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은 역시 좋다니까

김광진 <편지>

by 뮤즈노트

퇴근길에 김광진의 <편지>를 듣는다. 얼룩덜룩 계절의 옷을 갈아입는 가을의 퇴근길을 천천히 거슬러 오른다. 노래 가사가 낙엽처럼 발밑에 밟힌다. 누군가의 편지를 바탕으로 쓰인 가사인만큼 울림이 있다.


남자는 여자를 정말 사랑했나 보다. 여자는 긴 침묵으로 외면한다. 그렇게 이별이 왔음을 직감한다. '여기까지가 끝인가...'라고 느낀 순간 남자는 헛된 노력으로 인연을 거스르지 않기로 마음먹는다. 더 이상 구구절절 애원하지도 매달리지도 않는다. 도리어 여자에게 자신의 마음이 다칠까 걱정하지 말라고 말한다. 그리고 당신 덕분에 힘든 시절을 버틸 수 있어 정말 고마웠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남자는 사랑한 사람의 이름을 나지막이 부른다. 이제 다시는 못 보겠지만 부디 좋은 사람 만나길, 진정 행복하길 축복해준다. 오직 남자의 축복하는 진심만 가져가고 새로운 행복을 향해 나아가길, 그렇게 조용히 응원한다.


세상엔 여러 종류의 만남과 사랑, 그리고 이별의 형태가 존재한다. 어려운 시절 힘이 되어주었던 사랑이 애틋한 것은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상대의 마음을 존중하기에 자신의 애착과도 같은 사랑을 접을 수 있는 이별이 몇이나 될 것인가.


우리는 가슴 떨리는 시작을 기억하고 아픈 이별은 추한 옷가지를 본 마냥 성급하게 치워버린다. 그러나 사랑이 시작만 있는 것이 아니라면 그간의 추억과 애틋했던 기억을 뜨개질의 실코를 하나씩 꿰듯 따뜻하게 매듭짓는 것은 소중하다. 사랑이 사랑으로 떠날 수 있게 배웅하는 일은, 떠나고 나서 완성되는 사랑도 있음을 알게 해 준다.


깊은 사랑에 어울리는 우아한 이별을 할 줄 아는 남자는 좋은 사람임에 분명하다. 그 남자가 사랑했던 여자 역시 좋은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런 정중하고 배려 깊으며 사랑이 담긴 이별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 분명할테까.


"좋은 사람이야. 좋은 사람은... 역시 좋다니까."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이즈의 무희>속 순수한 무희의 말이다. 그녀는 우연히 여행길에 만난 남자가 보인 작은 친절과 호의에, 함께 일하는 언니에게 이렇게 표현한다. 그리고 인생의 무상함을 어쩌지 못해 방황이나 다를 바 없던 여행을 하던 남자는 그 한마디 말에 구원을 받는다.


좋은 사람.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좋은 사람으로 오래 기억될 수 있다면 한 줌짜리 인생도 살아볼 만한 의미 있는 것 아닐까? 남자의 헛된 인생은 그렇게 불림으로써 온전한 치유와 회복을 경험한다. 아마도 그는 실제로 좋은 사람이었을 것이다. 이유를 묻는다면 딱히 할 말은 없다. 그저 '좋은 사람은 역시 좋다니까'라고 할밖에.


하지만 우리는 안다. 누구에게 그런 사람으로 불리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그저 그 말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대학시절의 일기 어느 귀퉁이에 살면서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좋은 사람'이라 불리길 원한다고 쓴 적이 있었다. 살면서 여러 종류의 칭찬을 받아본 적은 있지만, 그 말을 들어본 적이 있었던가...


어쩌지 못할 삶과 일상의 바닷물이 달의 궤도를 따라 차오르는 요즘, 씩씩한 목소리가 곁에서 들렸으면 바라는 것은 지나친 기대일까?


좋은 사람이야.

좋은 사람은.. 역시 좋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