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뮤즈노트 Oct 19. 2023

어느 가을밤에 든 생각

쇼펜하우어를 읽다가

아리스토텔레스는 세상만물이 모두 어떤 목적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의자는 사람이 앉을 목적, 꽃병은 꽃을 꽂을 목적, 이렇게 따지다 보면 세상이 아무런 목적 없이 '뿅'하고 생겨났다는 게 확실히 이상한 말이긴 하다. 분명 누군가 세상을 만들었을 법하고, 만들었다면 그 이유가 있었겠지 싶다. 


중세시대까지는 신이 세상만물과 인간을 만들었다고 믿었다. 성서에 쓰여 있다. 신은 스스로 즐겁기 위해 세상을 만들었고 찬양받기 위해 인간을 만들었다. 게다가 신은 자신의 모습을 본 따 인간을 만들었다. 인간이 창조성을 갖고 있는 이유는 그렇게 설명된다. 세상을 창조한 신을 닮았으니 창조의 DNA가 인간에게도 새겨진 게 당연한 일. 


현대에 들어선 인간은 자신이 즐겁기 위해 세상을 만들었다. 바로 가상의 세계인 시뮬레이션 게임. 인간도 만들어냈다. 로봇과 AI가 그것이다. 막상 신처럼 스스로 즐겁기 위해 세계도 창조하고, 피조물도 만들면서 인간은 은근히 기대한다. 내가 만든 가상의 세계만큼은 즐겁고 행복으로만 가득하겠지. 세계의 모든 지식을 검토하여 논리적으로 만든 AI 알고리즘은 절대적 선과 진리를 알려주겠지? 과연 그럴까?


먼저 신에 대해 생각해 보자. 


중세시대 사람들은 막연히 신이 선하고 정의로운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신의 선함과 정의로움을 증명하려는 수많은 노력이 뒤따랐다. 라이프니츠는 변신론을 통해 '있을 수 있는 세계 중 최선의 세계'를 가정함으로써 신을 변호한다. 이 세계가 최고로 좋은 상태가 되려면 모든 것이 착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악이 연달아 있을 때, 고난을 이기고 최고의 기쁨을 얻은 운동선수의 희열처럼 최선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맙소사.


그런데 쇼펜하우어의 생각은 달랐다. 적어도 인간만큼은 '의지'라는 알고리즘에 의해 프로그래밍되었고, 세계는 그 '의지'란 프로그램에 의해 구현된 이미지로서의 세계라고 생각했다. 문제는 이 프로그램 자체의 목적이다. 인간에게 탑재된 '의지'프로그램의 목적은 무엇일까? 비극적 이게도 쇼펜하우어는 '고통'이 목적이라고 단언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들으면 깜짝 놀랄 이야기다. 인간과 세계의 목적이 '고통'이라니. 


어쨌거나 인간은 욕망과 권태로움이란 두 축을 오가며 고통받는 건 사실이니 그럴 법도 하다. 게다가 우리가 신이 되어 만든 세상을 보라. GTA 같은 시뮬레이션 게임은 온통 폭력과 범죄행위로 가득하며, 전략게임은 전쟁을, 롤플레잉 게임은 잔혹한 총싸움을 재현한다. 이와 무관한 도시건설 시뮬레이션이나 심즈 같은 게임은 인간세계를 그대로 본뜨려 노력했기에 악과 고통이 디폴트로 깔리게 된다. 


그렇다면 AI는 어떨까? 공상 과학 소설, 예를 들면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서는 고도로 발달한 AI가 마치 신처럼 인간에게 진리의 비밀을 가르쳐주기도 한다. 


'우주의 비밀은 42야!'


42가 대체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인간에게 답을 건넬정도로 친절하다. 그러나 소설이 아니라 현재의 AI가 학습하는 데이터셋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라. 그것은 인간이 만든 문학, 예술, 논문, 역사, 철학은 물론, 악과 증오심, 가짜뉴스와 거짓말 등으로 가득한 허섭쓰레기들이다. AI는 머신러닝을 통해 스스로 인간의 사고체계를 그대로 학습하며 그 와중에 인간에 내재된 악과 고통까지 고스란히 쓸어 담는다. AI가 과연 선할 수 있을까?


인간이 만들어 낸 악은 우리의 피조물인 AI로 그대로 흘러들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면 인간과 악에 받친 세계를 만든 신은?


과연 라이프니츠의 생각처럼 선한 것일까?


어느 가을밤, 노동에 지쳐 간신히 식탁에 앉은 나는, 제로 콜라를 마시며 생각해 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대로도 좋지만 조금만 더 행복하면 어떨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