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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즈노트 Feb 28. 2024

인생에 필요한 쇼콜라?

영화 웡카

2차 대전을 그린 HBO의 드라마 시리즈 <밴드오브브라더스> 6편에 초콜릿 이야기가 나옵니다. 대대 의무병인 '유진'은 추위로 꽁꽁 얼어붙은 룩셈부르크 바스통 전선을 뛰어다닙니다. 그러나 무의미한 대치 속에 쓰러져가는 병사들을 보며 환멸을 느낍니다. 다친 병사를 후송하고 너덜너덜한 마음으로 멍하니 서 있을 때 아름다운 목소리가 들립니다.

쇼콜라?


야전병원 간호사 '르네'의 손에 초콜릿이 들려있습니다. 그녀는 소중한 듯 초콜릿을 쪼개 '유진'에게 쥐어주고 두 사람은 초콜릿을 먹습니다. '유진'의 굳어버린 마음은 초콜릿과 함께 서서히 녹아내립니다. 쇼콜라 모먼트. 끔직한 야전병원을 가는 발걸음은 예전만큼 무겁지 않습니다. 병원을 갈때면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불어로 '쇼콜라?'라고 묻는 르네가 있기 때문이지요.  

유진과 곁에 앉은 르네의 손에 들린 초콜릿 조각

초콜릿은 달콤 쌉싸름합니다. 단 맛을 강조한 초콜릿도 있고 카카오가 듬뿍 들어간 초콜릿도 있습니다. 그래서 마냥 달콤하기만 한 사탕과 다릅니다. 사탕은 초콜릿에 비하면 비현실적인 맛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과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서 인생을 초콜릿 상자에 비유한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어떤 날은 쓴 맛을, 어떤 날은 달콤한 맛을 건네니까요.


로알드 달의 <찰리와 초콜릿 공장>이 그리는 빈부격차와 시니컬한 인물 묘사도 초콜릿의 미묘한 맛 때문에 설득력을 얻습니다. 화려한 단맛 뒤편엔 언제나 쓴 맛나는 삶이 숨어있습니다. 영화 <웡카>에서도 이러한 초콜릿의 쓴 맛은 강조됩니다. 계약서를 잘못 써서 강제노역에 시달리는 지하 세탁실 사람들은 휘황찬란한 달콤 백화점의 어두운 그림자입니다. 신부, 초콜릿 카르텔 상인, 경찰서장은, 세상이 종교, 기업, 공권력의 삼각 카르텔로 유지된다는, 100% 카카오 함량의 감춰진 현실의 맛입니다.



세상살이는 씁니다. 무의미한 소모전에 놓인 의무병 '유진'처럼 너덜너덜한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현실은 힘이 세고 초콜릿과 꿈은 순간입니다. '윌리 웡카'가 마술사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하늘을 나는 초콜릿조차 20분 정도의 유효기간이 지나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는 이유도 초콜릿의 달콤함만으로는 세상의 어둠을 몰아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잠깐이라면 가능합니다. 요즘 우리가 불행한 이유는, 잠깐의 행복이란 가치보다 지속가능성 따위의 경영학 용어에 휘둘려 살아가 것 때문인지 모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쇼콜라?'라는 한 마디, 한 조각의 초콜릿입니다. 잠깐의 달콤함을 건네고 스르르 녹아내려 사라진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지만 그 쇼콜라 모먼트로 현실을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찰리브라운의 여자친구(가 되고 싶은) 깨소금 패티의 말처럼, 어쩌면 인생은 빛나는 몇몇 순간들이 엮어 만들어진 꾸러미일지도 모르니까요. 행복한 인생은 순간 순간이 연결되어 빛나는 팔찌입니다.


인생은 팔찌 같아. 잠깐이지만 빛나는 순간들이 작은 보석처럼 둘러져 있으니까.


아름다운 색감과 화려한 초콜릿, 신나는 노래로 가득한 <웡카>는 혀에서 스르르 녹아내리는 부드러운 초콜릿 같은 영화입니다. 세상은 엉망진창이지만 초콜릿을 똑 부러뜨려 '쇼콜라?'라고 외치며 입에 넣는 순간의 행복감을 그립니다. 잊고 지내던 순간의 달콤함, 영화와 이야기의 마법을 재현합니다.


그래서 2회 차 관람 때에는 초콜릿을 가져가 가족들과 사이좋게 나눠 먹으며 영화를 봤습니다.


분명한 '쇼콜라' 모먼트였습니다.


엄마가 만들어준 마지막 초콜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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