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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즈노트 Sep 11. 2024

[플라톤] 동굴의 비유, 이데아

철학의 핵심 문제

유진은 금, 토요일에만 게임을 하기로 부모님과 약속했다. 오늘은 친구들이 학원 보충을 가는 바람에 온라인 멀티 플레이어 게임 솔로(1인 대항전)로 접속했다. 허무한 패배 끝에, 거의 막판 게임이 되어서야 TOP3에 들었다.


'이제 둘만 해치우면 우승이다! 치킨 좀 뜯어보자!'


유진은 초집중 모드로 주변을 살핀다. 그런데 바위 뒤에 숨은 상대 두 명의 움직임이 이상하다. 서로 쏠 수 있는 각도가 나오는 데 자신을 향해서만 총구를 겨누고 있다.


'뭐야! 솔로에서 양심 없이 티밍(같은 편 먹기)을 한다고? 두고 봐라!' 유진은 보유한 아이템을 점검한다. 수류탄이 한 개뿐이다. 다행인 점은 상대는 수류탄이 없는 듯 잠잠했단 점이다. 거리를 좁힌 뒤 정확한 투척이 중요한 상황. 남은 연막탄을 모조리 던졌다.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오를 때, 급하게 뛰어나가 적이 바위 뒤로 수류탄을 날렸다.


'쾅!'


'킬이 떴다! 이제 남은 상대는 하나!' 유진은 상대가 숨은 바위 뒤를 겨냥하고 뛰었다.  


'쾅!'


'엇?'


수류탄이었다. 편을 먹은 그들은 한 명을 미끼로 던지고, 마지막 수류탄 던질 기회를 엿봤던 것이다. 우승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 적의 비겁한 술수에 허무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억울했다.


"짜증나! 여긴 솔로라고!"


유진이 홧김에 마우스를 던지며 소리를 질렀다. 


"그렇게 짜증 내면서 할 거면 게임하지 마! 나와 밥 먹어!"


문밖에서 엄마의 화난 목소리가 들렸다. '네, 알았어요!'라고 퉁명스럽게 대답하곤 게임 화면을 닫았다. 습관처럼 휴대폰을 쥐고 중얼댄다.  


“게임 속에 들어가서 직접 싸우면 절대 저런 작전은 못쓸 걸? 비겁하게!


순간, 휴대폰에 매달린 문어에서 빛이 나더니 컴퓨터 바탕화면에 처음 보는 게임 아이콘이 생겨 났다. ‘어라? 이런 게임은 깔아 둔 적이 없는데?’ 유진이 방에서 나오지 않자 이번엔 아빠가 밥 먹으라고 채근했다.


“알았어요. 1분만요!”


유진은 서둘러 아이콘을 클릭한다. 화면에 붉은색 경고 표시가 떠오른다.



‘풋!’하는 웃음이 났다. ‘겁을 주는 시작이라니 식상하면서도 아주 신선하네! 뭔지 맛만 볼까?'


망설임 없이 ‘예’ 버튼을 클릭한다. '퉁!'소리와 함게 방 안의 전등이 모조리 꺼진다. 눈앞의 손도 보이지 않을 만큼 짙은 어둠의 천막이 방을 뒤덮는다. 겁이 덜컥 났다. 의자에서 일어나 거실로 도망치려는데 발이 공중에 떠서 버둥거린다. '어? 어!' 하며 발을 굴렀지만 목구멍조차 끈적한 우무질에 싸인듯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엄마 아빠는 게임 시간이 끝났는데 방에서 나오지 않는 유진에게 화가 났다. 방문을 벌컥 열었다. 하지만 컴퓨터 화면만 방안을 밝게 비출 뿐이었다.




어둠 속에 도트 같은 흰 점이 생기는가 싶더니 강한 빛이 몸을 감싼다. 놀란 유진은 눈을 비비며 주위를 둘러본다. 집이 아닌 낯선 공간이다. 예전에 했던 게임과 비슷한 세상이었다. 네모난 물방울로 된 분수가 마을 중앙에서 쏟아지고, 블록 모양의 사람들이 북적이는 시장 한복판을 오간다.

 

그 모습에 그대로 얼어붙었다. 예전엔 귀여워 보였던 게임 캐릭터의 검고 커다란 눈이 으스스하게 느껴졌다. 그때! 유진의 머리에 커다란 두건이 씌워진다.


“쉿! 조용! 이걸 쓰고 있어! 마을 주민과 눈이 마주쳐선 안 돼!”


유진이 뒤돌아보자 두건으로 얼굴을 가린 소녀가 보였다. 눈만 겨우 드러났지만 예쁘게 반짝이는, 인간의 눈동자가 분명했다.


‘다행이다. 사람도 있구나!’


소녀는 유진을 일으켜 어깨동무를 하듯 끌고는 급히 골목길에 들어섰다. 거미줄처럼 구불구불한 길을 한참 동안 헤맨 끝에 동굴 모양의 오두막집이 나타났다. 소녀는 주변을 신중히 살핀 다음 커다란 열쇠로 문을 열고 집 안으로 유진을 밀어 넣었다. 하마터면 카펫에 걸려 넘어질 뻔했지만 가까스로 중심을 잡았다. 눈앞엔 거대한 어깨를 가진 뒷모습이 버티고 서 있었다. 거리를 향해 난 작은 창을 바라보며 책상에 앉아 무언가를 열심히 쓰고 있는 듯했다.


“플라톤 선생님, 사람이에요.”


모래 먼지가 앉은 두건을 털며 소녀가 말한다. 그녀는 유진 또래인 십대로 보였는데 햇빛에 탄 짙은 피부색이 건강해 보였고, 갸름한 얼굴엔 주근깨가 있었다. 유진은 뭐가 뭔지 종잡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 금발머리의 아이만큼은 진짜 사람이란 사실에 안도감을 느꼈다.


거대한 어깨가 의자를 뒤로 빼며 돌아섰다. 그림자가 유진 얼굴에 서서히 드리워진다. 플라톤은 유진의 손에 쥔 휴대폰 문어 고리를 만져보더니 작게 한숨을 쉬고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스승님도 참. 이런 녀석이 영웅이 될 거라니…….”


그리곤 커다란 손으로 유진의 머리카락을 만지고, 볼을 양쪽으로 쭉쭉 늘려댔다. 아픈 걸 보니 꿈은 아니구나라고 유진은 생각했다.


“그만! 만지지 마세요! 제 몸은 제 거예요!”


갑자기 초등학교 때 배운 '내 몸은 내 거'란 멘트가 생각난 유진이 뿌리치며 말했다.

 

“껄껄껄! 미안하다. 맞는 말을 하는 걸 보니 아주 멍청하진 않은 것 같군.”


거대한 어깨가 웃어대자 그의 얼굴이 드러났다. 수염이 잔뜩 나 있고 레슬링 선수처럼 귀가 만두 모양으로 접혀 있었다. 하지만 웃는 얼굴은 천진난만해 보였다. 톡방에서 만난 소크라테스와의 대화가 떠올랐다. '집을 떠나 낯선 세상을 여행한다고 했지? 그리고 집에 돌아오려면... 뭐였더라? 아! 질문을 자꾸 하랬던가 뭐였는데!'


유진은 용기를 짜내서 일단 질문을 시작했다.

유진 : 제 이름은 유진이예요. 선생님 성함은?
플라톤 : 플라톤이라고 한다. 어깨가 넓고 평평해서 붙인 이름이지. 실제로 레슬링 선수였고 말이야.
유진 : 친구들이 다니는 학원 이름에서 본 적 있어요. 무슨무슨 아카데미인가... 그런 거요.
플라톤 : 맞아. 아카데미아란 대학도 만들었지. 그리고 나의 스승님은 소크라테스란다.
유진 : 톡방에서 만난 이상한 사람이 스승님이라고요?
플라톤 : 꽤 이상한 분이긴 하지. 어쨌거나 스승님이 가짜 세계와 진짜 세계를 잇는 문어고리를 너에게 맡긴 이유가 있을 텐데...
유진 : 게임을 하다가 갑자기 이곳에 떨어졌어요. 이곳은 게임... 아니, 가짜였나요?
플라톤 : 게임? 그게 뭐냐? 아무튼 이곳은 가짜야. 사람들은 가짜 세계에 산다는 걸 모르지만 말이다.
유진 : 어떻게 그럴 수 있죠? 누가 봐도 이상하잖아요. 분수 물방울도 네모, 의자나 집, 사람 얼굴까지 네모난데, 여기를 진짜 세상이라고 생각한다니!
플라톤 : 글쎄... 이야기로 비유를 들어 설명하면 이해가 될 게다.


“만약에 어떤 사람이 캄캄한 동굴에서 태어났다고 해보자. 그 사람은 동굴 벽을 향해 앉아 있고 고개를 돌릴 수 없어. 동굴 벽에 비친 그림자만 볼 수 있지. 당연히 그림자로 된 동굴이 진짜 세상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을 거야. 그런데 어느 날, 동굴에 갇힌 사람 하나가 동굴 바깥으로 나가게 됐어. 너처럼 진짜 세계가 따로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됐지."


유진은 침을 꿀꺽 삼키며 플라톤의 말에 집중했다.


"그림자 세계는 가짜다, 진짜는 동굴 바깥에 있다고 동굴 안으로 돌아가서 사람들에게 말하기 시작해. 그런데 어떻게 됐을까?"


"글쎄. 조금 당황스러우려나?"

 

"후후. 당황 정도가 아니지. 동굴 사람들은 막 비웃다가 화를 내기 시작해. 동굴 세상이 어떻게 가짜일 수 있느냐고 말이야. 이어서 동굴이 가짜라는 둥 헛소문을 퍼트려 혼란을 일으키면 혼쭐을 내겠다고 협박하지."


"그래서 저 소녀가 이곳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저를 데리고 온 것이군요."

 

"그렇지. 나는 진짜 세계를 이데아라고 부른단다. 이 세계는 당연히 이데아의 그림자, 이데아를 흉내 낸 가짜야. 진짜를 본떠서 만들다 보니 완벽하지 않은 것투성이다. 분수의 물방울, 의자도, 집 모양도 허술한 이유지."


“잠깐, 그런데 선생님은 여기 살면서도 세상이 가짜라는 걸 어떻게 알게 된 거죠? 논리적으로 납득이 안 돼요.”


플라톤은 기특하다는 듯이 웃으며 대답했다.

 

“사람들은 두 가지로 나눠서 생각하는 데 익숙해. 선과 악, 육체와 영혼, 가짜와 진짜 같은 것 말이다. 이 세계 역시 진짜 아니면 가짜겠지. 그런데 둘 중 어느 것이 참인지를 알아보려고 귀나 눈으로만 답을 찾는다면 어떨까? 매번 잘못 봤다, 잘못 들었다고 하는 그런 감각으로 정답을 찾을 수 있겠니?"


"하긴 그래요. 전에 양말냄새인 줄 알고 발을 들고 킁킁거렸는데, 알고 보니 엄마가 청국장을 끓이고 계셨던 적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눈, 귀, 코, 촉감 같은 것 말고 뭘로 진짜를 찾죠? 초능력?"


"진리를 찾을 때는 논리적인 생각의 힘, 이성이란 도구를 사용해야 한단다. 나 같은 철학자는 감각이 아닌, 이성의 힘을 통해 세계 너머의 진리를 알아낼 수 있었던 것이지.”


유진은 뭔가 떠오르는 듯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되물었어요.

 

“엄마가 끓여준 청국장 얘기하다가 떠올랐어요. 플라톤 선생님! 어떻게 하면 집에 돌아갈 수 있는 거죠? 진짜 우리 집이요. 제가 없어진 줄 알면 난리가 날 텐데.. 부모님이 걱정하실 거라고요.”


그때 창문 밖에서 큰 소란이 일어났다.



[개념 설명]


플라톤의 가르침
: 진리를 알려면 이성이란 도구를 사용하고, 진리를 알리려면 비유로 말하자

학습 키워드
: 동굴의 비유 / 감각과 이성 / 철학의 핵심 문제


[도구로서의 이성과 철학의 핵심 문제]


우리는 소크라테스에게서 철학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는 점을 배웠습니다. 게임 속 낯선 세계에 떨어진 사람처럼 말입니다. 그 사람은 일단 눈과, 귀, 코를 킁킁대며 세상을 탐색하려 할 겁니다. 그런데 감각은, 세상의 정체를 밝혀낼 수 있는 믿을만한 도구일 까요?


북극해에서 빙산을 관찰할 때를 떠올려 봅시다. 바다에 떠 있는 얼음은 조그맣게 보이지만 실제론 거대한 얼음 덩어리가 수면 아래 숨어있을 수 있습니다. 감각만을 믿고 결론을 내렸다간 거대한 빙하에 부딪히고 말겠죠? 따라서 감각만으로 세상을 판단하기엔 부족해 보입니다. 그래서 플라톤은 이성이란 도구를 활용하기로 합니다.



플라톤(기원전 약 428년-기원전 348/347년)은 소크라테스의 제자로, 고대 그리스 아테네 사람입니다. '서양철학은 플라톤에 대한 각주(설명)'라고 할 만큼 지금까지도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철학자입니다. 그는 1) 두 가지 세계가 존재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감각으로 파악한 우리 세계는 가짜이고, 진짜 세계는 따로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동굴 밖 진짜 세계를 2) 이데아라고 불렀습니다. 눈으로 볼 수 없는 이데아의 세계를 포착하려면 감각을 뛰어넘는 새로운 도구가 필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논리적인 생각의 힘, 이성입니다. 이성이란 철학 탐구의 도구를 발견한 것은 플라톤의 첫번째 업적입니다.  

그는 이성이란 도구를 이용해 앞서 말한 것처럼, '이 세계는 진짜인가?'란 도발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 세계가 가짜라면, 인간은 정신과 육체로 돼있다든지, 물질은 핵과 전자로 구성되었다든지, 행복은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등 그간 찾아낸 답은 모두 힘을 잃게 됩니다. 그것은 가짜 세계에서 찾아낸 답이기 때문입니다. 


게임이나 가상세계 개념도 없던 시대에 '이 세계는 진짜인가, 가짜인가?'라는 질문으로, 철학이 나아갈 진리 탐구의 핵심 문제를 찾아낸 것입니다. 그것이 플라톤의 두번째 업적입니다. 언뜻 이상해 보이는 이 질문은, 플라톤 이후 철학의 사명이 됨과 동시에, 우주와 양자역학을 연구하는 현대 과학계에서도 최근 진지하게 검토하는 질문이란 점에서 더욱 놀랍습니다.    


플라톤의 세번째 업적은 자신이 찾아낸 깨달음을 알리기 위해 수많은 책과 논술을 남겼단 점입니다. 특히 사람들이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주장을 할 땐, 이야기로 쉽게 3) 비유를 들어 설명하거나 스토리텔링 비법을 적극적으로 사용했습니다. 이천 년 전에 쓴 <국가론>을 비롯한 많은 글들은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따라서 플라톤의 업적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진리를 알려면 이성으로 보고, 진리를 알리려면 비유로 말하자


다음 장에선 플라톤이 사용한 글쓰기 비법을 이용한 논술 쓰기를 시도해 보겠습니다.

  

1) 두 가지 세계(이원론) : 가짜와 진짜, 선과 악, 육체와 영혼처럼 세계를 두 가지 원리로 나누어 바라보는 태도. 플라톤 이후, 철학 역시 두 개의 흐름으로 갈라진다. 여전히 감각 경험을 중시해야 한다는 경험론과 플라톤처럼 이성을 중시한 합리론이 그것이다. 이 두 관점은 세상을 탐구하는 대표적인 두 가지 입장이다.
2) 이데아 : 참된 진리의 세계, 변하지 않는 진짜 세계를 뜻함. 후에 그리스도교는 이데아가 하나님이 계신 참된 세계인 천국과 닮았다는 데 착안, 플라톤의 철학을 중세 신학에 적극적으로 수용하기도 하였다.   
3) 비유 : 어떤 현상이나 사물을 비슷한 것에 빗대어 표현함. 비유는 두 대상 사이에 공통점이 있어야 하는데, 동굴 속 그림자와 가짜 세계는 모두 '가짜'라는 공통점이 있으니 적절한 비유라고 할 수 있다. 비유를 사용하면 어려운 개념과 주장도 쉽게 이해되는 장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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