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중고는 물론 대학교, 졸업 후 회사에서도 우리는 다양한 글을 써야 합니다. 보고서, 사업기획서, 학교 리포트, 영화 대본, 신문 기사 등 모든 글에는 아이디어와 주제가 담겨 있습니다. 심지어 청소기 설명문조차 핵심 기능은 무엇인지를 찾아서,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아이디어를 넣어 쓰게 됩니다.
우리는 글을 쓸 때 '좋은 글'을 쓰려고 노력합니다. 특히 대학 논술이나 회사 입사를 위한 논술작문 시험에 합격하려면 경쟁자보다 뛰어난 글을 써야 합니다.
그런데 과연 좋은 글, 혹은 좋은 논술이란 무엇일까요?
표준어와 문법을 정확하게 구사하고, 필자의 주장과 의견이 서론, 본론, 결론에 따라 논리적으로 잘 구성된 글일까요? 아닙니다! 그것은 글쓰기의 최소한의 요건에 불과합니다. 경험상 이런 글쓰기로 시험을 통과하거나 높은 점수를 받은 사람은 못 봤습니다. 좋은 글을 쓰는 비법은 따로 있습니다.
소크라테스의 문답법에 그 비법이 담겨 있습니다.
[문제 : 카페에서 환경보호를 위해 종이컵을 금지하고 다회용 컵을 사용하자는 주장에 대한 의견을 쓰시오]
이런 주제를 받았습니다. 어떻게 쓸 건지 생각해 봅시다.
'한번 쓰고 버려서 환경을 오염시키는 종이컵 대신, 개인용 텀블러나 유리컵을 사용하는 건 당연하지!'란 생각이 들었다면 논술도 그렇게 쓰게 될 겁니다. 유진이가 직접 쓴 글을 읽어 봅시다.
서론 [주장(문제제기)]
카페에서 무심코 사용하는 종이컵 같은 일회용품이 환경을 오염시킨다.
본론 [근거]
종이컵은 일회용이라 많은 양의 쓰레기를 발생시킨다.
내부엔 비닐코팅이 되어있어 종이로 재활용도 어렵다.
폐기해도 썩지도 않아 장기적인 오염을 발생시킨다.
일회용품을 일상적으로 사용하게 되면 자원낭비도 그에 따라 습관화될 수 있다.
결론 [깨달음]
다회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개인용 텀블러나 유리컵 사용을 실천하여 환경을 보호하자
서론 본론 결론 형식에 맞춰 핵심문장이 잘 정리된 글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저 논술문은 좋은 글일까요? 소크라테스에 따르면 이런 글은 좋은 논술이 아닙니다.
소크라테스는 당연한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선 안됨을 알려줬습니다. 오히려 '아무것도 모른다는 태도(무지의 지)'로 '질문을 끈질기게 해 나가야 한다'(문답법)고 말했습니다.
주제에 대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당연한 생각은, '좋은 글쓰기'의 적입니다. 따라서 좋은 논술은 아래 그림처럼 "당연한 건 없으니 끈질기게 질문하여' 밝혀내 쓴 글입니다.
1. 당연하게 여겨지는 생각이 무엇인지 찾아본다.
2. 당연한 생각에 대해 '정말 그럴까?'라고 청개구리처럼 반대로 질문한다.
3. 서로 다른 두 관점의 장점과 단점을 정리해 본다.
4. 당연함에 맞서는 신선한 주제를 중심으로 글을 쓴다.
5. 결론에선 주어진 주제보다 확장되고 깊이 있는 해결책을 제시한다.
위의 그림에 따라 처음 나온 논술문제를 다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1. '카페에서 종이컵을 사용하지 말고 유리컵을 사용하자'는 주장에서 당연한 생각을 찾아봅시다.
종이컵은 1) 일회용이고 2) 재활용이 어려우며 3) 썩지도 않는 데다 4) 나쁜 습관을 만들어
환경을 오염시킨다. 반면, 다회용 컵은 환경보호에 좋다.
2. 청개구리처럼 반대로 질문해 봅시다.
종이컵의 장점이나 환경보호에 도리어 유리한 점은?
다회용 컵의 단점이나 환경을 파괴하는 요소는?
3. 종이컵과 다회용 컵 사용의 장단점 혹은 찬성과 반대 입장을 정리해 봅시다.
종이컵은 1) 일회용이라 위생적이고, 2) 설거지가 필요 없어 편리하며 3) 쉽게 태워 없앨 수 있다.
반면, 다회용 컵은 1) 설거지가 필요하고 2) 세제 섞인 오염수가 발생하게 되며 3) 이를 정화하기 위해서는 많은 물과 전기 등 자원이 추가로 낭비될 뿐 아니라 4) 유행처럼 텀블러를 사서 버릴 때 더 큰 오염을 초래한다.
4. 이제 신선하고 새로운 주제는 무엇이 될지 씁시다.
종이컵은 나쁘고 다회용 컵은 무조건 좋다는 고정관념이 오히려 환경오염을 부추길 수 있다.
5. 종이컵과 다회용 컵 사용 찬반을 뛰어넘는 더 나은 해결책을 생각해 봅시다.
종이컵 사용 금지는 혼란스러운 쓰레기 분리수거 기준, 사용이 불편한 종이 빨대 논란과 닮아있다.
고정관념과 막연한 발상에 쫓겨 내놓는 방안이야말로 혼란을 주고 환경보호에서 멀어지게 만든다.
환경보호는 현실을 고려한 과학적인 방안이 뒷받침될 때 진정한 효과를 발휘한다.
일반적으로 종이컵은 나쁘고, 다회용 컵은 환경보호에 낫다고 여겨집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며 질문을 던지다 보면 세제를 잔뜩 써서 오염된 물을 흘려보내거나 텀블러를 유행처럼 쓰다가 버리는 게 더 환경파괴적인 것이란 새로운 질문에 도달하게 됩니다.
주제 역시 종이컵 금지의 찬반 논란이란 좁은 선택지에서, 진정한 환경보호를 위해선 현실적이며 과학적인 방법이 먼저라는 넓고 깊은 주제로 확장되었습니다.
소크라테스의 문답법을 활용한 논술 쓰기의 핵심은 당연함과 맞서는 다른 생각입니다.
좋은 논술은 남과 다른 논술입니다.
100명의 사람들에게 이 주제로 논술을 쓰게 했다면, 경험상 80명은 종이컵 사용에 찬성하는 유진이와 같은 글을 쓰고, 20명의 사람은 반대하는 글을 썼을 겁니다. 글을 평가하는 심사위원이라면 당연한 입장을 정성스럽게 쓴 80명의 글은 결코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당연한 논리는 읽기 지루한 글이기 때문입니다.
남은 20명 중에서도 단순히 종이컵의 장점이나 다회용 컵의 단점만을 부각한 글보다는 종이컵 금지 논란 이면에 숨어있는 환경보호의 고정관념을 타파하자는 새로운 관점을 보여준 글에 높은 점수를 줄 것입니다.
이처럼 소크라테스의 문답법은 단순히 질문을 던져 사람을 괴롭히는 방법이 아닙니다. 소크라테스는 진리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당연해 보이는 명제가 사실은 허술한 갑옷을 두르고 있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우리가 찾은 진리는 늘 잠정적입니다. 삼십년 전만해도 공룡은 파충류의 조상이라고 배웠지만, 지금은 공룡이 진화해서 새가 되었다고 배웁니다. 우리가 찾았다고 생각한 진리는 새로운 사실이 나오면 언제든 바뀔 수 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당연해보이는 현재의 정답보다, 불변의 진리로 인도하는 철학의 기본적인 방법을 제시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지금도 그를 철학의 시작으로 추앙하는 이유입니다.
좋은 논술은 남과 다른 질문을 하는 것입니다. 질문은 당연함이란 갑옷을 뚫는 날 선 창이기 때문입니다.
좋은 논술이란 질문이란 창끝으로 당연함의 갑옷을 꿰뚫는 남과 다른 글입니다.
질문) 종이컵 사용금지가 갖는 여러 단점에도 종이컵 금지를 지속해야 한다는 주제로 글을 쓰는 것도 소크라테스적인 새로운 관점입니다. 어떻게 쓰면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