 내 몸의 컨디션과 수면 장소에 따라 때로는 무겁고 때로는 부드러운 이불이 필요하다. 어떤 이불을 덮었느냐가 나의 아침 상태를 결정하기도 하고, 함께 잠드는 사람과 내쉬고 마시는 방의 공기까지도 좌우한다. 그러므로 깨끗한 이불은 중요하며 많은 이들이 고급호텔의 바스락거리는 이불을 선호할 것이다. 아, 나는 이불 전문가가 아니다. 다만 오늘 온-방의 이불을 빨았을 뿐.
정신없이 바쁠 때에는 온 가족의 이불도 언제 빨았더라- 언제 갈아줬지 헷갈리기도 했다. 베개라도 가벼운 이불이라도 주말에 몰아서 후다닥 갈아주자 싶어서 사고 사고 사다 보니 뭐가 많았다. 서울에 살다 보니 한겨울에도 솜이불 덮을 일이 많지 않아 꽁꽁 싸매서 넣어두었고 계절마다 갈고 끼우고 덮는 것도 1년 중 네 번의 일이었다. 그렇게 짚어보니 엉망주부였지만 계절갈이는 했구나 싶다. 하지만 무거운 이불은 침대 밑 공간에 넣어뒀다가 깡그리 잊어버려서 다시 사고 아 맞다 하는 것도 여럿이었고 그야말로, 자주 갈아주지 못했다. 바스락이 아니라 꿉꿉한데 어여 갈자-라니 수면의 질이 낙후될 수밖에.
엄마 솜은, 이건 어찌해야 해?
솜은 틀어야지. 문이나 엘리베이터에 솜 틀어준다 광고 있을 거야 전화해 봐.
결혼한 딸의 AS가 길다는 아버지의 농담처럼 나는 뭘 모르겠으면 엄마한테 전화한다. 애들 어릴 때는 근처에 살기도 했으니 늦게 퇴근하는 남편보다는 부모님이 먹여주고 길러주셔서 우리 집 그릇은 젖을 일이 없었나 보다. 결혼하고도 그럴진대 결혼 전에야 안 봐도 보일 듯. 지금이야 이런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 참 많이 부끄럽지만 그냥 우리 엄마는 내게 다 해주셨다.
집은 원래 깨끗한 곳인 줄 알았다. 학교에서 집에 돌아오면 방이 정리되어 있고 머리카락 한 올도 잘 보이지 않으며 씻으면 돌아보지 않았다.(그렇다 아무도 없는 해외 나와 살아보니 하루에도 몇 번씩 고백성사다) 정말 철이 없었기에 걸레질을 쉬지 않는 엄마, 놓기 무섭게 닦고 훔치는 엄마가 답답했다. 뭘 그렇게 쉼 없이 씻고 그런담 좀 지나쳐 지나쳐. 결혼 후에도 나는 이런 철없는 망언을 했다.
부모님이 귀촌하시고 우리는 서울로 오고, 알아서 살기 시작하면서 주말은 빨래와 이불의 대소동 난리통이 되었다. 안 마르고 물비린내 나고 건조기가 터질 듯 열일하고 먼지가 가득하고 질 좋은-보다는 그냥 빨리 갈고 막 쓸 수 있는 것으로 그렇게 계절이 마구 지나가고. 성장기 아이들은 잘 때도 땀을 많이 흘리는데 우리 집 이불들은 바스락하지 못했음을 다시금 고백한다.
온돌이 없는 집에 산다는 것 = 추위에 발바닥이 두터워질 것
우리네 집이 사실 옛날식 온돌이 아니듯, 실제 발바닥의 두께가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따뜻한 바닥의 환경에서 살다가 아무런 히팅 시스템이 없는 바닥의 환경에서 살게 되니 날이 더워도 바닥은 차고, 날은 더운데 카펫은 꿉꿉하다. 햇볕이 쨍한 호주의 겨울이라도 밤은 무섭도록 차갑기 마련인데 바닥 난방이 없는 한밤은 코끝이 짜릿하게 시리기도 한 것이다. 이불이 중요했다.
버리고 갈 수도 있는 가벼운 이불과 전기요가 있었지만 든든한 이불이 필요했다. 아, 호주는 양모 아닌가. 열심히 검색하여 추천하는 양모이불을 골랐다. 이불과 침대커버 등등 그 명칭 또한 낯설어서 이제야 알게 되었다. 이불은 퀼트라고 부르며 양모이불은 울퀼트(wool quilt)라고 한다는 것을. 추천하는 브랜드 제품이 예상보다 가격이 있었지만 마침 50프로 할인이라 신이 나서 구매 버튼을 눌렀다. 그러고 보니 양모이불은 결혼하고 처음이네- 뭔가 귀한 것을 가져오듯이, 한국 갈 때 가져가야지 하면서 들고 온 이불에서는 양의 내음새인가 싶지만 무언가 가볍고 따사로운 내음새가 났다. 설명서를 이토록 꼼꼼히 읽은 적이 있던가. 햇볕에 널고 쓰며 가급적 세탁기 물빨래 돌리지 말고 햇볕에 널어라 오케이. 가장 볕이 많이 드는 곳에 희고 보드라운 그것을 널었다. 구겨질까 세세히 펴고 때 묻을까 조심하며 좋은 볕이 한가득 들도록 했다. 그날따라 볕이 참 좋았다.
장을 다 보고 아이들과 집으로 오는 길, 날도 좋고 기분도 좋고 이불도 샀고 오늘밤은 따스할 테고. 그랬다. 수면의 질도 결정하지만 다가올 수면을 기대하게 만드는, 이불은 중요한 것이었다. 동물털이라 그런지 약간의 새것 냄새도 이제 다 빠졌을 테니 오늘밤 브리즈번의 겨울이지만 드디어 따스하겠구나 기분이 좋았다.
엄마 이거 똥 아니야?
아- 아- 아-(아팠을 거다) 하이얀 이토록 하이얀 이불에 누런 이것은 어느 새의 똥인가. 볕에 내어주고 한 번도 덮지 못한 한나절 조심조심 귀히 여긴 이곳에 어인 누가 똥을 쌌단 말인가. 누구야, 누가 내 이불에 똥 쌌어!!!!
빛의 속도로 빨고 널고 말리고 남고 다시 빨고. 새것이 헌 것이 되는 것은 언제나 빠르다. 그렇게 빨다가 실실 웃었다. 이거 무슨 코미디도 아니고 어쩜 이렇담. 근데 이렇게 처음 해보았는데 엄마 생각이 난다.
잘 말려서 커버 잘 씌워서 쓰고 있다. 아이들의 이불은 워낙 차고 던져버리니 가벼운 것들을 2개 바꿔가며 빨고 널어주고 있다. 다행히 브리즈번 햇볕은 한나절이면 이불쯤이야 끄떡없이 말려버리니. 건조기가 없지만 빨래를 널 때마다 볕의 귀함을 다시금 생각한다. 그리고 이불의 끝에는 울 엄마가 또 있다.
우리 집 마당에 빨랫줄이 길고 엄마는 거기 이불도 런닝도 탁탁 털어 널었다. 엄마가 널어둔 빨래들은 내가 오늘 널어둔 것들과 달리 반듯하고 빤빤했다. 그것만으로도 다림질된 듯 깨끗했다. 깨끗한 이불 커버에 베갯잇, 모두 시원하고 까실한 느낌이 좋았다. 학교 끝나고 집에 오면 그것들이 제 자리에서 반듯하게 있었다. 나는 그런 제자리와 반듯함의 고마움을 모르고 자라 버렸다.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돌아와 보면 벗어둔 옷도 여기저기, 이불도 마구 구겨지고 뭉쳐져 있다. 베개는 거의 바닥 신세다. 간식 먹은 봉지라도 바닥에 없으면 그나마 다행 벌레가 꼬일까 조심스럽다. 나의 어렸던 방도 그러했을 거다. 아니 분명 더 어지럽고 지저분했을 거다. 누가 그렇게 매일 치워주고 닦아주고 착착 정리해 주셨음을 모르고 말이다. 그렇게 엄마 생각이 많이 나서, 나는 아이들 방을 치울 때는 꾹 참고 군말 안 하기로 마음먹었다. 우리 엄마도 그랬으니까. 한 마디도 없이 늘 치워주셨으니까, 나도 그렇게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을 아이들에게 갚는다. 엄마에게 드릴 양모이불을 찾아봐야겠다. 혹여나 널어서 말리지 말고 보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