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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즈노트 Oct 05. 2020

이야기에는 두 가지 클라이맥스가 있다

모두의 스토리텔링 기하학

최근까지 마블코믹스와 DC코믹스에서 쏟아져 나온 영웅물로 영화관이 채워졌었다. 마블의 아이언맨, X맨, 스파이더맨, 헐크, DC코믹스의 배트맨, 슈퍼맨, 원더우먼 등등 캐릭터 물이 시리즈로 만들어져서 상영됐다. 그런데 캐릭터별로, 또 해당 시리즈의 감독별로 평가가 크게 나뉘었다. 히어로물은 시간 때우기용이란 말에 딱 맞는 영화도 있었고, 샘 레이미 감독의 <스파이더맨>이나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비긴즈>로 시작된 3부작은 지금도 최고의 찬사를 받는 영화로 평가받고 있다. 같은 캐릭터로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데 사람들은 좋고 나쁨을 명확하게 구분한다. 그 차이는 무엇일까? 


마음 클라이맥스의 중요성


이야기의 본질은 단순하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말했듯, 사건이 있고 해결이 있으면 이야기가 된다. 다만 그 과정이 짜임새 있고 개연성 있게 구성되어 관객을 설득시킬 수 있는 것, 즉 플롯이 있으면 좋은 이야기가 된다. 좋은 이야기는 우리의 삶을 닮아있기에 사람들은 좋은 이야기에 몰입한다. 그런데 종종 작가나 제작자들은 흥미로운 사건이 멋지게 해결되는 과정에 집착한 나머지 마음의 여정을 소홀히 다룬다. 


만약 누군가가 지구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우주로 나가는 SF를 떠올려보자. 당연히 사건의 클라이맥스는 여러 난관을 뚫고 결국 지구를 구하는 순간(해결)이 클라이맥스가 될 것이다. 대개의 킬링 타임용 장르물들은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다. 주인공은 처음부터 영웅적 면모를 띠고 있고, 타고난 판단력과 용기, 그리고 희생정신을 갖추고 있어서 쿨하게 임무를 떠안고 수행한다. 플롯이 좋다면 이런 이야기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다만 오래 기억되는 이야기가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 이유는 우리가 인생에서 마주하는 난관들이 떠오를 때를 기억해보면 된다. 우리는 슈퍼맨이 아니다. 또 문제 해결 과정을 감정으로 기억한다. 갑작스러운 사건이 벌어졌을 때의 당혹감.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이 과연 이걸 해결할 수 있을까란 공포감, 그리고 사건이 진행되면서 거듭 겪게 되는 회의와 실망감, 그리고 결국 일이 해결됐을 때의 흥분과 만족감까지 말이다. 결국 인생을 모방한 좋은 이야기는 사건이 시작됨과 함께 마음도 동시에 '부릉부릉' 시동이 걸려 출발해야 한다. 


마음 여정의 시작은 어디일까?


위의 그림에서 보면 마음은 시작과 함께 침잠하다가 마이너스(-) 클라이맥스 상태(붉은 원)로 가장 낮은 곳까지 떨어진다. 이후 사건이 진행되면서 상승곡선으로 변환된다. 그렇다면 마음의 여정이 시작되는 곳은 어디일까? 


신화학자인 조셉 캠벨은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이란 책에서 둥글게 돌아오는 원형 사이클을 모형화했다. 이 사이클은 전 세계에 흩어진 신화의 공통적이 요소를 공식화한 것이다. 대부분의 신화 이야기에서는 주인공의 소개가 나오고 그다음 미션이 주어진다. 그런데 대개의 주인공들은 이 미션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즉 소명의 거부 단계가 여기에 해당한다. 바로 이 부분이 마음의 여정의 시작이 된다. 인간은 대부분 새로운 도전에 임할 때 회피하고 싶은 마음을 갖는다. '내가 해낼 수 있을까?', '지금처럼 평화롭게 살고 싶은데...' 등등. 


정신분석학자 칼 구스타프 융은 인간이 새로움을 배척하는 심리를 <영웅과 어머니 원형>에서처럼 '어머니의 품'에 비유한다. 아이는 새로운 세계로 나가기 전 두려움에 휩싸인다. 지금의 아늑하고 안전한 어머니 품에 안주하고 싶은 공통된 심리를 갖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단은 미션을 거부하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거부는 마음의 갈등에 작은 불씨를 지피는 것과 같다. 그리고 당연히 여기에서 마음의 여정이 시작된다. 이야기의 초반부에 덥석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주인공보다, 고민하고 갈등하다 받아들이는 것은 독자나 관객의 설득력을 배가 시킨다. 또한 후반부 사건의 해결에 더욱 큰 쾌감을 전해준다. 


마음 클라이맥스의 위치와 특징

 

마음의 클라이맥스는 보통 극의 중반부에 위치한다. 사건은 주인공의 의도와 상관없이 진행되며 엉켜간다. 해결의 실마리는 보이지 않고 능력의 한계에 부딪힌다. 주인공은 깊은 회의감과 위협, 공포에 직면한다. 살다 보면 우리 역시 마찬가지로 이와 같은 상황에 놓인다. 마음의 클라이맥스가 은유하는 것은 자신이 어쩌지 못하는 운명과 맞서는 무력감, 잘못된 선택이 아닐까 하는 회의감, 열정도 의욕도 사라져 버린 슬픔이다. 주인공은 이런 우리를 대신해서 마음속 깊은 바닥까지 가라앉는다. 


이러한 마음의 클라이맥스는 요나 콤플렉스와 닮아있다. 칼 융과 미국의 심리학자 매슬로우가 언급한 요나 콤플렉스는 변화를 두려워하면서 우리 인격의 성장을 방해하는 근원적 심리를 뜻한다. 성서 속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미션을 받는다. 하지만 그는 그러한 사명과 변화가 두려워 배를 타며 사명을 거부한다. 결국 바다에 던져져 커다란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고 만다. 어두운 절망 속에서 요나는 다시 하나님의 미션을 받아들이게 된다. 마음의 클라이맥스는 조셉 캠벨의 말처럼 '고래의 배'로 표현되기도 하고, '동굴 가장 깊은 곳'이라는 말로 묘사된다. 기호학에서는 자격 시련이 이러한 흐름에 해당한다. 


마음 클라이맥스는 보통 사건 해결의 클라이맥스 이전에 위치한다. 즉 최종적인 사건 해결에 앞서 두려움과 공포, 자신에 대한 회의감이 최저치로 떨어졌다가 각성하여 사건 해결에 성공하는 식으로 그려진다. 왜냐하면 전과 다른 용기, 지혜, 과감성은 감정적으로 새롭게 태어나지 않으면 불가능한 마음의 자세이기 때문이다. 마음 클라이맥스의 공간적 위치는 보통은 적진 한가운데나 사건의 한 복판이 되곤 한다. 말 그대로 마음의 상태가 죽기 일보직전에 몰리는 순간을 표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경우에 따라서는 그림 2. 응용형의 경우처럼, 마음 클라이맥스가 사건 해결 이후에 찾아오는 경우도 있다. 주로 반전을 다룬 이야기에서 자주 쓰이는 플롯이다. 사건이 무사히 해결된다. 세상은 원상태로 돌아갔고 질서가 찾아왔다. 그런데 해결된 사건을 통해 주인공은 뒤늦게 깨달음을 얻는 형식이다. 


반전이 있는 이야기를 잘 쓰는 M. 나이트 샤말란의 영화 <싸인>을 보면 이러한 형식이 잘 드러난다. 주인공은 독실한 믿음을 지닌 목사였지만 교통사고로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뒤 믿음을 버리고 농부로 살아간다. 그런데 마을에 미스터리 서클이 생기는 등 이상한 일들이 벌어진 뒤 느닷없이 외계인이 쳐들어온다. 주인공은 남은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고, 마침내 외계인은 물러간다. 그런데 다 떠난 줄 알았던 외계인이 집에 남아 있었다. 주인공은 아내의 유언을 기억해낸 끝에 외계인을 무찌른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은 사건이 모두 해결된 뒤에야 아내의 유언을 통해 준비된 신의 뜻을 깨닫게 된다. 끔찍한 아내의 교통사고는 사실, 남아있는 가족들을 지키기 위한 신의 준비된 계획이었던 것이다. 주인공은 이를 계기로 믿음을 회복하고, 다시 목사로 살아가게 된다. 


반전 스릴러 장르는 이처럼 사건이 모두 해결된 뒤, 마음의 문제를 해결하는 구조를 취한다. 또는 공포물 연작처럼 모든 것이 평화로워진 이후에 사실 진정한 공포가 닥쳐오게 함으로써 후속작을 기대하게 만드는 플롯으로도 사용된다. 


마음 클라이맥스의 의미 


많은 작가들, 심지어 할리우드의 프로페셔널 작가들까지 마음 이야기의 중요성을 간과하곤 한다. 좋은 이야기는 늘 두 가지를 다뤄야 한다. 사건과 마음이다. 사건은 사실 그 자체로는 중요하지 않다. 사건을 해석하고 받아들이고 관객과 독자에게 보여주는 것은 언제나 마음이다. 따라서 주인공의 마음 상태의 높고 낮음을 늘 염두에 두면서 사건의 전개를 그려야 한다. 그 사건이 주인공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마음을 통해 표현해줘야 한다. 


자기소개서에서조차 어학연수나 기업체 인턴 경험을 사건으로만 기술해선 안 되는 이유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이나 성격의 장단점을 기술하라는 요구들도 따지고 보면 이 사람이 경험을 통해 각성하고 성장하는 사람인지를 알고 싶어서 던지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성공한 사업가나 장사꾼을 다루는 TV 프로그램 역시 늘 사건과 마음을 연관시켜 표현한다. 실패 당시의 고통과 괴로움을 극적으로 표현하면 할수록 사람들은 이야기에 빠져들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쓰거나 콘텐츠를 만들 때, 혹은 이미지 캠페인이나 마케팅을 할 때에도 결국은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한 것임을 떠올려야 한다. 그 마음의 깊이와 위치가 깊고 어둡고 위험한 곳에 처할수록, 작은 빛이나 성공조차 더욱 대비되어 밝아지는 구조를 깨달아야 한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다. 우리를 가장 비참하게 만드는 인생은 같은 일상이 점철된 지루함이다. 도리어 우리가 가장 깊고 어두운 골짜기를 지나고 있고 죽을 것만 같다면, 그것은 우리가 그럴듯한 여행이나 이야기를 만들고 있다는 의미다. 그것은 잘못된 인생이 아니라, 멋진 이야기를 만드는 기본 구조가 내 인생에 만들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힘을 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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