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뮤즈노트 Oct 03. 2022

아들이 추억하게 될 애잔한 아버지의 뒷모습은?

가족과 강원도에 있는 리조트에 갔다. 저녁을 많이 먹어 혼자 산책을 하고 방에 돌아오니 아들이 덥석 나를 안는다. 


"뽑기로 뽑은 게임기에서 음악 소리가 나오는데 아빠 모습이 떠오르면서 슬퍼졌어."


아들 눈에는 정말로 눈물이 그렁하다. 알듯하면서도 모르겠다. 아들은 가끔씩 나를 몹시 애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몇 년 전 어느 날엔가는 아들을 자전거 뒤에 태우고 유치원에 데려다줬다. 그날 집에 와서는 또 나를 안고 울먹거리며 말했다. 


"아빠가 나를 데려다주고 혼자서 자전거 타고 가는 뒷모습을 보는 데 너무 슬퍼 보였어. 그래서 유치원에서 아빠 그림을 그렸어. 선생님이 누굴 그린 거야?라고 물어서 아빠를 그린 거라고 말해줬어."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아내는 '맨날 인생이... 어쩌고저쩌고 하니까 애가 그러는 거야.'라고 나를 탓하거나, '엄마는 왜 애잔하게 생각하질 않니?'라며 아들에게 묻곤 한다. 


아내 말대로 그런 원인일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하다. 아들이 '낄낄'거리며 놀 때가 대부분이긴 하지만 의외로 섬세한 감수성을 타고난 듯 하니 말이다. 그런데 이따금씩 아빠만 애잔한 눈으로 바라보는 건 이해가 안 가는 측면이 있다. 아들에게 이유를 물어봐도 그냥 아빠를 보면 되게 슬퍼질 때가 있을 뿐이라고 할 뿐이다. 


그래서 최근 있었던 - 다소 불쌍해 보일 수도 있었던 - 일을 떠올려봤다. 


주말 밤에 산책 겸 나가서 집 근처 메가박스 오락실을 찾았을 때 사탕뽑기가 눈에 띄었다. 아들이 신나서 인형 뽑기를 하는 동안, 나는 사탕뽑기 기계 앞에서 후줄근한 츄리닝을 입은 채 차곡차곡 성실하게 사탕을 쌓아갔다. 아내는 옆에 앉아 휴대폰을 하면서 '어휴... 진짜 없어 보인다.'란 팩폭을 가하며 중얼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느지막한 나이가 되어서야 뽑기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음을 발견한 나는 묵묵히 사탕을 떨굴 뿐이다. 그리고 거대한 초콜릿 탑이 무너져 내렸다. 

거대한 초콜릿 탑을 무너뜨리는 장관. 탑이 쓰러지면 알바 언니에게 꺼내달라고 수줍게 부탁을 해야 한다. 


나와 아들은 환호하면서 비닐봉지 가득 사탕과 젤리, 쿠키를 담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내가 말했다. 


"저 오락실 알바 언니는 당신이 얼마나 이상해 보일까?"


할 말이 없다. 얼마 전에도 초콜릿 탑을 두 개나 무너뜨려 알바 언니가 그걸 한참 담아준 적이 있었으니 말이다. 중년의 남성이 5백 원짜리 동전을 쌓아놓고 사탕뽑기를 하는 모습은 이미지적으로 확실히 뭔가 서글픈 측면이 있다. 인정해야겠다. 


리조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곳은 밀어서 뽑기 기계가 잔뜩 있었다. 아들이 원하는 상품을 손으로 찍으면 그걸 기계처럼 툭툭 모조리 떨궜다. 신들린 솜씨에 놀란 투숙객들 몇 명이 내 뒤에서 구경을 했다. 하지만 돌아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나 역시 창피함을 아는 나이. 그저 원하는 목표물에 가상의 멈춘 선을 설정하고 정확히 모서리 부분을 봉으로 밀어내는 데 열중했다. 


마침내 원하는 목표물을 모조리 뽑은 다음 아들과 '낄낄'대며 자리를 떴다. 방안에 상품을 놓고 기념사진을 찍은 다음, 나는 배도 꺼트릴 겸 산책을 갔다. 그 뒤에 아들은 조잡해 보이는 오락기계를 켰을 것이다. 8비트 게임기 화면에 불이 들어오고, 곧이어 울리는 단조로운 음악소리. 아들은 푸시 기계 앞에서 쭈그리고 앉아 손으로 대략적인 각도를 재고 열중하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떠올렸을 것이다. 


리조트에서 뽑은 상품들. 맨 아래가 슬픈 음악을 쏟아낸 테트리스 게임기.


이청준의 소설 '눈길'에선 마음의 빚 없이 자수성가했다고 믿는 자식이 등장한다. 그는 노년의 어머니를 짐스럽게 느끼던 차였다. 그런데 어느 눈 오는 날이 떠오른다. 그는 자신을 배웅해준 뒤 어머니가 눈밭을 걸어가는 모습을 곱씹는다. 두 사람의 발자국이 선연한 눈길을 바라보며 어머니는 혼자 걸음을 이끌고 집으로 가셨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 고단하고 외롭지만 자식에 대한 사랑이 오롯이 담긴 뒷모습. 자식이 부모의 사랑과 고마움을 깨닫는 이런 장면은 처연하면서도 한편으론 아름답다.


그런데 눈길이 아니라 아들은, 아내의 걱정처럼 오락실에서 뽑기를 하는 추레한 아버지의 등을 기억하게 될지 모르겠다. 난처하지만 그건 또 그대로 솔직한 모습이려니 생각해 본다. 아들이 아니었다면 내가 뽑기에 천부적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평생 몰랐을 테니 말이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덧붙이자면, 뽑기하는 뒷 모습은 너에 대한 사랑도 있지만 아빠는 이 순간을 오롯이 즐기고 있었단걸 기억해 다오. 아들아. 


주변의 시선이 창피하지만 멈출 수 없던 아버지. 그의 애잔한 등. 







매거진의 이전글 5. 부족한 것, 잃어버린 것은 무엇일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