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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즈노트 Jul 23. 2022

아들과 심포니 오케스트라 연주를

예술의 전당 마음을 담은 클래식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의 방학이 시작되었다. 다른 아이들과 달리 학원을 다니지 않는 데도 학교 다니는 게 꽤나 힘들었는 모양이다.


"아빠, 오늘은 방학 첫날이니까 내가 자고 싶을 때 잘게요~"


"그래. 첫날이니까..."


결국 새벽 2시가 넘어서도 자질 않아서 억지로 재웠다. 늦게 자서 나른한 얼굴로 낮이 되어서 깬 아들에게 말했다.


"내일, 아빠랑 예술의 전당 오케스트라 공연 보러 갈까?"


뜻밖에도 아들의 대답


"어, 가고 싶었어."


한때, 문화사업 부서에서 일하면서 베를린 필 공연 진행도 돕고 뮤지컬에 대형 오페라에 정신없이 일했던 기억이 있다. 그 뒤로 오랫동안 문화 공연은 특별히 찾아보지 않았다. 아들이 어느 정도 크자, 이상하게도 옷을 잘 갖춰 입고 클래식 공연을 부자가 함께 보는 게 불현 로망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몇 개월 전에 맛보기로 고양 아람누리에서 청소년 오케스트라를 관람한 적이 있는 데 아들은 그걸 기억했나 보다.


아내 취업 면접 때 봐 뒀던 오전 11시 공연 포스터가 떠올랐다. 예술의 전당을 자주 지나다니지 않거나 클래식 팬이 아니라면 잘 모르겠지만 요즘은 예술 공연장들의 평일 오전 프로그램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일종의 틈새 공연인 셈인데, 비어있는 연주회장 가동률이 높아져서 좋고 관객 입장에선 상대적으로 싼 가격에 공연을 볼 수 있으니 좋다. 주로 저녁 공연에 패턴이 맞춰진 연주자들에겐 좀 부담스러울 순 있지만.


전날 예술의 전당 인터넷 사이트에서 예매를 했다. 가격은 S, R, A... 등 등급 구분 없이 1,2층 일반석 3만 원, 3층좌석 1.5만 원 두 가지로 나눠 팔고 있다. 그런데 KT 후원행사이다 보니 자리가 어느새 꽉 차 있다. 요즘 코로나 때문에 걱정돼서 3층 박스석을 구매할까, 상대적으로 사람이 적은 2층 사이드 석을 구매할까 망설이다가 2층을 택했다. 3층 박스석은 공연장 시야가 1/3쯤 가려져서 키가 작은 아들에게 안 보일 듯해서다.



KT에서는 메세나 일환으로 KT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운영하면서 아주 오랫동안 오전 클래식 공연을 해왔다고 한다. 이후 예술의 전당으로 옮기며 토요일이 아닌 매월 금요일 1회를 진행하고 있다. (다른 금요일엔 한화생명 등 후원으로 금요일 11시 공연이 이뤄지는 듯하다.)


공연은 2시간 정도로 구성되는 데, 중간 인터미션이 15분 정도 있다. 1부에는 유명 클래식 협연 곡 위주였고, 2부에는 천둥번개, 폭풍을 주제로 한 다양한 작곡가의 음악을 들려줬다. 특히 좋았던 점은 김용배 교수가 나와 백스크린에 간단한 작곡가 소개를 해주기도 하고, 연주 도중 악장의 흐름에 따라 1 주제, 2 주제 전환 시점을 스크린에 간결히 표시해줘 클래식에 대한 이해를 도와준다는 점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KT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연주 능력이었다. 전에는 체임버 오케스트라 규모였다고 하는데, 풀사이즈 오케스트라 특유의 깊이와 울림이 있었고 악단 전체가 하나로 움직이는 듯 잘 다듬어지고 훈련된, 훌륭한 연주를 선보였다. 협연 독주자들의 기량도 상당해서 듣는 내내 즐거웠다.     



이제 두 번째 클래식 공연임에도 아들은 이것저것 묻기도 하면서 즐겁게 관람했다. 특히 공연 전, 오보에 '라'가 울리며 현악기가 뒤따르는 튜닝 사운드를 평소 좋아했는데, 아들 역시 튜닝 사운드를 들으며 영화 시작 전에도 들은 기억이 있다며 좋아했다.


팀파니 소리가 나면 쌍안경으로 보기도 하고, 하프씨코드 소리에 관심을 갖기도 했다. 커튼콜이 뭐야? 라거나, 베토벤 풀네임이 뭐야? 등등 여러 질문을 한다. 전원 교향곡 천둥소리 직전에 나는 빗소리의 표현을 이해하며 감상하기도 했다.


관람이 끝난 후 내 손을 잡고 나오며 말한다.


"아빠, 정말 좋았어. 재밌었어."


근처 중국집에서 짜장면과 짬뽕을 먹고 나오니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다.



편의점에서 과자와 우산을 하나 사서 썼다. 예술의 전당 주차장으로 돌아가면서 아들이 말한다.


"아빠, 비 다 맞는 거 아니죠? 아빠 쪽으로 기울여서 비 안 맞게 써요."


그리고 잠시 후 혼잣말하듯 말한다.


"아빠랑 공연 보고 비 맞으며 걷는 것도 다 추억이 되겠지?"



나중에 커서 아들이 늙은 나를 데리고 예술의 전당에 올 수 있으면 좋겠다는 로망이 또 하나 생겼다. 그때쯤에는 공연을 보며 꾸벅꾸벅 졸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아들은 비 맞으며 걷던 오늘을 떠올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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