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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즈노트 Dec 23. 2023

날지 않는 돼지는 그냥 돼지일 뿐이야

중년에 선택해야 할 것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화 <붉은돼지>에 보면 '날지 않는 돼지는 그냥 돼지일 뿐이야'란 대사가 나온다. 영화 속 주인공인 포르코는 전쟁통인 어느 순간 마법에 걸린 듯 돼지의 모습이 되어 살아간다. 사람들이 그를 '돼지'라고 놀릴 뿐 딱히 놀라지 않는 걸 보면, 사람이 돼지의 모습을 하고 있는 건 일종의 은유임을 알 수 있다. 


하늘을 나는 건 둘째치고 그는 왜 중년의 돼지가 됐을까?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어 돼지가 되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단순히 몸매 이야기는 아니다. 좀 찔리긴 하지만. 이십 대와 사십 대에 걸쳐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는데 돌아오는 건 어쩐지 부당한 보상뿐이다. 중년이란 보성과 성공 대신 뻔뻔한 인간들이 승승장구하는 걸 지켜보는 시기에 가깝다. 돼지로 살아가는 포르코에게 공군조종사로 돌아오라는 친구의 권유처럼, 우리도 선택을 해야 한다. 


보잘것없는 돼지로 살 것인가? 뻔뻔한 인간으로 살 것인가?


돼지로 사는 건 고역이다. 하찮고 한심하게 바라보는 따가운 시선을 견뎌내야 한다. 게다가 중년은 언제나 시간에 쪼들린다. 콜라 캔을 한 모금 마시고 쓰레기통에 던져도 좋을 만큼 넘쳐나던 젊은 날의 시간과는 다르다. 시간이 없다. 빨리 결정해야 한단 생각에 조급하다. 그럼에도 포르코는 친구에게 말한다. '파시스트보단 돼지가 나아.'라고. 


결론적으로 포르코는 돼지로 남는다. 하지만 그냥 돼지로 남는 것은 아니다. 그는 비행하는 돼지다. 


'날지 않는 돼지는 그냥 돼지일 뿐이야.'
Un maiale che non vola è solo un maiale


자신의 소명을 인식한 돼지는 더 이상 평범한 돼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돼지의 외양은 주어진 모습이고, 하늘을 나는 건 내가 선택한 삶이다. 양자를 구분해 내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중년에 선택해야 할 건, 따라서 돼지와 인간의 외형이 아니다.


그것은 땅바닥에 코를 박고 살 것인가, 하늘을 내 생각대로 날아다닐 것인가란 선택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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