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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즈노트 Sep 08. 2024

[소크라테스] 문답법

철학과 논술의 기본 생각법

유진은 운동장을 가로지르다 반짝이는 물건을 발견했다. 귀여운 문어 모양의 휴대폰 고리처럼 보였다.

흙먼지를 불고 손가락으로 닦자 투명한 문어 피부가 드러났다. 살아있는 듯 오돌토돌한 질감이 느껴져 살짝 징그러운 느낌도 있었다.


'주운 거니까 분실함에 넣을까?'


그때 교문 앞에 학원 차량이 기다리고 있는 게 보인다.


'그래, 내일 등교할 때 넣자!'



휴대폰에 문어 고리를 끼우곤 학원차를 향해 뛰어갔다. 학원에 가면 친구들을 만날 수 있어 좋았지만 수업은 재미가 없다. 누가 창을 열어놓았는지 에어컨 실외기 바람과 섞인 후텁지근한 바람이 창가에서 불어왔다.


‘지루한 이 여름은 언제쯤 끝이 날까.’


멍하니 머리를 괴고 있는데 휴대폰에서 톡 알림음이 들린다. 학원 선생님 표정이 무섭게 변한다.


"누구니! 휴대폰 반납함에 안 넣은 사람?"


평소 휴대폰을 강제로 수거하는 학원 정책이 마음에 안 들었다. 잘 꺼놓으면 그만이라 생각하고 수업 전에 분명히 꺼놓았다. 주변 수강생들의 레이저 눈빛을 받으며 휴대폰을 가방에서 꺼내는데 문어고리가 반짝 빛났다. 톡은 딸꾹질하듯 ‘까똑까똑’ 하는 소리를 연신 울려댔다. 당황한 유진이 휴대폰을 끄려 허둥대는 사이, 수업은 끝나 버렸다.


집에 와서 씻는 둥 마는 둥, 털썩 침대에 눕고는 습관처럼 휴대폰을 꺼내 든다. 문어고리를 휴대폰에서 떼어내 휴지통에 버리려 했다. 그때 투명한 살갗에 푸른빛이 맴도는가 싶더니 환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문득 휴대폰 화면이 번쩍하더니 자동으로 톡방이 열렸다.


‘뭐! 뭐지?’


# 소크라테스님이 문답법의 방에 유진님을 초대하였습니다.

소크라테스 : 안녕
유진 : ...?
소크라테스 : 프사 보면 알잖니? 소크라테스. 그리스에서 가장 지혜로운 철학자.                
유진 : 소크라...테스? 너 자신을 알라?
소크라테스 : 대충 맞아.
유진 : 내 번호 어떻게 알았음? 신고하고 나감.  
소크라테스 : 문어고리 갖고 있지?
유진 : 아! 이거! 니 거?
소크라테스 : 문어고리엔 신비한 힘이 있지. 일단 잘 간직하고 있으렴.
유진 : 뭔데.
소크라테스 : 곧 놀랍고 재밌는 일들이 일어나게 될 거야.  
유진 : 놀랍고 재밌다고? 요즘은 게임 광고를 낚시처럼 하나? ㅋ
소크라테스 : 노잼(재미없음)

유진은 자신을 강제로 초대한 상대가 불쾌하기도 했지만 호기심도 생겼다. 무엇보다 소크라테스가 톡을 할 때마다 문어의 피부를 훑으며 지나가는 무지개 빛이 신기했다.

유진 : 근데 이 방은 뭐임? 문답법?
소크라테스 : 문답법은 질문하고 답한다는 뜻이지. 난 아무것도 모른다는 걸 알고 질문을 계속했거든.
유진 : ㅋㅋ 가장 지혜롭다면서 아무것도 모른다고?
소크라테스 : 그러게 말이다. 그런데 똑똑하단 사람도 질문에 제대로 답하는 사람이 없었지
유진 : 아주 어려운 질문을 했음?
소크라테스 : 그렇지도 않아. 용기나 정의처럼 누구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런 것들인 걸?    
유진 : 문답법으로 답을 찾았음?
소크라테스 : 답이라기 보단 문답법을 통해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됐지.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만 안다!
유진 : 제일 지혜로운 사람이 알아낸 게 ‘내가 모른다는 걸 안다’라니 ;;
소크라테스 : 우스운 이야기 같지만 그게 '세최생'인 문답법의 핵심이란다.
유진 : 세최생?
소크라테스 : 세계 최강 생각법. 요즘은 말 줄임이 유행인 것 같길래.
유진 : ;;;
소크라테스 : 첫째, 나는 내가 모른다는 걸 안다. 둘째, 그러니 당연한 것도 다시 생각한다. 셋째, 질문과 대답을 반복하며 알기 위해 노력한다. 이게 문답법의 핵심이지.
유진 : 세최생치곤 별게 없어 보임
소크라테스 : 그럴까? 이게 바로 '철학'의 기본적 생각법인데도?

소크라테스는 철학이란 지혜를 사랑한다는 뜻이고, 철학자는 지혜롭게 생각하려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덧붙였다. 문답법은 철학의 기본 생각법이라고 말했다.


유진은 다시 따분한 느낌이 들었다. 좋은 말 같지만 딱히 쓸모는 없을 것 같다고 말하곤 톡방을 나가려 한다.

그때 갑자기 섬뜩한 문장이 화면을 덮을 정도로 크게 나타났다 사라졌다.

“너는 곧 집을 떠나 낯선 세상을 여행하게 될 것이다.
집으로 오려면 반드시 이 가르침을 기억해야 하리라!”


휴대폰이 툭하고 꺼진다. 문어고리도 반응이 없다. 전원 버튼을 다시 눌러 톡방의 흔적을 찾아봤지만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유진은 문득 으스스함을 느낀다. 수수께끼 같은 마지막 말이 특히 마음에 걸린다.


'내가 모른다는 걸 알고, 당연한 것도 의심하며 질문과 대답을 반복해야 된다고?'


찜찜한 마음에 혹시 모르니 소크라테스가 남긴 말을 기억해 둬야겠다고 생각했다. 충전기에 휴대폰을 꽂고 돌아선다. 유진의 등 뒤에서 문어 고리가 붉은빛으로 서늘히 빛나기 시작했다.




 [개념설명]


 [철학의 개념과 철학자의 생각법]


눈을 떴더니 기억은 깡그리 잊은 채로 낯선 세상을 처음 보게 되었다고 상상해 봅시다. ‘여긴 어디지?’, ‘나는 누구지?’ 같은 질문이 자연스레 떠오를 겁니다. 철학은 이처럼 세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데서 출발하여 진리를 찾는 학문입니다.


철학자들에겐 당연한 게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것을 의심합니다. 그래서 철학자의 생각을 공부할 때 '어렵다.'라고 느끼게 됩니다. 그런데 굳이 왜 어려운 철학과 그들의 생각법을 알아야 할까요?


사과가 땅에 떨어지는 걸 당연하게 느끼는 사람들은 더 이상 질문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뉴턴은 당연히 넘기지 않고 '왜?'란 질문을 던졌고, 중력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학교에서 배우는 것들은  ‘우주는 빅뱅에서 시작됐고, 인간은 단세포 생물이 진화해서 만들어졌으며, 물은 1 기압 100도씨에서 끓는다.’와 같은 당연한 답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지만 해당 분야의 과학자에게 물어본다면 놀랍게도 정답은 아직 모른다고 답할 것입니다.


철학에선 정답을 ‘진리’라고 표현합니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우리는 아직, 우주가 무엇인지, 의식이 무엇인지, 세상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여기가 어디고, 우리가 누군지를' 밝혀줄 핵심적 ‘진리’를 아직 찾지 못한 것입니다. 여전히 철학의 기본 생각법인 문답법을 활용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소크라테스(기원전 470년~기원전 399년)는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철학자입니다. 1) 철학을 구분할 때 소크라테스 전후로 나눌 정도로 가장 유명한 철학자입니다.


그가 살던 시대는 전쟁을 거치며 도덕과 정의가 땅에 떨어져 있던 때였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좋은 사회가 되기 위해선 사람들이 지혜로워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지혜롭다는 건 잘못된 것과 잘한 것을 안다는 뜻이고, 앎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정의롭게 살 수 있으리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앎, 진리에 이르는 올바른 생각법을 가르치고자 했습니다. 그것이 2) 문답법입니다.


문답법은 지금도 활용되는 철학의 기본 생각법입니다. 소크라테스와 대화한 사람들은, 3) 반론과 반박을 거치며 ‘용기’나 ‘정의’처럼 당연한 것조차 4)‘아무것도 몰랐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내가 아무것도 확실히 모른다’는 걸 인정하면, 더 정확한 앎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됩니다.


이러한 문답법의 원리는 논술에서도 핵심 생각법이 됩니다. 당연한 것도 의심하고, 다른 사람과 토론을 거치며 앎을 찾아가는 주장과 논박의 과정을 글로 표현한 것, 그 자체가 바로 논술이기 때문입니다.


1) 철학 : ‘지혜를 사랑한다’는 뜻. 철학은 생각의 힘을 이용해 진리를 탐구하기에 모든 학문의 시작이자 ‘만학(萬學)의 왕’이라고 부른다.
2) 문답법 : 묻고 답하며 앎에 이르는 생각법. 상대의 주장과 근거를 들여다보고 반론과 반박을 하다 보면 처음보다 더 나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3) 반론, 반박 : 상대방의 주장에 반대하고 그에 맞서는 의견과 내용으로 논의하는 것. 반론과 반박을 잘하려면 상대의 주장과 근거를 살펴보고 그 논리가 타당한지를 따져야 한다.
4) 무지의 지(無知의 知) : ‘나는 내가 모른다(無知)는 사실을  안다(知)’는 소크라테스의 말을 한자로 표현한 것. 지혜는 당연히 그러한 것은 없다는 태도로, 잘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모르고 있다는 걸 알아야 참된 지혜를 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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