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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즈노트 Oct 24. 2023

[스즈메의 문단속] 당신이란 우주는 아름답다

대의를 위한 희생 따위 개나 줘버려




모든 이야기의 주된 테마는 희생과 성장이란 단어로 표현된다.



영웅은 무언가를 희생하여 세계를 구한다. 또 다른 차원의 영웅은 여행을 통해 성장한다. 이 두 가지 키워드를 모두 다룰 수 있다면 이야기의 성공확률은 높아진다. 그래서 아이언맨은 마블유니버스의 종착역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세계를 구하는 희생 = 영웅.


이 공식은 은연중에 우리의 사고에 깊게 배어있다. 세계는 아마 그들의 희생 덕에 유지된다고 믿는다.

그러나 신카이 마코토의 관점은 이러한 집단적 사고에서 벗어나 있다.


전작인 <날씨의 아이>가 그렇다.


흔한 영화라면 도쿄를 구하기 위해 누군가 희생하고 끝나겠지만, 주인공 호다카는 히나를 향해 소리친다.


이제 됐어! 너는 더 이상 맑음 소녀가 아니야!

맑은 날을 두 번 다시 보지 못해도 상관없어!

푸른 하늘보다 나는 히나가 좋아!

날씨 따위, 계속 미쳐 있어도 돼!!





전체를 위한 개인의 희생이 숭고하고 고결하다고 믿고 있던 사람들에겐 충격이다.

그러나 개인은 다수무리의 하나가 아니다.


그는 그 자체로 온전하며 아름다운 우주다.


그렇기에 신카이 마코토의 주인공은, '전인류의 구원보다 나의 우주, 내가 사랑하는 우주가 더 중요하다'라고 선언한다.



<스즈메의 문단속>은 대지진 이후 상처받은 사람들이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다.

고질라나 에반게리온의 사도가 그러하듯, 일본 영화에서 표현되는 재난의 신(괴수)은 아무 이유 없이 인간을 공격한다. 이 영화 속 재난의 존재인 미미즈 역시 마찬가지다.


재난인 미미즈가 튀어나오지 않도록 문을 단속하고 다니는 소타는 우연히 스즈메를 만난다. 하지만 재난을 막아내야 할 신인 다이진은 스즈메의 실수로 봉인이 풀린 후 천진난만한 고양이가 되어 세상을 뛰어다닌다. 심지어 인간인 소타에게 재난을 막는 요석의 역할을 맡겨버린다. 신이 인간에게 희생양이 될 것을 요구한 것이다.


순간, 소타는 대대로 재난의 뒷문을 닫는 역할을 해온 가문 계승자임에도 불구하고 결코 운명적 희생을 긍정하지 않는다. 이 모습은 병실에 누운 할아버지가 소타가 요석으로 변한 것에 대해 당연한 귀결이었다는 반응과 대비된다. 소타는 기성세대의 희생을 결코 긍정하지 않는다. 스즈메를 만난 이제 와서 이렇게 되긴 싫다고 저항한다. 


스즈메 역시 마찬가지다. 희생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많은 작품에선 죽음 앞에 의연한 자를 최고의 영웅으로 묘사한다. 하지만 스즈메는 말한다.


살고 싶어, 죽는 건 두려워



소타도 요석을 꽂기 전 신에게 고백하듯 말한다. '우리는 하루라도 더 살고 싶다.'라고.


신카이 마코토의 세계에서 죽음은 의연하게 맞이할 대상이 아니다. 대의를 위한 희생은 고결한 것이 아니다. 도리어 죽음은 두려운 것이고, 우리는 하루라도 더 살고 싶다고 솔직하게 말해야 한다고 말한다.


수천 년을 이어온 대의를 위한 희생, 초연한 죽음 따위의 허세와 기만을 벗어던지자고 말한다. 그때 다이진이 다시 요석이 된 것처럼 신은 우리를 돌아본다. 상처는 그렇게 치유된다.


진정한 사랑과 희생 역시 그렇게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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