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락 피드백

잘 먹었습니다

by 와들리 Wadley
오늘 맛있었어?


도시락을 매일 싼다. 파트너 큰 아이 작은 아이 3명의 점심 도시락과 간식 도시락, 총 6개. 칸이 2-3개씩인 도시락통 빈칸들에 매일 고민이 담긴다.(호주 학교는 10시 즈음 간식 시간이 있고 12시 즈음 점심시간이 있다.)


매일 아침 울리는 알람 버튼을 꾸욱 누르며 도시락을 싸기 위해 주방으로 간다. 호주 퀸즐랜드주 브리즈번에 사는 와들리의 아침이다. 요리를 못 하는 것은 물론 안 좋아하는 와들리는 어쩌다 도시락을 싸게 되었나.

타기 직전 구제된 햄버거의 빵들이여. 아슬아슬한 매일 아침.

호주에 오기 전 나의 걱정거리는 도시락이었다. 내게 도시락이란 1년에 1-2번 어린이집 유치원 외부체험날 김밥이든 유부초밥이든 쪼금은 아이가 우와-할 수 있게 새벽눈을 비비며 소꿉놀이처럼 만들어보던 그것. 1년에 몇 번 안 되는 이벤트이니 요리 못하는 나는 최선을 다했었다. 치마 입은 소시지 만드는 모형틀도 사고 누르면 식빵이 곰돌이가 되는 빵틀도 사고. 요리는 레시피와 집중이 중요한데 나는 그걸 매번 대강 넘어가며 '맛'보다는 도구를 활용한 '시각'에 집중했다. 1년에 딱 1-2번. 그런 이벤트. 그런데 매일이라니!


호주의 학교에 가보면 조금 고개가 끄덕여진다.


우리 아이들은 초등학교와 중고가 바로 붙어 있는 학교들에 다니는데 초중고 모두 8시 30분까지 등교하고 모두 다 3시에 끝난다. 5분 더하고 빼고가 다르고 내부의 시간표 구성은 다르겠지만 온 동네 교복 입은 초중고 학생들이 아침에 8시 30분쯤 학교로 향하고 3시 즈음이면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그 모습을 보면 한눈에 백인도 흑인도 중국인도 인도인도 너무나 다양한 인종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같은 교복이라도 머리색 피부색 머리에 두른 터번이며 키나 몸집 등 달라도 너무나 다르다. 이 다양한 인종과 입맛을 맞출 수가 없어서 각자의 도시락을 싼다고 들었다. 게다가 알러지도 다양하고 베지테리언도 여러 층위로 많다. 도시락은 필수인 것.


이해는 되지만 매일 도시락을 싸는 사람이 갑자기 된다는 것은, 매일의 고민을 안게 되는 것


호주에 처음 온 날 우리는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가 고민에 빠졌다. 피자 햄버거 피시 앤 칩스 피자 햄버거 치킨 샌드위치. 아무리 둘러봐도 식사가 아니고 간식인 느낌. 그 첫 저녁식사는 결국 조금은 익숙한, 카레덮밥에 쌀국수로 마무리되었다. 그러므로 도시락 메뉴는 이렇게 흘러갔다.


샌드위치 햄버거 피자 김밥 볶음밥

유부초밥은 싫다고? 샌드위치 햄버거 피자 볶음밥 주먹밥

간식은 그냥 과자로 넣어달라고? 각종 감자칩 팝콘 초코과자 사과주스 파인애플주스 초코우유 비스킷

너무 축축해. 너무 많아. 너무 흘러. 너무 불편해. 너무 너무.


언제부턴가 샌드위치 가게를 지나면 무엇 무엇을 넣었는지 유심히 보는 버릇이 생겼다. 아, 내가 이렇게 도시락에, 요리에 집중하게 되다니. 너무 사 먹고 시켜 먹고 익혀 먹고 데워 먹어서 벌을 받은 것 같다.


다시 햄버거 샌드위치 볶음밥 배웠다 또띠아 그리고 김밥


그들이 가장 싫어하는 도시락 메뉴는? 햄버거다. 아이들, 맥**드와 나를 비교 말라

이삿날 어쩔 수 없이 맥*날드에서 주문해 넣어주었는데 가장 맛있었다고 했다.


최고의 피드백을 보여주는 점심 메뉴는? 김밥, 역시 먹어본 맛이 무섭다

김밥이다. 스시 아니다 얘들아. 친구들이 이쁜 스시라고 하면 한국 김밥이라고 하렴.


도대체, 우리 엄마는 어떻게 도시락을 하루 7개나 싼 걸까?


나와 내 동생 점심과 야자용 4개, 그즈음 우리 집에서 재수학원 다닌 사촌오빠 점심 저녁 밤 3개. 엄마는 도대체 몇 시에 일어났을까. 엄마는 그 수많은 빈 통들을 대체 어떻게 다 채운 걸까. 매일 저녁 무엇을 어찌 쌀지 엄마는 얼마나 고민을 했을까. 그러고도 어떻게 티를 안 냈을까. 나는 참 왜, 하나도 몰랐던 걸까.


결혼하고 새삼 느꼈던 것 중 하나. 엄마의 김치와 어머님의 김치 스타일이 다르고 엄마의 김밥과 어머님의 김밥은 맛이 다르다는 것이었다. 햄 단무지 시금치 당근 어묵, 재료가 거의 같은데 맛은 참 다르니. 손맛이라는 것이 참말로 있고 그 손맛에 20여 년 길들여진 우리들은 아무리 다른 집 다른 어무이의 음식을 먹어도 내 엄마의 김치와 내 엄마의 김밥과 내 엄마의 찌개며 반찬의 맛일 때에 "그래, 이 맛이야."가 나올 수 있는 것.


엄마 나는 어떻게 해. 기억할 엄마의 손맛이 없어서.

사실이기는 하다만 우리 아이들은 참 정곡을 잘 찌른다. 한국에서 나는 밀키트파였다. 내 장보기의 주는 아마도 우유, 요거트, 과일, 밀키트키트키트. 오죽하면 순두부찌개에 밥 한 그릇 후딱들 먹는 아이들이 배를 두드리며 "엄마 이번에는 풀*원이야, 비*고야?"라고 물을까. 이십일세기 우리네 삶은 참 많이도 변하여 폰만 누르면 배달이 새벽이든 밤낮이든 딱 맞추어 오고 키트를 벗겨 그대로 렌지에 돌리거나 끓이기만 해도 일류 요리가 된다. 아침 8시부터 오후 6시 즈음까지 온종일 오르락내리락 후다다닥 점심도 거르며 바빴던 나는 퇴근 후 키트라도 끓이면 다행이었다. 맛집들을 얼마나 많고 배달은 어찌나 빠른지. 한 주에 몇 번 요리가 무색했다.


그러니까 호주의 도시락은 내게 기회를 주었다.


다듬고 무치고 끓이느라 온 에너지를 쏟으면 먹고 나서 순식간에 사라지는, 내게 요리는 덧없는 것이었다. 그 덧없음에 시간과 노력까지 피곤에 절여진 나는 요알못이 떳떳했다. 덧없음을 몇 번이고 말하던 내가


요리를 한다는 것은 그것을 먹는 사람을 위한 진심 어린 마음임을 안다.


아이들이 집에 들어오자마자 "오늘 진짜 맛있었어. 애들이 예쁘다고 했어. 최고였어."라고 피드백을 해주는 날이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내가 조금 더 애쓰고 정성을 들이면 그 신나는 피드백은 반드시 돌아왔다. 솔직히 녀석들 얄미운 날 대강 후다닥 만들면 대답 대신 통에 남겨진 음식을 보게 되었다. 그러니까 음식이 마음을 담게 됨을 이제야 하나씩 느끼고 있는 것이다.


엄마의 진미채 엄마의 동그랑땡 엄마의 소시지 튀김과 깨 솔솔 뿌려진 김밥까지 하나하나 생각난다.


학교 마치고 집에 돌아온 나는 피곤하니 말 걸지 말라는 표정으로 도시락 쓱 던져두고 방으로 들어갔었다. 그때의 나는 그랬다 세상에. 엄마 맛있었어요. 최고에요-와 같은 피드백은커녕, 잘 먹었습니다도 하지 못했던 나를 생각한다. 갑자기 얼굴이 뜨거워진다.


엄마의 도시락에는 늘 따뜻한 국이 있었고 그냥 대강 익힌 반찬이 없었다. 애써 튀기거나 애써 말아 부치거나 건강하라고 넣어주신 여러 것들이 있었다. 빵 안에 겹겹이 넣은 샌드위치나 소스 가득 바른 햄버거 익혀 넣는 피자 같은 것은 없었다. 그렇게 쉽지 않은 12년을 엄마는 하루하루 지나온 것이다.


도시락을 겸허히 그러나 시작하는 마음으로 만든다. 요리는 덧없음이 아니라 묵묵히 담는 마음이었다. 손맛을 익히기엔 아직 손가락 사이사이 칼에 베인 자국이 자꾸 생기지만 이제 시작이니 갈 길을 멀리 봐야지. 그렇게 내게도 엄마의 손맛이 생기기를 바란다.


엄마만 생각해도 침이 고이는 '이 맛이야-'를 나도 언젠가는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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